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시간이 지나고 다시 영상을 봤을 때, (김)도현이가 정말 큰 일을 했구나…”
KIA 타이거즈 대투수 양현종(36)에게 10월28일은 야구인생에서 잊지 못할 날이지만, 한편으로 후회스러운 날이기도 하다. 양현종은 그날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서 2⅔이닝 4피안타(3피홈런) 3탈삼진 1사사구 5실점했다. 결과가 말해주듯 이름값에 못 미치는 결과였다. 초반부터 세 방의 홈런을 맞으며 경기흐름을 완전히 넘겨줬다. 단기전이라는 걸 감안할 때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날 KIA는 V12 역사를 창조했다. 리그 최강타선이 또 한번 일을 내며 기어코 통합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양현종은 V12에 기뻤지만, 자신의 투구에 대해선 당연히 만족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을 구원한 김도현(24, 2⅓이닝 3탈삼진 1사사구 무실점)에게 너무나 큰 고마움을 드러냈다.
양현종은 지난 26일 KIA 유튜브 채널 갸티비를 통해 공개된 한국시리즈 코멘터리에 출연, 그날을 돌아봤다. 우선 2차전부터 리뷰했다. 그날 양현종은 5⅓이닝 8피안타 5탈삼진 2볼넷 2실점(1자책)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한국시리즈 토종 최고령 선발투수가 됐다.
경기시작과 함께 17구 연속 포심으로 승부해 화제를 모은 경기였다. 그만큼 컨디션이 최고였고, 결과도 좋았다. 양현종이 왜 대투수인지 증명한 경기였다. 이범호 감독은 “현종이가 ‘정말 한 성격 하는 구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깜짝 놀랐다”라고 했다. 포수 김태군도 “5구째인가 6구째에 변화구 사인을 냈는데 고개를 흔들더라. 현종이 형 스타일을 아니까 하고 싶은대로 해보라고 계속 직구 사인만 냈다”라고 했다.
양현종은 “내 직구에 자신감이 있었다. 느낌이 그냥 안 맞을 것 같았다. 내가 좋았을 때는 직구가 높은 쪽으로 많이 가는 경향이 있다. 그게 타자 눈에 보이면서 범타로 많이 유도됐고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내가 힘이 있을 때까지는 쉽게 상대 타자가 공략하지 못하겠다고 내 스스로 확신을 해서 그렇게 볼배합을 가져갔다”라고 했다.
그러나 대투수에게도 역시 야구는 쉽지 않다. 삼성 타자들이 5차전에도 양현종을 잘 공략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실투가 잦았다. 양현종은 “투수로서 절대 가지면 안 되는 마음을 갖고 던졌던 것 같다. 무슨 생각이었냐면, 5차전에 지더라도 우리는 6차전, 7차전에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이 있어서 ‘오늘 게임 내가 무조건 잘해야 돼’, ‘내가 무조건 이겨야 돼’ 이런 생각이 조금은 없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너무 후회스럽기도 하고”라고 했다.
양현종에 이어 마운드에 올라온 김도현이 아웃카운트 7개를 잡는 동안 단 1명의 주자만 내보냈다. 그 사이 타선이 추격의 흐름을 만들 수 있었다. 야구에서 역전승이 100% 타자들만의 공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반전의 시작은 투수들의 분전이다. 그날 세 번째 투수 곽도규가 구원승을 따냈지만, 게임체인저는 김도현이었다.
양현종은 그런 김도현이 고마울 뿐이었다. “도현이한테는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컸다. 도현이가 정말 잘 던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도현이의 피칭을 시간이 지나고 다시 영상으로 봤을 때는 진짜 ‘도현이가 너무 큰 일을 했구나’ 싶더라. 나이 어린 후배에게 내가 그런 짐을 맡기는 것도 미안하기도 했지만, 대견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랬다”라고 했다.
사실 올해 개막 선발로테이션에서 양현종을 제외한 4명이 모두 부상으로 바뀌었다. 이때 잘 버텨준 김도현과 황동하의 공이 상당히 컸다. 이범호 감독은 장현식이 LG 트윈스로 떠나자 김도현이나 황동하 중 한 명을 불펜으로 돌릴 구상까지 했다. 그만큼 두 사람을 믿는다는 의미. 단, 이후 구단이 조상우를 트레이드로 데려오면서 이범호 감독의 구상이 바뀔 여지는 있다.
이렇듯 야구는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만 매일 이길 수도 질 수도 없다. KIA는 장기레이스에서도 단기전서도 ‘팀 타이거즈’의 힘을 보여줬다. 그래서 양현종은 V12가 기뻤지만, 한편으로 여러 감정을 느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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