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K 3주 차에서 T1이 약 2년 만에 숙적 젠지를 물리치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국제 무대 성적은 T1이 압도적이지만, 이번 그간 국내 리그에서 젠지를 잡아내지 못하던 실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신예 ‘스매쉬’ 신금재가 큰 활약을 선보이며 압도적 존재감을 드러냈다. 다만 이를 지켜보는 몇몇 팬들은 불만을 표하는 모양새다.
T1은 바텀 라이너 자리에 ‘구마유시’ 이민형 대신 ‘스매쉬’ 신금재의 이름을 올렸다. ‘스매쉬’ 신금재는 KT 롤스터와의 통신사 대전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카이사, 이즈리얼 등 평소 T1에서 기용률이 낮은 챔피언을 선보이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또한 경기 종료 후 POM까지 획득했다.
스매쉬는 기대에 부흥하는 것을 넘어 캐리롤을 수행하는 활약까지 드라마틱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화제의 중심이 됐다. 지난해 젠지에서 활약했던 ‘페이즈’ 김수환에 이어 대형 신인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지만, 지난 2년간 국제 무대서 활약하며 가치를 입증해 낸 ‘구마유시’ 이민형이 벤치에 머문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드러내는 팬들도 존재했다. 팸덤의 일부는 T1의 농심 레드포스전 경기를 앞두고 종로 롤파크 앞에 ‘구마유시’ 이민형의 출전을 요구하는 트럭을 보내 시위했다.
◇ 스매쉬 기용 타이밍
T1이 2년 연속 월즈 우승을 거머쥔 구마유시 대신 신인을 교체 기용하는 선택을 감행한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을텐데, 크게는 정규 리그가 아니라는 점, 피어리스라는 새로운 제도가 도입됐다는 점, 또 다른 하나는 도란이 영입된 만큼 발생한 팀적 전략 변경의 필요성 등이다.
먼저 이번 LCK컵은 정규 리그에 돌입하기 전 실전 테스트를 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건강한 주전경쟁은 본래 팀적 성장을 위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한 세트가 아쉬운 정규 리그 도입 이후 돌림판을 돌리기엔 리스크가 클 수 있다. LCK컵의 위상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콜업된 신인의 실력 검증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리그오브레전드에는 수많은 전략과 전술이 존재하지만 크게는 ‘주도권’과 ‘밸류’ 두 가지로 나뉜 플랜이 스탠다드로 취급된다. 최근 몇 시즌 간은 라인스왑이라는 큰 변수가 존재했지만, 서술된 기본적 틀은 변하지 않는다. 티원은 ‘주도권’을 상징하는 팀이다. 초반 주도권을 바탕으로 스노우볼을 굴려 ‘돈으로 찍어 누르는’ 형태의 플레이를 자주 보여준다. 롤드컵 2회 우승 팀인 만큼 이 과정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선수들의 피지컬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리그오브레전드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게임이다. 때문에 한정돼 있는 자원을 누구에게 더 많이 몰아주어 성장시킬 것인가를 생각해 전략을 짜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라인이 생기기 때문에, 자원을 먹고 성장한 딜러가 그에 상응하는 플레이를 선보여야 전략이 맞아 떨어진다.
T1의 기존 플랜은 바텀 주도권을 확실하게 잡아 해당 주도권을 바탕으로 정글과 서폿이 시야를 먹고, 미드는 메이킹과 클러치 플레이를 맡게되며 이는 T1 선수들의 각 포지션에 딱 들어맞는 전략이다.
라인전 능력이 최상급인 바텀에서 라인전을 강하게 가져가며 라인을 밀고 상대의 시선을 끌어주면 나머지 라인이 편해진다. 사이드라인이 동시에 성장을 하면 무난한 승리 플랜이고 상대가 바텀 쪽을 저지한다면 그동안 다른 라인이 충분히 성장해 스노우볼을 굴린다.
이런 팀적 플레이 스타일의 중추는 구마유시 캐리아였다. 구마유시는 라인전이 강하고 후반 밸류가 다소 떨어지는 픽을 완벽히 소화하고 그 외에는 세나 등의 서포팅 경향이 강한 원딜을 잘 다룬다. 다만 ‘제이카’로 묶어 불리는 제리, 이즈리얼, 카이사에 대한 신뢰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평이 존재했다.
주도권과 대척점에 있는 밸류 플랜은 초반 주도권은 없으나 게임의 후반부 가치가 굉장히 높은 강력한 픽들을 선택한다. 이후 안정적인 플레이로 별다른 출혈 없이 게임을 후반까지 이끌면 승리한다. 여기에 부합하는 픽이 제리와 카이사다.
