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이정우 기자= 정부가 노후 종잣돈인 퇴직연금의 중도 인출 요건을 강화하기로 했다. 일정 소득을 꾸준히 보장하자는 연금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다.
23일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크게 확정급여형(DB·Defined Benefit)과 확정기여형(DC·Defined Contribution)으로 나뉘는 퇴직연금 유형 중 법으로 정한 예외적인 사유를 충족하면 중도에 인출할 수 있는 DC형의 중도 인출을 까다롭게 하는 등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회사가 운용을 책임지는 DB형 퇴직연금은 중도 인출이 불가능하고 법정 사유에 한정해 담보 대출만 할 수 있다.
DC형은 노동자 개인이 민간 금융기관과 계약해 직접 투자상품을 골라 스스로 책임지고 운용하는 자율성이 높은 유형이다.
퇴직연금 제도의 근거가 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서 정한 DC형 퇴직연금의 중도 인출 가능 사유는 주택구입, 주거 임차, 6개월 이상 장기 요양, 파산 선고, 회생절차, 천재지변 등으로 인한 피해 등이다.
통계청이 지난 16일 발표한 ‘2023년 퇴직연금 통계’를 보면, 지난해 DC형 퇴직연금을 중도 인출한 인원은 6만4천명이고 인출 금액은 2조4천억원에 달했다.
지난해보다 인원은 28.1%, 금액은 40.0% 각각 늘었다. 2019년 이후 줄어오다가 증가세로 흐름이 바뀌었다.
지난해 중도인출자의 52.7%(3만3천612명)가 주택구입 목적으로 퇴직연금을 인출했다. 주거 임차를 사유로 든 인원도 1만7천555명으로 27.5%로 집계됐다. 80%가 넘는 인원이 주거 문제로 퇴직연금에 손을 댄 셈이다.
이어 회생절차 13.6%(8천670명), 장기 요양 4.8%(3천45명), 기타 755명(1.2%), 파산선고 0.2%(146명) 등이 뒤를 이었다.
중도 인출 인원을 연령별로 보면 30대 42.4%(2만7천16명), 40대 33.3%(2만1천238명), 50대 15.0%(9천566명), 20대 이하 6.5%(4천154명), 60대 이상 2.8%(1천809명) 등의 순이었다.
30·40대 비중이 전체의 4분의 3이 넘는 75.7%(4만8천254명)에 달했다. 차곡차곡 퇴직연금을 쌓아 노후를 대비해야 할 30·40세대가 노후 종잣돈인 퇴직연금을 깨서 부동산을 사거나 주택을 임차한 것이다.
퇴직연금이 노후 소득 보장 장치로 역할 하려면 일시금보다 연금으로 받도록 하는 ‘연금화’가 주를 이뤄야 한다. 연금으로서 실효성을 가지려면 적립금의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적립액이 일정 수준에 달해 퇴직 뒤 연금으로서 쓸모가 있으려면 납입금을 중도에 인출하거나 해지하지 않고 퇴직 때까지 일정 규모 이상 적립금을 쌓아둬야 한다.
이에 정부는 퇴직연금이 실질적 노후 소득 보장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중도 인출을 보다 엄격하게 제한하는 등 개선하기로 했다.
정부는 중도 인출을 어렵게 하는 대신 퇴직연금 담보대출을 활성화하는 등 연금 자산의 중도 누수를 방지하는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중도 인출 자금 용도가 주로 주택구입과 관련된 점을 고려해 적립금을 보전하면서 주택구입 자금을 지원할 수 있게 ‘적립금 담보대출’을 확대하겠다는 복안이다.
연금 전문가 다수도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퇴직연금의 취지를 살리려면 중도 인출을 억제하는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중도 인출 사유를 해외 연금 선진국처럼 영구장애, 과도한 의료비, 주택 압류 등 ‘예측 불가능한 경제적 곤란 상황’으로 분명하게 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실제 미국의 경우는 사망, 영구장애 등 극히 제한적인 사유일 때만 중도 인출을 허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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