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울고 갈 정도의 ‘노쇼’였다.
필리핀 선수들의 활약으로 새로워진 2022-23시즌. KBL 10개 구단 중 무려 7개 구단에서 필리핀 쿼터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물음표 가득했던 평가는 이제 느낌표가 됐다. 그러나 이 모든 걸 우습게 만든 사태가 벌어졌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강물을 흐리고 말았다.
서울 삼성은 올 시즌 유독 필리핀 쿼터와 인연이 없었다. 윌리엄 나바로는 필리핀농구협회의 LC(이적 동의서) 미발급으로 인해 영입할 수 없었고 크리스찬 데이비드는 단 1경기도 뛰지 못하고 재활만 받은 채 떠났다.
희망을 잃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필리핀 쿼터 영입에 힘쓴 삼성은 국가대표 빅맨 저스틴 발타자르와의 계약에 성공했다. 입국 시기가 조금 늦어지기는 했지만 한 시즌만 바라보고 영입하는 것이 아니기에 미래를 본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런데 선수 등록 마감 시한인 지난 1일까지 발타자르 소식은 없었다. 그리고 하루 뒤인 2일, 삼성은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발타자르가 연락을 끊은 채 한국에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발타자르는 원래 계획대로라면 1일에 왔어야 했다. 현재 두바이에서 열린 대회(디나모 레바논 소속)에 출전 중인데 선수 등록 마감 시한도 있으니 최대한 빨리 와주기를 바랐다. 그렇게 대화를 통해 입국 시기를 조율 중이다가 문제가 발생했다”며 “비자 발급 신청을 했냐고 물었더니 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접수증을 보내달라고 하니 그때부터 연락이 끊겼다. 계속 연락을 시도했는데 되지 않았다. 설마 싶었다. 근데 미국에 있는 에이전트조차 연락이 안 된다고 하더라.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우리는 계약 후 비자 발급과 관련된 서류를 만들어 보냈다. 구단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1월 20일까지 다 준비했다. 발타자르가 비자 발급을 위한 과정을 진행했다면 기록으로 남아 있을 텐데 대사관에 문의해보니 없다더라. 우리 입장에선 발타자르가 아예 한국으로 들어올 의지가 없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렇게 ‘노쇼’가 됐다”고 덧붙였다.
벌써 3번째 필리핀 쿼터 영입 실패다. 삼성에 책임이 1%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비극이 모두 그들의 문제라고 한다면 그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삼성 관계자는 “발타자르와 관련해 우리의 행정적 실수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다만 사람을 잘못 본 거라면 그건…”이라며 말을 잃었다.
결과적으로 발타자르는 오지 않았고 삼성은 이와 관련한 제재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첫 번째는 계약 위반 건을 재정위원회에 올리는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KBL에 따르면 1, 2주 안에 소집될 것이라고 한다. 제재 수위에 따라 우리의 움직임도 달라지겠지만 자격 상실 가능성도 있는 것 같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자격 상실이라면 영구 제명을 뜻한다. 아직 결정된 부분은 아니지만 현재 발타자르의 ‘노쇼’는 분명 자격 상실 제재가 당연하다. KBL과 필리핀의 아시아 쿼터 신뢰도가 크게 떨어진 문제다. 그동안 KBL에서 활약하며 필리핀 농구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꾼 다른 선수들에게도 피해가 가는 일이다. 자격 상실 외 발타자르를 제대로 제재할 다른 방법은 없다.
다만 KBL 외적인 부분에서 제재할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보통 외국선수와의 계약 관련 문제는 국제농구연맹(FIBA)이 컨트롤할 수 있지만 KBL의 아시아 쿼터는 다르다. 계약서 양식 자체가 우리나라의 것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발타자르가 한국으로 오지 않는 이상 제대로 된 제재를 가할 명분이 없다(아시아 쿼터 선수들이 샐러리캡 내 연봉 포함, 그리고 신인상 자격을 얻는 등 국내선수와 같은 조건을 가지는 이유가 바로 동일한 계약서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
삼성 관계자는 “LC는 우리에게 있는데 5월 31일까지인 만큼 이후에는 사실상 발타자르의 이적을 막기가 쉽지 않다. 만약 다른 나라에서 6월부터 발타자르를 영입한다고 하면 우리에게 확인은 하겠지만 굳이 반대한다고 해서 이적을 못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제재하려면 방법을 찾을 수는 있겠지만 절차가 상당히 복잡해진다. 그래서 KBL 재정위원회 결과에 따라 고민해 볼 부분이다”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삼성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선 이 문제는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지난 과정을 돌아보면 우리에게 올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 같다.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문제다. 에이전트 쪽에서도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사과했다. 지금으로선 할 말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2016-17시즌 이후 고난의 연속인 삼성. 다시 일어서려던 그들에게 발타자르 ‘노쇼’ 사태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새롭게 출발하려고 했던 2022-23시즌조차 처음부터 끝까지 꼬이고 있다. 여러모로 그들에게는 끔찍한 시즌이 되고 있다.
민준구 MK스포츠(kingmjg@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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