구마유시는 중후반 캐리롤을 수행해야 할 때 자야나 징스크등의 카드를 꺼내 플레이 해왔다. 그러나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제이카’에 관한 문제가 몇 년 동안 풀리지 않고 있었다. 이는 T1으로 하여금 상대 팀들의 ‘대 T1’ 전략 수립에 도움을 주는 ‘약점’이었다. 서술된 세 챔피언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밴픽을 짜오기 때문이다.
아울러 원래부터 존재하는 챔피언의 풀 자체가 적은 원딜 입장에서 피어리스 밴픽은 더욱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메타에 부합하는 챔피언은 정해져 있을텐데, 그 안에서도 다양하게 잘려 나가는 밴 덕분에 대부분의 카드를 제대로 다룰 줄 안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 T1의 새로운 승리 공식
T1의 최근 월즈 성적은 화려했지만, 리그 중에는 불안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팀 색깔 자체가 리스크 있는 플레이를 선호하기도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경기력이 불안한 경우가 더러 존재했다. 건강 이슈나 디도스 이슈 등을 차치하면 플레이 스타일 변경을 위한 과도기에 정체된 모습을 보여왔다.
T1은 본래 본인들이 잘하는 플랜을 놔두고 다른 플랜으로 승리를 해보고자 시도한 흔적을 종종 보여왔다. 선수들의 폼과는 관련 없이 다양한 시도를 해왔고, 결국 필요할 때는 주도권 전략을 다시 들고 나와 성적을 메웠다.
다만 탑 로스터의 변동으로 전과 같은 전략을 무조건적으로 수행하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어보였다. 기존 승리 공식에 최적화된 모양새는 아니었던 것. 실제로 LCK 컵 초창기의 T1의 경기력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에 따라 디플러스 기아와의 경기에서는 패배했다. 아무리 새로운 운영 방식으로 변화하는데 시간이 걸린다고는 하지만 팬들의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울 수 있는 결과다.
결국 T1은 2군에서 ‘스매쉬’를 콜업하는 강수를 뒀는데, 이후의 플레이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메타의 변화와 피어리스의 도입으로 인해 ‘밸류’ 플랜까지는 아니더라도 바텀 라인의 캐리가 강제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를 스매쉬는 성공적으로 해냈다. 후반부 원딜의 하이퍼 캐리라는 새로운 카드가 생겨난 것.
결과적으로 약 2년 만에 젠지에게 승리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는 다름아닌 원년 원거리 딜러 ‘룰러’를 상대로 만든 결과라 더욱 값지다. 팀 자체의 경기력도 상당히 올라갔으며, 현재 디플러스 기아와 더불어 LCK 컵 우승에 가장 가까운 팀으로 평가받는다.
스매쉬가 실제 정규 리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지는 지켜봐야 한다. 슈퍼 루키로 등장한 신예가 이렇다할 성적 없이 잊혀지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신예에 대한 분석이 들어갈 것은 당연하고, 다른 팀들 역시 합이 맞기 시작하면 어떤 경기력이 나올지 알 수 없다. 윤곽이 드러나는 것은 정규 시즌의 1라운드 후반 혹은 2라운드부터다. 현재 T1의 분위기는 상당히 좋은 편이며 지금의 폼이라면 실제 시즌이 진행되더라도 긍정적인 경기력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팬덤의 싸늘한 반응도 존재…정규 리그 지켜봐야
스매쉬라는 대형 신인은 본인의 가치를 확실하게 보여줬다. 다만 거대한 팬덤을 구성하는 팬들 중 일부는 결과와는 관련 없이 이미 롤드컵 2회 우승으로 입증을 끝낸 구마유시를 주전 경쟁에 내모는 것을 탐탁치 않아 하는 눈치다.
다만 이 사안이 롤파크에 트럭을 보낼 정도의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커뮤니티에서 한 누리꾼은 “프로 선수가 주전 경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선순환 구조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이어 “손흥민도 상황에 따라 벤치에 앉는다”라고 덧붙였다.
정답이 존재하는 사안은 아니지만, 주전 경쟁은 결과적으로 전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또한 이는 프로 선수가 겪어야 할 많은 시련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진행되는 대회가 LCK컵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했을 때 현재 T1의 선택은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폼을 봤을 때 LCK컵이 끝나더라도 스매쉬와 구마유시가 번갈아 기용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구마유시 역시 과거 테디와 주전 경쟁을 치루며 데뷔했고, 최종적으로 T1의 메인 원딜러로 자리매김했다. 이미 증명이 끝난 선수인 만큼 계속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팀적 입장에서 긍정적인 방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