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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미래’는 이렇게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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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홍 감독의 지시를 듣는 서울이랜드FC 18세 이하 선수단 [사진=이서연]
박원홍 감독의 지시를 듣는 서울이랜드FC 18세 이하 선수단 [사진=이서연]

 ‘훗날 당신이 보고 싶은 K리그, 지금 이곳에서 시작됩니다.’ K리그 25개 프로 구단 산하 유소년팀인 ‘K리그 유스’를 소개하는 문구다. 2008년, 한국프로축구연맹이 K리그 전 구단에 연령별 유소년팀 창설을 의무화한 이래 축구계의 유소년 육성은 차근차근 체계적으로 정비돼 왔다. 그렇게 성장한 K리그 유스는 이제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를 넘어 한국 축구의 미래까지 바라보게 됐다.

10월 24일 오후 7시, 어두운 축구장에 조명이 켜지자 앳된 얼굴의 선수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겉보기엔 영락없는 소년이지만, 잔디 구장을 달린 경력은 벌써 십수 년이나 된다. 하루를 축구로 시작해 축구로 끝내는 이들만이 ‘진짜 선수’로서 당당히 필드에 설 수 있다. 이것은 성인뿐 아니라 어린 선수에게도 예외 없는 진리다. 몸을 풀며 주고받는 대화는 온통 축구 이야기다. 떠들며 웃다가도 호루라기 소리 한 번에 금세 눈빛이 반짝거린다. 이들은 지난 3월부터 8개월간 매주 K리그 주니어 리그 경기를 치렀다. 리그 경기를 하루 앞둔 24일, 어린 소년들의 마음가짐은 성인 프로 선수와 다를 바 없이 긴장되었다. 

서울이랜드FC 18세 이하 팀에서 훈련 중인 김지완 선수 [사진=이서연]
서울이랜드FC 18세 이하 팀에서 훈련 중인 김지완 선수 [사진=이서연]

“동네에서 형들이 축구하는 모습이 재밌어 보여서 저도 하게 됐어요.” 서울이랜드FC 18세 이하 팀 오른쪽 수비수 김지완(17) 군은 6살에 시작해 10년 넘게 공을 차 왔다.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축구와 함께한 김 군은 공이 곁에 없을 때도 축구 생각뿐이다. 옷에 관심 많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좋아하는 것은 여느 고등학생과 같지만, 그의 하교 후 일상은 조금 특별하다. 친구들이 학원이나 피시방, 분식집에 갈 때, 그는 묵묵히 축구장으로 향한다.

김 군은 중학교 1학년에 처음 구단 산하 유소년팀에 입단했다. 초등부 경기를 살피러 온 당시 서울이랜드FC 15세 이하 팀 감독이 김 군의 달리기 속도와 공 다루는 실력을 눈여겨보고 발탁했다. 타고난 재능에 성실함까지 갖춘 그는 평일 오후마다 진행되는 훈련에서 늘 돋보였다. 그 덕에 15세 이하 팀을 거쳐 18세 이하 팀에서도 뛸 수 있게 됐다. “저는 매 순간 꼭 우리 팀의 성인 프로 선수로 뛰겠다는 각오로 훈련해요.” 내내 수줍어하던 김 군의 표정이 결연해졌다.

그런 그에게도 슬럼프는 있었다. 그는 수비수로 활약하기 전에 줄곧 공격수였지만, 성장을 거듭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올해 초 새로 부임한 박원홍 감독은 그에게 수비수를 제안했다. 유소년팀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경쟁이 심해져서 선수들이 걸러지는 구조다. 구단 산하의 유소년팀은 선수들을 자기 구단 프로팀에 진출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만큼 경쟁이 더 치열하다. 선수들은 자신이 구단과 한국 축구의 미래를 이끌 주역임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이런 경쟁 구도가 어린 선수들에게 지나치게 냉정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프로 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전 준비라고 생각하면 결코 과하지 않다. “수비수를 제안받았을 때는 경쟁에서 밀렸다는 생각에 축구를 관두고 싶었지만, 그래도 이겨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김 군은 교체 출전한 경기에서 역전 골을 터뜨린 것을 기점으로 다시 살아났다. 이제 그의 롤 모델은 울산 HD FC 유소년팀 출신으로 유럽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수비수 설영우다.

프로 축구 클럽의 유소년팀은 팀의 경쟁력을 높이는 기반일 뿐 아니라 클럽의 전통과 명성을 잇는 매개체다. 구단 소속 코치진에게 직접 지도받으며 팀 색깔과 축구 철학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K리그를 응원하는 팬들은 유소년팀 소속 선수들이 어린 시절부터 훈련을 통해 기초 기술과 전술을 익힌 만큼 성인팀에 합류할 때 더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박 감독은 “구단 프로팀의 스타일에 맞는 선수를 발굴할 수 있다는 것이 K리그 유스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해마다 유스 출신 K리그 선수의 비중은 늘고 있지만, 막상 프로로 넘어가는 전체 인원을 따져 보면 그리 많지 않다.

서울이랜드FC 18세 이하 팀에서 훈련 중인 송준엽 선수 [사진=이서연]
서울이랜드FC 18세 이하 팀에서 훈련 중인 송준엽 선수 [사진=이서연]

그러다 보니 유소년 선수들은 확신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에 휩싸인다. 서울이랜드FC 18세 이하 팀 수비수 송준엽(16) 군은 11살에 테스트를 보고 유스팀에 입단해 연령별 팀을 모두 거쳤다. 대한축구협회에서 유소년 선수 발굴을 목적으로 시행하는 ‘골든에이지’ 프로그램의 14세 이하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송 군은 실력 있는 인재다. 그러나 그 역시 고등부 유스팀 입단을 앞두고 축구를 계속할지 갈등했다. 재능 있는 선수들이 넘쳐나는 이 세계에서 미래는 누구에게도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박 감독은 훈련 외적으로, 개인 면담과 팀별 미팅, 구단 차원의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 선수들의 심리적인 관리를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 군은 면담을 거치며 슬럼프에서 벗어났다. “감독님과 대화하면서 마음이 되살아났어요. 이제는 프로 데뷔만 생각하며 뛰고 있습니다.”

어린 선수들은 오직 축구에 대한 열의 하나로 이 외로운 길을 걸어간다. 유스팀도 이를 알기에 선수 육성을 넘어 축구계를 지원한다는 생각으로 선수들의 진로 선택을 돕고 있다. 박 감독은 “축구를 했던 친구들이 축구 산업에 종사하면 상당한 장점이 있다”며 트레이너, 지도자, 심판과 같은 방향을 추천하고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K리그 유스 체계가 여러 방식으로 인재들을 길러내 한국 축구 발전에 이바지하는 셈이다.

“유스팀 육성이 프로 리그, 한국 축구의 미래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정현 유스지원팀장의 말이다. FC 바이에른 뮌헨의 김민재, FC 유니온 베를린의 정우영 등 한국을 대표하고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수많은 선수가 유스팀을 거쳤다. 정 팀장은 “결국 유스의 발전이 리그의 발전을 이끈다”며 좋은 프로 축구 선수를 지속적으로 배출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퍼블릭뉴스와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간 협약에 의거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이서연 대학생기자가 작성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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