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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의 직설] 대한민국의 또 다른 수치!…정치판 빼닮은 ‘골때리는’ 체육회장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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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마이데일리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마이데일리

체육회장 선거가 이렇게 시끄러운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국회의원도 아니고 스포츠 단체장 뽑는데 지나치다 할 정도로 말썽이 많다. 정부가 나서 통제·간섭하고 많은 후보자들이 정치선거나 다름없는 선거운동을 한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면 정상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미국과 일본, 중국과 비교해 보자. 세 나라 모두 체육 강국. 우리나라와 교류도 많으며 국제무대에서 자주 경쟁하는 나라들이다. 스포츠 정책의 구조와 접근 방법은 각국의 역사·문화·정치체제에 따라 다 다르다. 그러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체육 발전에 높은 가치를 두는 공통점이 있다.

이기흥 대한 체육회장./게티이미지코리아
이기흥 대한 체육회장./게티이미지코리아

■미국엔 체육회 회장이 없다

미국은 대한체육회와 같은 전국을 아우르는 단체가 없다. 대신 종목별 협회가 있다. 전국 조직으로는 올림픽을 준비·지원하는 ‘올림픽 위원회’가 있을 뿐이다. 위원장 선출은 내부에서 비공개로 진행된다. 정치선거에서 볼 수 있는 치열한 선거운동은 없다. 130년 역사에서 위원장을 뽑는데 말썽이 일어난 적이 없다. 올림픽 위원회는 정치성 짙은 권력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체육은 중앙정부가 집중 통제·관리하는 국가계획 또는 사업이 아니다. 한국이나 중국, 옛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이 국가 차원에서 스포츠를 전폭 지원하는 체제·문화와는 전혀 다르다. 스포츠는 국위선양 등 국가 업적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나라의 긍지, 국민의 자부심을 위한 존재라는 인식도 크지 않다. 스포츠는 개인 또는 공동체의 성취와 행복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정부 기관으로 체육부가 없다. 스포츠는 연방정부 소관이 아니다. 정부 간섭은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의도로 여긴다. 자유시장 원칙에 높은 가치를 두기 때문에 프로리그는 물론 대학 운동부, 올림픽·페럴림픽 위원회 등 모든 스포츠 조직·단체는 정부로부터 독립해서 운영한다. 한국처럼 지자체가 세금으로 프로구단을 꾸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올림픽 위원회 역시 순수 민간단체. 일부 페럴림픽 경비 이외에는 정부 지원을 전혀 받지 않는다. 스스로 생존해야 한다. 위원장의 가장 큰 책무는 돈 버는 일. 대한체육회장처럼 정부가 주는 돈으로 활동하는 권력자가 될 수 없다. ‘체육대통령’과 같은 얼토당토않은 별명이 붙을 수 없다. 선수촌 관광, 기념품 판매 등 각종 사업을 벌이며 예산 확보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 체육에 대한 지식·경험 뿐 아니라 뛰어난 경영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 미국 올림픽 위원장은 함부로 욕심을 내 덤벼들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한국에서 보듯 사생결단하다시피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없다.

이기흥 대한 체육회장. 파리올림픽서 사격 부분 시장자로 나섰다./게티이미지코리아
이기흥 대한 체육회장. 파리올림픽서 사격 부분 시장자로 나섰다./게티이미지코리아

■일본 스포츠협회장 선거엔 말썽이 없다

일본은 한국과 비슷하게 스포츠 업적을 국가 자부심으로 여기는 문화가 강하다. 정부의 교육문화체육기술부 아래 ‘일본스포츠협회’가 있다. 스포츠협회 회장은 선거로 뽑는다.

그러나 회장 선거를 둘러싼 말썽이 일어난 적이 거의 없다. 적극 경쟁이 없다. 협의를 통한 만장일치 선출을 하는 방식. 세상에 드러나는 선거운동 대신 막후 토론이나 협의를 통한다. 갈등과 분열을 피하기 위해서다. 스포츠 정책에 대한 신념·구상이 정부 체육정책과 대체로 일치하는 인물이 뽑힌다.

정치선거 등과는 달리 스포츠위원장 선출은 국민 관심사에는 거리가 멀다. 스포츠위원회가 정치나 이익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권력 다툼이나 부정 등 문제가 없으며 위원장 선거의 논란·갈등·충돌 등이 일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집권 자민당 소속 정치인이 회장이 된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그러면 큰 논란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현재 엔도 토시아키 회장도 자민당 총무회장. 그러나 대학 때 럭비 선수를 했으며 문체부 차관, 도쿄올림픽 담당 장관을 지내는 등 의원 내내 체육 관련 활동을 했다. 스포츠 청 설립에 앞장서는 등 스포츠 진흥정책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세계에서 스포츠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나라다. 가장 중앙 집중화된 체육 체계를 가졌다. 스포츠는 정치이념과 깊숙이 연계된 정부 도구. 국제무대에서 중국 위상을 높이는 거대한 전략의 일부분으로 체육을 키운다.

대한체육회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국가체육총국’은 중앙정부 행정기관. 올림픽 위원회도 그 아래에 있다. 국장은 정부 공무원이다.

한국과 중국은 스포츠에 관한 한 비슷한 점이 적지 않다. 스포츠 성공을 국력의 반영으로 여기고 정부가 많은 투자를 하며 깊게 관여한다. 그러나 중국은 공산국가라 한국보다 정부 통제가 훨씬 강하다. 체육총국장도 임명하니 선거가 있을 수 없다.

중국은 아예 선거가 없는 독재국가이기 때문에 논외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의 체육회장 선거 논란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미국은 아예 정부로부터 한 푼도 받지 않는 민간단체가 올림픽을 이끌어간다. 한국에 대한체육회가 꼭 있어야 하나? 그래도 국민 정서가 스포츠를 중시하므로 그런 단체가 필요하다고 하자. 일본처럼 말썽 없이 회장을 뽑으면 안 되는가? 회장 선거 때마다 정치판과 똑같은 모습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가? 중국처럼 정부가 강압으로 앉혀야 하나? 체육계의 반성이 절실하다.

국민들도 스포츠를 스포츠로만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국민의 긍지·자부심에 빠져 지나치게 국제경쟁에 집착한다. 스포츠 강국을 곧 세계대국이라 착각한다. 그러니 정부의 간섭·통제가 줄어들지 않는다. 정부가 지원을 해 주니 체육계의 자생력이 생기지 않는다. 오로지 국민 세금이 만들어 주는, 체육회장이란 스포츠 권력을 쥐기 위한 볼썽사나운 싸움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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