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용기와 포장, 첨부문서에 제품 정보를 점자, 음성·수어영상 변환 코드로 표시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도 신중한 모습이다. 점자 표시를 의무화하는 것은 기술적·비용적 부담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다품종·소량 생산이 대부분이라 용기·포장이 다양한데 영세업체들이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26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점자 표시 의무화를 골자로 한 화장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 9월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화장품의 용기 또는 포장에 기재 사항을 표시할 때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표시를 병행할 수 있지만 의무는 아니다. 점자를 표시하더라도 제품의 명칭, 영업자의 상호 외에는 다른 상세 정보를 기입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성분이 점자로 표시되지 않으면 시각장애인들이 제품을 잘못 사용해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이에 김 의원은 화장품 제조업체가 제품의 상세한 정보를 점자 또는 음성·수어 영상 변환용 코드로 표시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지난 3일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심사를 거쳤는데, 정부 부처 반대로 재검토를 하기로 했다. 탄핵 정국이 겹쳐 장기간 계류될 가능성이 크다.
식약처와 중소벤처기업부(중기벤처부) 등은 화장품 업체에 부담이 될 수 있고, 통상 분쟁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모습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조선비즈에 “기술적인 한계가 여럿 있다”며 “비닐에는 점자 각인이 안 되고, 종이는 유통 중에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또 “한국만 점자 표시를 의무화하게 되면 유럽, 미국 등에서 국내로 수입하는 모든 화장품에도 점자를 표시해야 한다”며 “해외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고 했다.
김유미 식품의약품안전처 차장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정보 접근성을 확대한다는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업체들이 점자 표시를) 자발적으로 할 수 있도록 노력하되 의무화는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기벤처부도 보건복지위원회에 반대 의견을 냈다. 중기벤처부는 “화장품 제조업의 경우 대다수가 중소기업”이라며 “화장품마다 다른 정보를 용기와 포장에 점자로 표시하기 위해서는 포장재 및 생산설비 변경 등의 비용이 증가해 업체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화장품에 시각·청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및 음성·수어영상변환용 코드를 넣기 위한 화장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었다. 당시에도 법안은 경제성을 이유로 반대에 부딪혔고, 국회의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에 따라 이번 법안에는 중소기업이 점자 표기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식약처장이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식품의 경우 작년 6월 신설된 식품표시광고법 개정안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표시에 관한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어, 점자로 성분이 표기된 식품은 많지 않다.
식품표시광고법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했다. 당시 식약처는 “의약품과는 달리 식품은 제품이 상당히 많고 다양하다”며 “점자 표시를 의무화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점자표기 의무화의 대안으로는 QR 코드가 꼽힌다. 식약처는 실시간 식품정보확인 서비스인 ‘푸드QR’을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식품 포장에 표시된 QR코드를 카메라로 비추면 작은 글씨의 식품 정보를 크게 확대해 볼 수 있고, 시·청각 장애인은 아바타 수어영상, 점자 변환, 휴대전화 음성 변환 앱을 통한 요약 정보 등을 제공받을 수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현재 화장품은 e-라벨 시범사업이 진행 중인데 QR코드를 활용해 음성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능도 같이 탑재하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했다.
김유미 식약처 차장은 보건복지위원회에 “내년 2월 e-라벨 1차 시범사업이 끝나고 나면 3월부터 시작되는 2차 시범사업 때는 (음성 전환 기능을) 반드시 탑재하도록 유도할 생각”이라며 “점자 스티커 사업에는 그동안 식약처의 참여가 적었는데 (업체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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