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시 교하면 산남습지. 무릇 그곳에는 주체할 수 없는 평범함 속에는 어느 땅도 품지 못한 비범함이 숨어 있다.
면적 3.1㎢(길이 6.4㎞, 폭 1.1㎞)로 한강하구 습지 가운데 가장 큰 산남의 생명력은 해가 뉘엿뉘엿 질 때부터 깨어난다. 산남습지가 장항습지와 홍도평야와 달리 먹이터가 아니라 잠자리인 연유다. 헝클어진 잡초 숲은 철새들에게 이부자리이자 요다.
야행성 육식동물로 멸종위기에 놓인 고양잇과의 삵(살쾡이)이 산남의 늪에서 웅크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꿩이나 들쥐, 토끼를 먹이로 하는 삵이 있다는 것은 단순한 의미를 뛰어넘는다. 다양한 생명이 숨을 쉬는, 살아있는 땅이라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준다.
해 질 녘 산남습지에서 들려오는 철새들의 울음소리는 철책을 지키는 군인들에게는 참기 힘든 곤욕으로까지 다가온다. 잠자리로 찾아드는 수천 마리의 큰기러기와 쇠기러기 떼, ‘누가 볼까’ 갈대숲 속으로 살포시 날개를 접는 재두루미와 황오리, 섬매자기와 모새달 등 알뿌리 식물의 둥지로 파고드는 멸종위기종 2급 개리와 저어새… 온갖 겨울 철새들의 안식처가 바로 산남습지다.
이들을 노리는 수리류 큰말똥가리가 날카로운 부리를 세우는 것도 바로 이때다. 창공을 휘~이 저으며 활강하는 맹금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산남의 매력이다.
논둑 사이로 갈래갈래 퍼져 뻗어있는 갯벌 수로도 이곳 산남습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붉은발말똥게의 더할 나위 없는 서식처다.
산남의 독특한 생명력은 혼자 일궈낸 것이 아니다. 파주시 구산동에 이르는 100만여㎡ 농경지가 곁에 있기에 가능했다. 구산동 장월평의 농경지는 산남을 찾는 겨울 철새의 생명줄이다. 20여종의 멸종위기 조류의 먹이터인 것이다.
철새는 넓어지고 있는 먹이터가 결코 달갑지만은 않다. 산남습지 주변의 거무죽죽한 땅은 유기물이 풍부한 기름진 흙이 토대다. 여느 농토가 한해 서너 번의 비료가 필요하다면 이곳은 단 한 번이면 충분한 축복받은 비옥의 땅이었다.
그러자 농사를 업으로 삼은 농민들은 갈대밭 산남을 개간했다. 더 많은 쌀을 생산할 욕심에 유기농이 아닌 농약을 쳤다. 철새들에게는 독극물이나 마찬가지다. 최근 환경단체에서 논의되고 있는 친환경 농법이 나온 배경이다.
산남을 위협하는 것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농토를 잇는 산남의 가지 수로에는 희멀건 오수가 졸졸거린다. 하수종말처리장을 거치지 않은 오폐수가 그대로 흘러들고 있다는 것이다.
한강하구는 국내 17개 주요 하구 가운데 오염원의 비율이 가장 높다. 하지만 고도처리시설은 낙동강 하구의 8.5%에 불과하다. 한강하구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서울의 경우 높은 하수도 보급률(98.5%)을 보였다. 그러나 산남에 영향을 바로 미치는 김포시와 파주시의 하수도 보급률은 90%정도고, 하수종말처리장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약 10년 동안 총인과 총질소의 오염 농도는 2~3배나 증가했다. 이는 하천과 연안 해역의 부영양화와 적조 현상을 부르고 있다.
인구집중과 산업시설 집단화에 따른 생활하수와 산업폐수로 수질은 점점 나빠지고, 갯벌과 덤불 늪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잃고 있다.
/박정환 선임기자 hi2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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