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회는 메달 많이 따기 위한 조직 아냐…체육 교육부터 바로 세워라
대한민국에서 학교 체육은 없어도 그만인가? 올림픽에서 메달만 따면 되고 프로 스포츠만 있으면 되는가? 대한체육회장과 축구협회장 선거가 정치판 선거나 다름없는 것은 체육의 진정한 의미·가치를 무시하는 탓. 협회장 자리가 권력투쟁의 대상으로 변질했기 때문이다.
전임 체육회장이 ‘체육 대통령’이라 비난받았다. 새 회장이 뽑히니 이제 ‘체육 대통령’이라 칭송한다. 한 단어가 하루아침에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이니 어처구니없다. 좋은 뜻이든 나쁜 뜻이든 체육에 대통령이라니 얼토당토않다. 체육에 자꾸 정치를 결부시키면 스포츠 발전의 근본인 학교 체육은 죽어갈 수밖에 없다. 체육회와 회장은 정부에 잘 보이고 국민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올림픽 등 국제대회 메달 따는 데만 힘을 쏟기 때문이다.
대한체육회는 정부가 주는 돈으로 선수촌이나 관리하며 국제대회에서 메달 많이 따기 위한 조직이 아니다. 그런 조직은 공산독재국가에서나 있던 낡은 유물이다. 학생 선수를 키우는 것뿐 아니라 체육을 통해 학생들의 인격 성장을 지원하며, 건강하고 활기찬 학생·학교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체육회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
체육 교육이 바로 서지 않으면 스포츠는 물론 국가와 사회의 건전한 발전이 이뤄지기 힘들다. 대한체육회는 그 책무를 완성하기 위해 정책을 만들고 국민을 설득해 체육 교육이 튼튼하게 뿌리내리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러나 역대 회장들 상당수가 스포츠 권력을 누리며 눈에 보이는 업적 쌓기에 집착했으니 학교 체육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일본 대학 야구 선수의 경제산업성에 취업
일본의 대학 운동부들은 매년 11월~1월 사이에 졸업 선수 진로를 공개한다. 올해 가장 주목받은 선수는 게이오 대 야구부 투수 오노 쇼우타. 그는 재무성·외무성과 함께 일본 3대 정부 부처의 하나로 꼽히는 경제산업성에 취직했다. 일본의 국가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 공무원 종합직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한국의 5급 공무원 시험과 비슷하다. 아마 한국 운동선수가 5급 시험에 합격했다면 큰 화제가 되었을 터이다.
오노는 게이오 대 입학시험에 떨어져 1년 재수 끝에 경제학부에 입학했다. 게이오 대 운동 선수들은 오노처럼 대부분 일반 입학시험을 거친다. 운동 특기생은 많지 않다. 올해 졸업생 가운데 24명은 경제통산성 이외에 미쓰비시UFJ은행, 텔레비젼 아사히, 미쓰비시 중공업, 다이와 증권 등에 취업했다. 일본 매체가 “게이오 4학년들 진로는 초호화! 1류기업, 관료”라고 할 정도.
와세다 대는 28명 졸업생 가운데 2명이 프로 신인선발에 뽑혔다. 4명은 사회인 야구를 선택. 나머지 22명 중 외국 유학·대학원 진학 외에 대부분 제일생명보험, 동북전력 등 명문 기업에 취직했다.
동경대는 27명 졸업생 중 9명이 대학원 진학. 나머지는 미쓰비시 상사, 일본정책투자은행 등 “1류 기업”에 진출했다. 다이쇼 대는 2명이 경시청 등에 경관으로 취업. 오사카상업 대는 17명이 사회인 야구단으로 진로를 선택했다.
일본 대학야구 선수들은 프로가 아니면 사회인 야구, 기업체 등 대부분 취업한다. 한국 대학 선수들은 프로에 뽑히지 않으면 취업에 많은 애를 먹는다. 일류기업에 시험을 거쳐 들어가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일본과 극단의 대조. 사회 문제다. 운동을 해 봐야 장래가 밝지 않다는 고정관념과 힘들고 어려운 것을 싫어하는 풍토 때문에 학생·학부모 되도록 운동을 피한다. 그 여파로 교과목에서도 체육이 무시되는 흐름이 이어진다. 정부나 체육회는 속수무책.
일본 대학 야구부가 졸업생 취업 현황을 발표하는 관행은 2000년대 후반부터다. 학생 선수의 권익 보호, 운동 이후의 삶을 지원하는 사회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다.
■일본 대학 운동부 취업 현황 공개, 스포츠와 선수 발전에 크게 기여
취업 공개는 대학 운동부가 선수들을 단순히 운동 기계를 키우지 않고 졸업 후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하도록 돕고 있음을 사회에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 선수들은 학업 성적을 유지하면서 훈련도 열심히 해야 한다.
“선수도 학업과 사회 진출 모두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알리면 운동에 대한 인상을 개선할 수 있다. 어린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믿음을 준다. 초·중·고 체육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는 것. 바로 저변 확대다. 이를 위해 도쿄, 게이오, 와세다 등 ‘도쿄 6대학 야구 연맹’ 대학들이 취업 결과 공개에 앞장섰다.
이 관행은 대학 스포츠 전체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럭비, 축구, 농구 등 대부분 종목들도 공개한다. 이제 “운동 이후의 삶”을 지원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학교와 운동부 모두의 공동책임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일본의 학교 체육 바탕이 넓은 것은 유명하다. 대학 선수 취업 공개 관행은 그것을 더 넓히는 데 주요 역할을 한다. 일본에는 5,300개 고교와 370개 대학에 야구부가 있다. 한국에는 고교 95개, 대학 48개뿐이다. 비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야구만이 아니다.
일본의 대학 축구부는 800개 이상. 한국은 84개. 일본 대학 농구부는 남자 400개 여자 3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남자 12개, 여자 7개 대학에만 농구부가 있다.
일본 학교 체육의 발달과 대학 선수 취업은 학교·선수들만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문부과학성과 ‘일본 스포츠 협회’가 그 선두에 있다. 문부성·협회는 대학과 기업을 연결해 운동선수 졸업생이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직장을 찾도록 지원한다. 선수들의 진로 상담과 조언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선수 경력·성과를 기업과 연결하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 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등 각종 방안을 실시하고 있다.
■맥아더 “체육은 지도력·정신력·체력·용기 가르친다”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1919년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체육 교육을 교육 개혁의 핵심으로 삼았다. “체육은 지도력·정신력·체력·용기를 가르친다. 이러한 자질들이 지성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신념에서였다. 체육이야말로 국가와 사회 지도자를 기르는 가장 완벽한 환경, 시민 의식을 가르치는 최상의 체계, 사회 발전을 위한 최고의 바탕이라 했다.
체육의 가치·필요성에 대한 그의 깊은 철학과 교육 현장에서 실천은 오늘날 학교 교육에서 체육이 주요 과목이 되고 대학이 미국 스포츠를 주도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체육을 무시하고 없애는 한국 교육에 주는 중요한 교훈이다.
대한체육회장 선거가 진흙탕 정치 선거처럼 치러지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 그릇된 후진국 풍토에서는 누가 회장이 되든 깊이 있는 체육 철학이 나올 수 없다. 체육이 교육의 근간이 되는 날은 까마득하다. 대학이 선수 졸업생들의 취업 현황을 공개하는 날이 언제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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