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조차 “이해 범위를 벗어난 경력을 가졌다. 성장 속도에 놀랐다”고 했다. 매체들은 ‘이색’을 붙였다.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여자 마라톤 선수의 국제대회 1위에 일본이 열광했다.
대학 ‘마라톤 동아리’ 활동을 하며 혼자서 달리기 연습을 했었다. 실업 육상부에서 훈련받은 지 겨우 8개월밖에 되지 않은 신인. 거기에 명문 와세다 대 법학부 졸업.
그런 고바야시 가나(24)는 지난 1월 ‘오사카 국제여자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21분 19초로 일본 1위(전체 2위)를 차지했다. 일본 역대 10위 기록. 중하위권에서 달리다 800m를 남기고 도쿄올림픽 6위 선수를 제친 ‘동아리 출신’ 가나의 마지막 질주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녀는 대학 3년 때 처음 참가한 ‘오사카 대회’에서 2시간 36분 54초로 완주했다. 일반인으로서 대단한 기록. 이를 2년 만에 무려 15분 이상 줄였다. 일본 최고 기록에는 2분 30초 못 미쳤을 뿐. 2018년 세워진 한국 기록 2시간 25분 41초보다는 4분 이상 빨랐다. 그러나 그런 기록들만으로 감독이 이해하기 힘들다거나 매체들이 ‘이색 선수’라 하지 않았다. 일본이 놀라지 않았다.
고바야시는 여러 기존 관념을 무너트렸다. “뛰어난 선수가 되려면 운동에 전념해야 한다. 공부보다 연습이 먼저다. 좋은 지도자로부터 체계 있는 조련을 받아야 한다.” 특히 한국의 학교 체육을 지배하는 이런 주장들을 무색게 한다.
일본에는 학교 체육에서 선수도 연습과 공부를 함께 해야 한다는 풍토와 문화가 자리 잡았다. 대학들은 매년 11월~2월 사이에 각 종목 선수들의 취업 현황을 공개한다. 프로 구단 등이 아닌 일류기업에 들어가는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대학 시절 그들이 운동기계로만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사회인이 되기 위한 실력도 쌓는다는 것을 사회에 실증한다.
■“공부가 먼저지만…마라톤 만난 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수확”
고바야시가 특히 관심을 끈 것은 “공부도 잘하며 최고의 운동선수가 될 수 있다. 좋아하는 운동을 즐기며 스스로 훈련하면 운동에만 목메지 않더라도 뛰어난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 운동부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 크게 돋보였다. 일본에서도 극히 드문 경우.
고바야시는 중·고 시절 잠시 육상 선수를 했었다. 그러나 ‘엘리트 선수’가 아니었다. 고교 때는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거의 운동을 못 했다. “중학교 때 뛰어보니 내 몸이 장거리 달리기에 적합했던 지 꽤 재미있었다. 방과 후에도 스스로 혼자서 연습을 했다.” 학교 체육에서 자신의 육상 소질을 알고 즐겼던 것.
그녀는 선수 이전에 공부를 잘한 학생이었다. 고향인 군마현에서 1위, 일본 4,899개 고교 가운데 10위 안에 드는 ‘와세다 대 혼조고교’에 입시를 거쳐 들어갔다. 대학은 와세다 대 법학부. 특기생이 아니었다.
대학 진학 후 “좋아하게 된 육상의 즐거움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 동아리 ‘호놀룰루 마라톤 완주회’에 들어갔다. 2학년부터 매일 개인 훈련을 했다. 매달 600km를 혼자 달렸다. 시민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횟수도 연간 10회 정도로 늘면서 더욱 마라톤에 빠지게 되었다. 3,000m 이상 높은 산들을 등반하며 ‘등산부’ 활동도 열심히 했다.
그러나 법대 졸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취업 준비도 해야 했다. 당연히 공부가 먼저. ‘민법 연구회’ 활동. 총무성 취업을 목표로 정부 부처 인턴십 참여. 한국의 5급 공무원 시험과 비슷한 ‘국가공무원 종합직 시험’을 위한 학원에도 4년 내내 다녔다.
결국 “마라톤을 만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수확”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깊이 고민한 끝에 실업 육상 선수의 길을 가기로 했다. 지인을 통해 오츠카제약 감독과 접촉하여 24년 5월 입단했다. 7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호부 대회에서 2시간 24분 59초를 기록했다.
이때 감독은 “이 선수를 제대로 키우지 않으면 실례가 된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한 달 뒤 일본 1위가 되었다. 9월 도쿄 세계선수권대회 참가 기준 기록을 돌파한 이번 대회가 겨우 8번째 뛴 마라톤 경기. 빠른 성장세로 미루어 머지않아 일본 신기록을 세울 것이 예상된다.
■‘64년 전 민계식 선수’…한국 스포츠서 다시 나와야 한다
고바야시를 떠올리는 마라톤 선수가 64년 전 한국에도 있었다.
1961년 ‘맨발의 마라토너’로 유명한 로마올림픽 금메달 아베베 비킬라가 서울마라톤대회에 참가했다. 이때 서울대 공대 1학년 민계식 선수가 2시간 23분 48초로 7위를 했다. 경기고 1학년 때부터 혼자서 마라톤 연습을 했다는 어린 수재의 실력에 다들 놀랐다. 그 선수는 바로 국가대표로 뽑혀 태릉선수촌에 들어갔다. 그러나 아버지한테 잡혀 나왔다. 마라톤을 어쩔 수 없이 그만두었다.
민계식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학사 장교로 임관,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에서 해양공학 박사가 된 뒤 대우조선을 거쳐 현대중공업 회장 등을 지냈다.
한국 스포츠에서 민계식 같은 공부도 운동도 뛰어났던 선수가 이제는 나오지 않고 있다. 다시는 안 나올 가능성이 크다. 공부도 운동도 함께 열심히 하는, 지극히 기본이 되어야 할 풍토가 전혀 자리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
한국과 일본의 스포츠 수준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선수들에게 제대로 공부시키지 않는 학교 체육 탓이 크다. 고바야시도 갑자기 튀어나온 선수가 아니다. 바른 길을 가는 학교 체육 속에서 자연스레 태어났다. 하루빨리 한국 스포츠도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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