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스코츠데일(미국 애리조나주) 박승환 기자] “이제 ‘꿈같다’ 느낄 때는 아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정후는 16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스프링캠프 4일차 훈련을 마친 뒤 한국 언론들과의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지난 2017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넥센(現 키움) 히어로즈의 1차 지명을 받고 프로 생활을 시작한 이정후는 7시즌 동안 884경기에 출전해 1181안타 65홈런 515타점 581득점 타율 0.340 OPS 0.898이라는 매우 훌륭한 성적을 남긴 뒤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비록 홈런 타자는 아니지만, 정교한 컨택 능력과 뛰어난 선구안, 폭발적인 스피드가 매력적인 이정후는 빅리그에서 탐 낼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춘 선수.
메이저리그 레벨의 선수들과 맞붙은 경험은 없지만, 각종 국제대회를 통해 이정후는 전 세계 다양한 선수들과 만나도 자신의 능력을 맘껏 뽐낼 수 있음을 증명했고, 이를 바탕으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1억 1300만 달러(약 1681억원)이라는 초대형 계약을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이는 아시아 출신 메이저리거들 중에선 야마모토 요시노부(LA 다저스), 다나카 마사히로(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이은 3위, 야수 중에서는 역대 최고 몸값에 해당된다.
하지만 지난해 이정후의 빅리그 생활은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해 ‘리드오프’ 겸 중견수로 낙점했는데, 정규시즌이 시작된 후 37경기째에 홈런성 타구를 잡아내는 과정에서 펜스와 충돌,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 재활을 통해 시즌 막바지 복귀를 노려볼 수 있었지만, 이정후와 샌프란시스코는 수술을 통해 우려 요소를 완전히 지우는 것을 택했다.
이로 인해 이정후는 지난해 37경기 만에 시즌을 종료하게 됐으나, 착실한 재활을 통해 완벽한 몸 상태를 되찾았다. 이정후는 스프링캠프 일정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이미 풀스윙을 돌리고 있었고, 이제는 실전 감각을 되찾는 일만 남겨두고 있다. 밥 멜빈 감독은 16일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이정후가 23~24일 중에는 시범경기에 출전하게 될 것임을 시사했다. 23일이 원정경기인 만큼 24일의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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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상으로 인해 풀타임 시즌을 치르지 못함으로써, 소위 ‘돈값’을 하지 못한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입단 후 1년의 시간이 흐른 만큼 최근 미국 현지 언론에서는 서서히 이정후를 압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외신을 인용한 국내 보도들도 나오고 있는 만큼 이정후도 이런 분위기를 모를 리가 없다. 이에 이날 이정후는 ‘부담’이라는 단어에 대해 솔직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정후에게 ‘부담’이라는 단어는 KBO리그 시절에도 늘 따라다녔다. 아버지인 ‘바람의 아들’ 이종범 코치의 존재 때문이다. 이정후는 프로 유니폼을 입기 전부터 아버지의 존재로 인해 많은 주목을 받았고, 넥센에 입단하면서 본격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에도 이는 변함이 없었다. 게다가 야구 실력까지 출중한 만큼 이정후에게는 늘 ‘부담’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질문들이 많았다.
이날 이정후는 ‘잭 미나시안 단장이 ‘건강만 하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부담을 덜 느껴서 좋느냐’는 물음에 “솔직히 부담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 문을 열더니 “자꾸 부담을 만들어 주시는 것 같은데, 정말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외국 기자님들이 기사를 쓰는 건 내가 읽지를 못한다. 한국 기자분들도 외국 기자님들이 쓴 걸 인용해서 기사를 쓸 수 있겠지만, 그건 내가 보지 않으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부담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년 연속 부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던 만큼 이정후는 건강함을 바탕으로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마음뿐이다. 그는 “감독, 코칭스태프 분들이 기대해 주시는 만큼 보답을 하고 싶은 생각뿐”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부담이라는 것보다는 ‘기대에 부응하자’는 마음이 가장 크다. 이게 내게는 가장 몸에 와닿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미나시안 단장의 멘트도 결국 이정후가 건강만 하다면 충분히 실력을 뽐낼 수 있다는 무한한 신뢰인 셈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아직 투·포수조만 합류해 캠프 일정을 소화 중. 오는 17일에는 모든 야수들까지 합류해 ‘풀 스쿼드’로 훈련이 진행된다. 따라서 이정후도 이제는 조금씩 바빠진다. 이정후는 “17일부터는 정식 스케줄이 나와서 본격적인 훈련을 하게 된다. 라이브 배팅도 진행하고 하다 보니, 조금씩 움직이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 같다”며 “오랜만에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해서 너무 좋고, 몸도 아픈 데가 없이 건강해서 더 좋다”고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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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는 올 시즌에 앞서 ‘사이영상 3회’ 리빙레전드 저스틴 벌랜더와 ‘유격수 최대어’ 윌리 아다메스를 품으며 전력을 보강했다. 이정후도 복귀하는 만큼 지난해보다 전력은 한 층 나아졌다. 이정후도 이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이정후는 “팀을 떠난 선수도 있지만, 아다메스, 벌랜더 선수도 새로 왔다”며 “우리 선수들이 좋은 만큼 나만 잘하면 될 것 같다. 올해는 팀 성적이 좋았으면 좋겠고, 팀 성적이 좋으면 나도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항상 팀을 먼저 생각하고, 팀이 주문한 것을 잘 수행하도록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끝으로 이정후는 “작년에는 마냥 설렜는데, 올해는 설렘보다는 조금 절절하다. 작년에는 이 시간이 꿈같았는데, ‘이 꿈같은 시간이 내게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내가 여기서 하고 있는 시간들을 정말 잘 활용하고, 그 시간을 소중히 써야 나중에 돌아봤을 때 후회가 안 남겠구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여기 있는 걸 이제는 ‘꿈같다’고 느낄 때는 아니다. 여기(메이저리그에) 최대한 오랫동안 있을 수 있게 잘 준비해서 좋은 성적 거두겠다”고 두 주먹을 힘껏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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