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김경현 기자] 파행의 파행이다. 제29회 LG배 조선일보 가왕전 사석(따낸 돌) 사태 여파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중국기원은 한국 기사들 퇴출을 결정했다. 한중 바둑계 갈등으로 피해는 한국 기사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다.
지난 23일 끝난 LG배 결승에서 갈등이 촉발됐다. 한국은 사석을 확인하고 형세를 판단하거나, 계가하는 데도 사용한다. 반면 중국 선수들은 사석을 계가할 때 사용하지 않아 여기저기 던져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기원은 지난 11월 8일 ‘바둑 규칙 및 경기 규정 개정위원회’에서 ‘제4장 벌칙’ 조항 18조에 따낸 돌을 사석 통에 넣지 않으면 경고와 함께 벌점으로 2집을 공제하기로 정했다. 경고 2회가 누적되면 조항 19조에 따라 반칙패가 된다.
커제가 이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커제는 결승 3번기에서 변상일 9단과 격돌했다. 1국은 커제가 승리했지만, 2국에서 커제가 사석 관리 규정 두 번 어겨 반칙패 했다. 최종 3국에서도 사석이 문제가 됐다. 커제는 1차례 경고를 받자 심판 판정에 불복해 기권했다.
커제는 24일 열린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우승자 변상일 9단은 “승부가 찝찝하게 끝나서 마음이 불편하고, 커제 선수 입장도 충분히 이해된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소감을 남겼다.
이후 커제는 26일 SNS 라이브 방송을 통해 “그날 이후 악몽을 헤매고 지옥을 걷는 것 같다”라면서 “정말 큰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라고 호소했다. 방송 말미에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라며 자신의 입장을 강조했다.
해프닝을 넘어 한중 바둑계 갈등으로 번졌다. 중국기원은 얼마 전 2025 중국갑조리그에 외국인 기사 참가를 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세계 바둑은 한국과 중국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 갑조리그에서 뛴 외국인 선수는 8명이며, 그중 한국인은 신진서, 변상일 9단을 포함한 7명이다. 사실상 한국인의 참가를 금지한 것.
중국 기사의 보이콧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기원은 28일 제1회 쏘팔코사놀 세계최고기사결정전 1차전이 중국의 불참 통보로 연기됐다고 밝혔다. 쏘팔코사놀 세계최고기사결정전은 한국, 중국, 일본, 대만 최상위권 기사 9명이 참가해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다. 한국 4명, 중국 3명, 일본 1명, 대만 1명이 출전할 예정이었지만, 중국의 불참으로 개최 여부가 미궁 속으로 빠졌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한국기원은 입장문을 발표하고 고개를 숙였다. 한국기원은 “LG배는 한국기원 주최 대회로, 한국 바둑 규정을 적용했다. 관련 규정은 2024년 11월 개정 시행됐으며, 사전에 모든 외국 단체에 공표한 바 있다”라면서 “한국기원은 이번 일로 인해 한국과 중국이 그동안 쌓아온 신뢰가 무너지지 않길 바라며,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조속히 원만하게 해결되길 바란다. 이와 관련해 중국과 긴밀한 대화를 통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세계대회는 국제적 규정이 별도로 정해져 있지 않아 주최 국가의 규정을 따르고 있다. 바둑의 세계화와 세계대회의 규정 정립을 위해 국제적으로 규정을 통합해야 하는 상황임을 잘 알고 있다. 한국기원은 이른 시일 내에 중국기원, 일본기원 등과 충분한 논의를 통해 세계대회에 걸맞은 통합 규정을 제정하도록 하겠다”라고 했다.
한중 바둑 차이에서 일어난 일이 바둑계 알력 다툼으로 번졌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 기사들이 보고 있다. 당장 변상일 9단은 시상식에서 맘껏 기뻐할 수 없었다. 여기에 중국 바둑계의 보이콧이 이어지며 한국 대회의 개최 여부 혹은 한국 기사의 중국 대회 참여가 불투명해졌다.
한편 한국기원은 오는 2월 3일 긴급 운영위원회를 열고 사태 수습 방법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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