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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 논란으로 얼룩진 LG배 결승… 커제, 제 발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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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29회 엘지(LG)배 세계대회 결승전은 전례 없는 혼란 속에 막을 내렸다. 변상일 9단과 중국의 커제 9단이 맞붙은 이번 대회는 두 차례의 파행 끝에 변상일 9단이 2승 1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경기 외적 요인으로 승패가 갈리면서 선수와 팬들 모두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커제 9단이 23일 서울 한국기원에서 열린 엘지(LG)배 세계바둑대회 결승 3국에서 사석 관리 문제를 지적받자 반발하고 있다. / 바둑TV
커제 9단이 23일 서울 한국기원에서 열린 엘지(LG)배 세계바둑대회 결승 3국에서 사석 관리 문제를 지적받자 반발하고 있다. / 바둑TV

앞서 지난 22일 열린 결승 2국에서 커제는 사석을 바둑통 뚜껑에 놓지 않은 규정 위반으로 몰수패를 당했다. 이튿날 열린 최종 3국에서도 커제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경기는 또다시 중단됐다. 대국은 약 1시간 동안 멈췄고, 심판은 커제에게 “2집 벌점을 받고 경기를 계속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커제는 이를 거부하며 기권패를 선언했다. 이로써 변상일 9단은 자신의 첫 LG배우승을 확정 지었지만, 우승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기는 어려운 분위기였다.

커제가 사석 2개를 사석 통에 넣지 않은 장면/ 바둑TV
커제가 사석 2개를 사석 통에 넣지 않은 장면/ 바둑TV

대회가 파행으로 끝난 원인은 사석(死石·따낸 돌) 벌칙 규정에 있었다. 한국기원은 지난해 11월부터 “사석을 바둑통 뚜껑에 보관하지 않을 경우 경고를 받는다”는 규정을 도입했다. 이를 위반하면 심판은 경고를 선언하고 벌점 2집을 부여한다.

해당 규정은 바둑 경기에서 잡은 돌을 깔끔히 정리하는 것이 예의일 뿐만 아니라, 상대가 잡힌 돌의 수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정됐다. 실제로 과거에는 사석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집 계산에서 문제가 생기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하지만 커제의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이번 엘지배는 지난해 5월 예선이 시작됐으나, 해당 규정은 11월부터 새롭게 적용됐다. 더욱이 중국과 한국의 집 계산 방식 차이도 혼란을 키웠다. 중국에서는 사석의 의미가 크지 않아 대체로 돌을 임의로 놓는 경우가 많다.

한국기원 측은 중국 측에 개정된 규정을 여러 차례 통보했다고 해명했다. 또 지난해 말 열린 삼성화재배에서도 동일한 규정을 적용했으며, 올해 KB바둑리그에서도 이 규정은 그대로 유지됐다.

외국인 기사로 한국 무대에서 활동 중인 진위청 9단 역시 사석 처리 실수로 경고와 벌점 2집을 받은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에도 한국기원의 규정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판의 재량권이 제한된 채 기계적으로 규정이 적용되면 대국자들의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변상일 9단. / 한국기원 제공
변상일 9단. / 한국기원 제공

이날 최종 3국에서 커제는 이미 인공지능 계측 기준으로 변상일에게 22집 이상 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150여 수가 진행된 시점에서 커제는 막판 비세에 몰리며 심리적으로도 불리한 상태였다. 사석 규정 위반으로 벌점까지 더해지자 커제는 “대국을 더 이어갈 수 없다. 재대국을 원한다”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커제는 대국장을 떠났고, 대회는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 채 막을 내렸다.

중국바둑협회는 이날 성명을 내 “한국기원 책임자와 오래 대화했으나 최종적으로 한국 규칙에 따라 판정을 유지하기로 했다”며 “결승 참가 전 한국 쪽은 바뀐 규칙을 중국 대표단에 알려줬고, 우리는 경기 전에 중국 선수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고 밝혔다.

명국을 기대했던 팬들은 경기 외적인 요인으로 결승전이 어이없게 끝난 것에 큰 아쉬움을 표했다. 축제의 장이 돼야 할 결승전이 논란으로 얼룩지며 세계 바둑계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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