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이런 XX, 정신 똑바로 차리고 던지라고.”
KIA 타이거즈 상남자포수 김태군(36)이 한국시리즈 4차전서 7-0으로 도망가는 좌월 그랜드슬램을 송은범에게 친 순간, V12의 기운이 확실하게 왔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알고 보면 최고의 승부처는 1차전이었다.
2024년 10월21일 한국시리즈 1차전은 시작하면 안 되는 경기였다. 비가 너무 많이 왔기 때문이다. 결국 무리하게 강행하다 삼성 라이온즈가 1-0으로 앞선 6회초 무사 1,2루서 서스펜디드 게임으로 처리됐다. 22일에도 비로 경기가 열리지 못했고, 23일 16시에 재개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KIA가 이 위기를 잘 넘기면서 역전승 발판을 만들었고, 여세를 몰아 그날 저녁에 열린 2차전까지 잡고 초반 기세를 확실히 잡았다. 결국 이범호 감독이 서스펜디드 게임 재개와 함께 이준영으로 갔다가 메인 셋업맨 전상현을 넣는 결정 대신 곧바로 전상현을 투입해 2사 만루 위기를 벗어난 게 결정적 디시전이었다.
그런데 전상현도 위기가 있었다. KIA는 서스펜디드 게임 재개 후 김영웅의 번트와 강공 모두 대비했다. 번트를 대면 무조건 3루에서 승부를 보기로 한 작전은 일단 성공했다. 2루에서 3루로 가던 르윈 디아즈를 잡았다. 한 방이 있는 박병호도 삼진 처리하면서 2사 1,2루.
여기서 위기가 왔다. 전상현은 후속 윤정빈에게 주무기 포크볼로 초구에 헛스윙을 잡고도 잇따라 볼 4개를 던졌다. 2사 만루. 한 방이 있는 이재현에게도 초구 볼을 던졌다. 5연속 볼. 그러자 김태군이 마운드를 방문했다.
김태군이 전상현을 격려(?)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전상현은 김태군이 돌아간 뒤 슬라이더로 투수 땅볼 처리, 만루 위기를 극복했다. 알고 보니 김태군은 전상현에게 욕을 내뱉으며 분발을 촉구했다. 지난 10일 티빙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방영된 퍼펙트리그 2024를 통해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김태군은 “너랑 나랑 그냥 가야 된다고”라고 했다. 옆에 있던 김선빈이 웃더니 “확실해?”라고 했다. 양현종은 “욕했지?”라고 했다. 그러자 김태군은 “이런 XX 정신 똑바로 차리고 던지라고. 지금 네가 왜 피하냐고. 우리가 지금 붙어야 된다고”라고 했다. 양현종과 김선빈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3개월이 흘렀다. 김태군은 그 순간을 돌아보면서 “상현이도 긴장했을 거야 아마”라고 했다. 올 시즌 맹활약한 메인 셋업맨이지만, 전상현에게도 생애 첫 한국시리즈였다. 그것도 1점 뒤진데다 누상에 주자가 2명이나 있었다. 절대 안타도 안 맞아야 한다는 부담감은 당연히 있었다.
아무렴 어떤가. 전상현은 김태군에 의한 강렬한 각성(?)효과로 위기를 탈출했다. 이날 전상현은 1.2이닝 2탈삼진 1사사구 무실점으로 팀 역전승의 발판을 놨다. 구원승은 자신 다음으로 나선 곽도규의 몫이었지만, 실질적 게임체인저는 전상현이었다. 3차전서 백투백 홈런포를 맞았지만, 전상현의 한국시리즈 우승 지분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김태군은 이렇듯 당근과 채찍을 잘 쓰는 포수다. 가장 중요한 순간, 가장 잘해야 하는 투수가 볼 5개를 잇따라 던지자 직감적으로 타임을 외치고 마운드로 올라간 그 디시전이 한국시리즈 전체 흐름을 바꿨다고 봐도 무방하다. 4차전 결정적 만루포보다 더욱 값진 디시전이었다. 안방이 약한 시절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효과다. KIA의 V13 전망이 밝은 것도 김태군의 존재감이 한 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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