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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60대 아빠가… ‘화장실 청소’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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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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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과 산사태를 예방하는 일이라 했다. 구청에서 공고 낸 1년짜리 일이었다.

1961년생 박근호씨(가명)는 여기에 지원해보기로 했다. 수당까지 다 하면 매달 200만 원 정도는 번다고 했다.

젊었을 땐 바코드 만드는 일을 했었다. 그걸로 두 딸과 아들 하나를 다 키웠다. 자식들 결혼시킬 때까진 애써보려고, 행여나 짐 되지 않으려고, 아직 잘할 수 있다고. 그게 근호씨에게 ‘일’의 의미가 여전히 그랬다. 누구에게나 그랬을 거였다.

“아빠, 다시 일하게 됐다. 합격했다.”

합격한 날엔 소식을 가족 단톡방에 가장 먼저 알렸다. 모두가 축하해주었다. 아빠가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된 것을.

근호씨는 열심이었다. 동료들 사이에서도 선하고 성실하단 얘기가 나왔다.

산불과 산사태를 예방하는 줄 알고 갔으나, 실제 더 해야 했던 일이 이랬다. 작업 지시자와의 실제 카톡 내용이다.

‘○○○ 멧돼지 포획틀 먹이 공급’.
‘○○○○ 포획틀 회수.’
‘○○○ 멧돼지 기피제 작업.’
‘○○ 간이 화장실 청소.’ 
‘○○○ 간이 화장실.’
‘○○ 간이 화장실.’

▲ 박근호씨가 작업 지시자와 나눈 카톡. 간이 화장실을 청소하고 보고하는 내용이다. 사진=박근호씨 가족 제공
▲ 박근호씨가 작업 지시자와 나눈 카톡. 간이 화장실을 청소하고 보고하는 내용이다. 사진=박근호씨 가족 제공

산불․산사태 예방과 관계없어 보이는 일까지 도맡아 했다. 그러나 일자리 공고에 적힌, ‘기타 관계 공무원이 필요하다고 인정되어 지시한 제반 업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었다. 은퇴 후 취업에 성공했다며 좋아하던 아빠가, 이런 일까지 하는 줄 가족들은 몰랐다.

뒤늦게 알게 됐다. 근호씨가 제초 작업을 하다 쓰러진 뒤에야. 2024년 7월11일. 산불 예방이란 명목으로 풀을 베러 간 누군가의 남편은, 아빠는, 성난 벌떼에 머리를 쏘여 땅바닥에 쓰러졌다. 벌에게서 지켜줄 보호 장비는 아무것도 지급되지 않았다.

▲ 쓰러진 뒤 병상에 누워 지내는 박근호씨. 사진=박근호씨 가족 제공
▲ 쓰러진 뒤 병상에 누워 지내는 박근호씨. 사진=박근호씨 가족 제공

가까스로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 살아난 뒤에도 죽은 것처럼 의식 없이 지내고 있다. 벌써 5개월이 흘렀으나 근호씨는 허공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호흡기를 계속 붙이면 매달 750만 원씩 들고, 떼면 가족들의 손으로 숨지게 하는 것. 오갈 데 없는 진퇴양난의 지옥을 겪게 만든 건 어떤 구조 때문이었을까.

‘저 아는 분도 기간제 일하다가 수해 복구 나갔는데 감전돼서 돌아가셨습니다.’

‘기간제인데 할 일이 너무 제한적이라서 다른 잡무를 어쩔 수 없이 시키네요. 그건 이해하는데 안전 장비를 제대로 지급해야 하는 건데….’

혹자가 기사의 댓글에 이리 적은 걸 봤다. 물음이 꼬릴 물었다. 절박한 일자리를 부여잡느라 위험에 내몰리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노년의 일자리라고 쥐어짜듯, 아무런 고민 없이 이리 대하는 게 맞나.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으니까. 그게 한때 사회의 척추뼈가 돼 지탱했던 이들에 대한 예의일지.

조금만 애정을 가져도 달라진다. 예컨대, 고되게 폐지를 주웠었던 할머니들. 이들에게 ‘강아지 수제 간식 만드는 일’을 생각해낸 건 당시 한국외대에 다니던 한아름 학생이었다. 힘들 때마다 그에게 위로가 돼줬던 할머니의 밥 한 끼가 좋아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주부 경력 40~50년씩 되는 할머니들은, 장 보는 것부터 남달랐다. 호박 고구마 하나를 집고, 한 바퀴 돌리고, 눈으로 훑고. 흉내 낼 수도 없는 ‘감’으로 좋은 재료를 챙긴 뒤 능숙하게 요리하니 강아지들이 좋아서 날뛰었다.

할머니들이 무릎과 허리를 굽히는 중노동에서 벗어나게 하고, 자기 실력 발휘까지 충분히 할 수 있게 한 일자리. 그건 누군가의 진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된 거였다.

▲ 강아지 수제간식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고르는 할머니. 사진=남형도 기자
▲ 강아지 수제간식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고르는 할머니. 사진=남형도 기자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던 박아무개 할머니. 그는 70년이 넘도록 그 꿈을 이루지 못하다, 강아지 간식을 만들어 떳떳하게 번 돈으로 학원을 등록했단다. 할머니가 이리 말했다.

“늙은 얼굴이라도 화장품이라도 바르고 출근한단 게 참 좋더라고요. 지하철 타고 젊은 사람들이랑 같이 일하러 오잖아요. 그게 이리 좋은 줄 몰랐어요.”

‘노인 일자리’라 검색하면 이런 뉴스가 많이 나온다. ‘3504명을 모집한다’, ‘5192개 제공’, ‘6000여 명 참여.’ 여기에 ‘사망’ 하나를 추가해 붙이니 이런 통계도 나왔다. ‘최근 5년간 노인 일자리 참여자 55명 사망, 안전사고 1만여 건.’

아빠가 깨어나길 간절히 기다리는, 근호씨 딸 수아씨가 이리 말한 게 먹먹했다.

“아빠가 계속 일하고 싶어서, 그 지시를 안 따를 수 없었을 거예요.”

미디어오늘
content@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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