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영하 10도의 혹한 속에서 한 등산객의 생명줄이 된 것은 고작 16%의 휴대폰 배터리였다.
지난 21일, 경기도 용문산에서 발생한 한 조난 사고는 10시간에 걸친 소방대원들의 처절한 사투 끝에 극적인 구조로 마무리됐다.
화재 진압 후 휴식도 못한 채 달려간 소방대원들의 헌신적인 구조 활동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16% 배터리 남은 요구조자, 생존을 위한 사투
오후 5시 8분, 용문산 백운봉에서 한 통의 다급한 신고가 접수됐다.
30대 A씨는 하산 도중 기댄 나무가 부러지면서 추락했고, 심한 근육통과 엉치뼈 통증으로 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위급했던 것은 A씨의 휴대폰 배터리가 16%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구조대원들은 A씨와 30분마다 한 번씩 연락하기로 약속하고 전원을 꺼두게 했다.
이는 구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다. 조난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휴대폰이 꺼지면 구조는 불가능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쌓인 눈으로 등산로조차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양평소방서 119구조대 2팀 소속 6명의 구조대원이 투입됐다.
이들은 화재 진압 직후 휴식은커녕 식사도 하지 못한 채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길 없는 산길을 헤치고 올라가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전날 내린 눈으로 등산로는 흔적도 없었고, 쓰러진 나무들이 곳곳에 가로막고 있었다. 신고 접수 2시간 50분 만에 A씨를 발견했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쌓인 눈 때문에 헬기 착륙이 불가능해졌고,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기온 속에서 육로 하산이라는 더 큰 도전이 시작됐다. 해가 지면서 기온은 급격히 떨어졌다.
오후 10시경 영하 6.5도였던 기온은 새벽 2시경 영하 10.4도까지 떨어졌다. 이러한 극한의 추위는 조난자뿐만 아니라 구조대원들의 건강까지 위협했다.
A씨는 시간이 갈수록 상태가 악화됐다. 근육통과 경련에 이어 구토 증세까지 보였고, 결국 저체온증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구급 대원마저 저체온 증상을 보이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다행히 공흥센터에서 구급대원 3명과 진압대원 3명이 추가로 투입되면서 구조에 속도가 붙었다.
마침내 새벽 3시 16분, 10시간여에 걸친 사투 끝에 구조가 완료됐다.
구조 후 드러난 대원들의 희생
극적인 구조 활동을 마친 대원들의 상태도 심각했다.
일부는 귀가 후 동상 판정을 받았고, 나머지 대원들도 젖은 장갑과 신발 탓에 손발이 퉁퉁 부어있었다. 그럼에도 우 소방교는 “국민의 세금으로 일하는 소명을 다한 것뿐, 모든 소방대원이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며 담담히 말했다.
한편, 소방대원들의 처우는 여전히 열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부터 구조구급활동비가 20만원으로 인상됐지만, 여전히 많은 소방관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소방관의 85%가 7급 이하의 하위직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30년을 근무해도 7급으로 퇴직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고를 통해 동계 산행 시 충분한 배터리 확보와 안전장비 구비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강조됐다.
또한 극한의 상황에서도 시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소방대원들의 처우 개선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산행 전 기상 상황을 철저히 확인하고, 충분한 안전장비를 구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특히 겨울철에는 배터리 보조기기와 보온장비를 필수적으로 챙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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