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만루 상황서 뭐 저한테 언제든 걸리면 좋겠네요.”
KIA 타이거즈가 정규시즌 우승 이후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던 지난 10월 중순. 마지막 연습경기를 앞둔 ‘상남자 포수’ 김태군(36)에게 위와 같은 얘기를 들었다. 그만큼 타격에 자신 있다는 얘기였다. 알고 보니 만루에 강했다.
2024시즌 득점권타율 0.221이었다. 그러나 만루서 11타수 4안타 타율 0.364 10타점으로 굉장히 강했다. 2023년엔 득점권타율 0.337에 만루서 12타수 8안타 타율 0.667 19타점으로 더 강했다. 수비형 포수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만루에 강한 사나이다.
단, 만루에서 희한하게도 홈런이 없었다. 2008년 데뷔해 17년간 통산 32홈런에 불과하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됐다. 그러나 만루에 강한 사나이의 진가가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서 제대로 드러났다. 3-0으로 앞선 3회초 2사 만루서 우완 송은범에게 볼카운트 1B서 슬라이더가 몸쪽으로 높게 들어오자 잡아당겨 좌월 그랜드슬램을 폭발했다.
3루 주자 나성범이 “파울인 줄 알았다”라고 했다. 그러나 타구가 아슬아슬하게 타자 기준 좌측 폴대 우측 담장을 넘겼다. 그러자 심판들이 일제히 손가락을 빙빙 돌려 홈런 시그널을 보냈다. 김태군은 깡총깡총 뛰며 기쁨을 만끽했다. 실제 그 한 방이 한국시리즈 4차전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시리즈 전체 흐름을 KIA로 완전히 가져왔다.
그런 김태군은 한국시리즈 내내 맹타를 휘두른 김선빈(36)에게 1표 차로 뒤져 한국시리즈 MVP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아쉬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자신이 마침내 우승포수가 됐고, 식물포수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런 김태군은 한국시리즈 직후, 골든글러브 시상식 레드카펫 인터뷰서 공통적으로 꺼냈던 얘기가 있다. 이닝이다.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싶다”라고 했다. 올해 641이닝이 성에 찰 리 없다. NC 다이노스 시절이던 2015년엔 1086⅔이닝으로 리그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 포수였다. 2016년과 2017년에도 935.2이닝, 957⅓이닝으로 2위였다.
이후 양의지(두산 베어스), 강민호(삼성 라이온즈)라는 국가대표 포수들을 만나면서 출전 비중이 줄었다. 2023년 7월 KIA 트레이드로 주전을 되찾았으나 한준수(26)라는 ‘무서운 후배’가 치고 올라왔다. 올해 정규시즌서 김태군이 641이닝, 한준수가 600이닝으로 거의 비슷한 비중이었다.
김태군도 더 이상 적은 나이가 아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한준수가 치고 올라오는 게 이상적이긴 하다. 그러나 김태군으로선 쉽게 주전을 내줄 마음이 없는 게 당연하다. 출전비중은 비슷했을 뿐, 한국시리즈서는 여전한 경험의 우위를 증명했다.
한준수가 성장하는 가운데 김태군이 더 많은 출전 욕심을 내고, 그만큼의 경쟁력을 보여준다면 KIA로선 굉장히 반가운 일이다. 사실 한준수는 이제 1년 잘했을 뿐이다. 아무래도 애버리지가 불명확한 측면이 있다.
심재학 단장도 2023시즌 막판 김태군과 3년 비FA 25억원 계약을 체결할 때 첫 2년까지는 김태군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올해까지는 김태군이 계속 주도권을 잡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결정은 이범호 감독의 영역. 올해도 KIA 안방은 김태군과 한준수의 시너지가 대단할 것으로 기대된다. 안방이 약했던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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