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의 윤전기와 인쇄노동자들이 사라진다. 호반그룹이 서울신문 최대주주에 오른 지 3년 만이다.
서울신문은 오는 31일을 마지막으로 윤전기 작동을 멈춘다. 서울신문 제작을 담당하던 윤전부 노동자 37명 중 18명은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난다. 나머지 17명은 서울신문 내에서 사실상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되고, 2명은 중앙일보 윤전 담당 자회사인 중앙M&P로 이미 적을 옮겼다. 한겨레·경향신문 외에 드물게 윤전부를 정규직 직접고용 해온 서울신문의 역사가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1997년 11월 고건 전 총리 등이 가동식에 참석한 가운데 첫 작동한 지 27년 만이다.
“이제 다 끝난 일인데요, 뭐.” 지난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지하 3층 서울신문 윤전부에서 만난 김규섭씨가 말했다. 20년 동안 서울신문 인쇄노동자로 일한 김씨는 올해 말 회사를 떠난다. 회사가 윤전부를 폐지하는 과정에서 전직 배치를 택했지만, 지망했던 설비·소방 부서에 가지 못하고 기존 직무와 무관한 부서에 가게 되면서 희망퇴직을 하게 됐다.
영구 중단을 일주일 앞둔 이날 아침 서울신문 지하 1~3층은 여전히 분주했다. 지하 세개 층은 아래부터 급지(용지를 기계에 넣음), 인쇄, 발송 층으로 나뉘는 커다란 윤전설비로 이뤄졌다. 윤전기는 석간 헤럴드경제 신문을 한창 인쇄 중이었다. 서울신문은 지난 봄 윤전 폐지를 공식화하면서 7월부터 중앙일보에 본지 인쇄를 맡겼다. 헤럴드경제와 전자신문 대쇄만 진행하고 있다. “누구는 남고, 누구는 가고, 절반 인원으로 하려니 힘들기도 하고. 다들 불만은 많았는데 어쩔 수 없죠. 나갈 때까지 월급을 받으려면 일을 해야 하니.” 김씨가 말했다.
윤전부 구성원들은 서울신문의 윤전 폐기가 본지 인쇄 중단 결정으로 사실상 공식화됐다고 말한다. 회사는 지난 3월 12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 판형을 베를리너로 바꾼다고 공지했다. 기존 대판의 70% 크기인 베를리너판은 일간지 가운데 중앙일보 윤전 공장만 인쇄할 수 있다. 회사는 ‘지면 혁신’이라 공지했지만, 구성원들에겐 윤전 기능을 없앤다는 뜻이다.
언론노조 서울신문지부는 지난 봄 두 차례 성명과 노보를 내며 반발했다. 서울신문지부에 따르면 곽태헌 당시 서울신문 사장은 지부가 반발한 뒤 윤전부와 간담회를 열고 희망퇴직과 전직배치, 중앙일보 자회사 고용승계를 선택지로 제시했다. 조억헌 서울신문 부회장은 “고용안정 약속을 어겼다”는 반발에 지부를 만나 ‘미안하다’고 했다고 한다. 회사는 여전히 ‘인위적 구조조정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당시 지부는 대쇄에 반대하며 호반건설 창업주인 김상열 서울신문 회장 면담을 추진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호반건설은 지난 2021년 10월 논란 속에 서울신문을 인수하면서 △인위적인 구조조정 금지 △단체협약에 따른 전 직원 실질적 고용보장을 확약했다. 사측은 이듬해 프레스센터 재건축을 추진한다며 윤전·시설·발송 등 부서에 “재건축 진행 과정에서 윤전기 철거나 이전 등 업무환경에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러나 재건축 결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윤전만 폐기하게 됐다. 구성원들이 윤전 폐기를 두고 ‘언젠간 오리라 생각했지만 너무 갑작스럽다’고 말하는 이유다.
윤전부는 일간지 내 ‘3D’ 부서로 통했다. “위험하고, 더럽고, 힘들고. 기계가 돌아가는데 조작을 해야 하니 사건 사고가 많았어요. 잉크도 묻으니 지저분하고, 다치는 사람도 많고.” 김씨가 말했다. 곁에 있던 동료 A씨는 “기계를 정비할 땐 설비 속으로 들어가서 안 좋은 자세로 일하고, 높은 곳에 올라가 닦기도 하고, 중량이 큰 설비를 교체하는 작업도 있다”며 “이 모든 것을 신문이 나가야 할 시간 안에 해야 하니 더욱 위험하다. 그땐 손이 비어도 뭘 할 틈이 없다”고 했다.
이들에 따르면 서울신문은 수년 전부터 윤전 담당 퇴직자를 충원하지 않았다. 이는 호반그룹 인수 이전부터다. 사람이 줄자 일이 늘었다. 호반 인수 뒤엔 회사가 근무체제에서 ‘비번(야근 다음날 당번에서 빠져 쉬는 것)’을 없애면서 근무 강도가 높아졌던 터다.
회사는 언론에 윤전 폐지 이유 중 하나로 ‘설비 수명이 오래됐다’고 밝혔지만, 미디어오늘이 만난 3명의 윤전부 구성원은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2022년 윤전 설비 핵심부품과 소프트웨어도 30억 원을 들여 바꾸면서 문제 없이 돌아가고, 한겨레·경향신문보다 예상 수명도 길다는 것이다.
“우리 윤전끼리는 호반 인수 때부터 ‘우리 몇 년 못 버티는 거 아닌가’하고 다들 우려했죠. 그런데 호반 쪽에서는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다, 계속 같이 갈 거다 이렇게 했었고. 결국 진짜 3년 딱 버텼네요.” 김씨는 “직원들 대부분 다 희망퇴직했다. 기능직에서 이삼십 년 일한 직원들이 갑자기 영업부서에 가려니 갑갑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역시 서울신문에서 수십 년 일해온 A씨는 “회사가 고마움을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이 착한 거예요. 곧 나갈 걸 뻔히 알면서도, 인원도 부족한데 일을 사고 없이 해줬으니까요. 남아있는 소수가 신경을 쓴 덕분이죠. 그런데 회사는 모르더라고요. 일이 힘든 것도 모르고. ‘어차피 돈을 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청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울신문 사측 담당자는 24일 통화에서 “오프라인 신문인쇄 시장이 쪼그라든 건 어느 신문사나 고민이다. 외간(외부 언론사 대쇄) 물량이 줄고 고정비 부담이 늘어났다”며 “영리기업으로 경제 논리와 효율성에 따랐을 뿐이다. 전부터 검토한 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라고 밝혔다. 재건축이 결정되지 않았음에도 윤전 폐지하는 것이 약속과 어긋난다는 지적에는 “판형을 바꾸는 건 재건축에 버금가는 엄청난 결정이다. 재건축 여부와 상관없이 정책적 결정을 한 것”이라고 했다.
일부 구성원이 희망하지 않는 부서에 배치돼 회사를 떠나는 데에는 “모든 사람의 니즈를 다 충족시킬 순 없다”고 했다. 윤전기 매각 수익 관련해선 “사간다는 곳이 없어 고철로 매각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가격은 계약이 아직 안 돼 알 수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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