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계엄선포와 관련하여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7일 대국민 담화가 무색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가 보낸 서류 수령을 거부하는 등 법적·정치적 문제를 최대한 회피하고 있다. 이를 두고 “대통령답지도, 우두머리답지도 않다”(동아일보), “법적 허점을 악용하는 처사”(중앙일보) 등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협조·시간 끌기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절차가 차질을 이어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가 보낸 준비명령과 출석요구서 서류를 받지 않고 있으며, 변호인단 구성 선임계 제출도 미루고 있다. 이에 대해 23일 중앙일보·동아일보 등 중앙 일간지는 윤 대통령이 법의 허점을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류조차 안 받는 尹 “국민으로서 좌절스러워”
동아일보는 1면 「盧-朴 즉시 수령한 탄핵서류, 尹 일주일째 거부」에서 “윤 대통령이 일주일째 관련 서류 송달을 거부하면서 탄핵심판 지연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법률가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 고의적인 지연작전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권은 ‘상식 이하의 법꾸라지’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은 곧바로 서류를 수령했다면서 “(윤 대통령이 서류를 받지 않는 것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 2심 결과 등을 통해 여론 반전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지연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빈말, 거짓, 무책임… 대통령답지도 ‘우두머리’ 답지도 않다」에서 “윤 대통령이 여론 반전의 계기를 모색하며 의도적인 지연 작전을 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며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이라더니 탄핵이고 수사고 모두 피하면서 국정 불확실성만 키우고 있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윤 대통령은) 1차 탄핵안 표결 직전 ‘2분 담화’에서 한 번 고개를 숙였을 뿐 이후로는 너절한 빈말과 거짓, 무책임과 버티기, ‘끝까지 싸우겠다’는 여론 선동으로 일관할 뿐이다. 대통령답지도 않고, 한낱 ‘우두머리’답지도 못하다”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사설 「윤 대통령의 버티기…‘책임은 나에게’ 명패가 부끄럽다」에서 “탄핵의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한 실체적 쟁점도 아니고 형식적 절차에 불과한 서류 송달부터 이렇게 나오는 건 법적 허점을 악용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이제라도 시간끌기를 멈추고 ‘법적·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던 대국민 담화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렇게 시간을 끌다 보면 국면을 전환하고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면 중대한 오산”이라며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집무실 책상의 명패를 자랑스럽게 공개했던 건 바로 윤 대통령 자신이 아니었나”라고 했다. 이어 중앙일보는 “지난 2년 7개월 동안 국정 최고책임자였던 윤 대통령이 ‘침대축구’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계속 시간을 끈다면 국민에게 더 큰 실망을 안겨줄 뿐”이라고 밝혔다.
이윤주 경향신문 정책사회부장은 칼럼 「계엄 선포 대통령의 기막힌 서류 반송 전략」을 내고 “시간을 끌며 책임을 피하는 것은 법정에 서야 할 개인 그 자신으로는 합리적 선택일지 모르나, 그와 같은 대통령을 둔 국민으로서는 좌절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하면서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다 말하는 국민들마저 적으로 돌려세울 참인가”라고 했다.
외교 시계도 멈췄다… “대통령의 자폭”
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 외교마저 일시정지됐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등 국제사회 격변기에 한국 정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지난 20일 트럼프 당선인을 만나는 등 기업은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대비에 나섰지만, 정부는 한 발 뒤떨어졌다는 비판이다.
조선일보는 4면 「세계는 줄줄이 트럼프와 정상회담… 한국은 ‘정용진 15分’이 유일」에서 “우리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 측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직무정지 전에는 물밑 대화가 오갔으나, 최고 결정권자의 부재로 이와 같은 교류가 막힌 것”이라며 “정부 안팎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닥쳐올 경제·안보 위협에 한국만 무방비 상태라는 우려가 나온다”고 했다.
서울신문은 사설 「트럼프 만난 정용진… 이제라도 경제외교 민관 총력전을」에서 “트럼프 방식의 자국 우선주의에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전략 등 철저한 대비가 절실했으나 탄핵 리스크까지 겹쳐 대미 외교는 사실상 실종 상태다. 트럼프의 취임식에 누가 갈 것인지조차 논의되지 않았다”며 “민관이 함께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다양한 채널을 동원한 대미 총력전에 매달려야 할 때”라고 했다.
경제신문의 비판도 이어졌다. 서울경제는 「민관 네트워크 총동원해 ‘트럼프 스톰’ 정교하게 대비해야」 사설에서 “한국은 계엄·탄핵 정국 혼란으로 인해 정상 외교는 물론 대미 외교 전략 전반에 걸쳐 차질을 빚고 있다”며 “정부의 경제·안보 컨트롤타워를 조속히 정비하고 민관정 원팀으로 한미 협력 관계 확대를 위해 함께 뛰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파이낸셜뉴스 역시 사설에서 “탄핵정국 속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한국 패싱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날로 커지고 있어 하루하루 절박한 심정”이라며 “트럼프의 의중을 읽고 우리 입장을 제대로 전달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했다.
임우선 동아일보 뉴욕특파원은 칼럼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의 자폭」에서 “지난 십수 년간 민관이 진행해 온 ‘국격과 국가 브랜드를 높이자’는 노력이 허탈하다 못해 허망하게 느껴질 정도다. 돈으로 환산할 수조차 없는 국가의 피해”라고 했다. 임 특파원은 트럼프 당선에 대비해 외교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면서 “한국도 정부와 기업이 온통 달라붙어 밀어주고 끌어줘도 부족할 때지만 어디서도 국가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 기업들은 부모 없는 아이처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에 대비하려 현지에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 공포 미루는 韓 “피의자가 소방수 된 양”
이런 가운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회를 통과한 내란죄·김건희 특검법 공포 시한을 이달 말까지 숙고하겠다고 했다. 헌법재판관 임명 여부에 대해서도 확답을 내리지 않았다. 민주당은 오는 24일까지 한 대행이 특검법을 공포하지 않을 경우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동아일보와 한겨레·경향신문 등은 한 대행이 적극적으로 역할 수행에 나설 것을 요구했으나, 조선일보는 민주당을 비판했다.
정용관 동아일보 논설실장은 칼럼 「韓 대행은 ‘윤석열 대행’이 아닌 ‘대통령 대행’이다」에서 “한덕수 대행은 더는 대통령의 명을 받는 국무총리가 아니다. 자신을 임명해 준 ‘윤석열 대행’이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 대행’”이라며 “도의적 인간적 문제를 따질 때가 아니다. 차기 권력의 향배를 떠나 ‘국체’의 안정적 유지와 전환이 걸린 문제”라고 했다. 정 실장은 “여야정협의체에서 해법을 찾아내든 특검 수용의 길을 택하든 한 대행이 보일 ‘정치 곡예’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사설 「한덕수, 24일 국무회의에서 내란·김건희 특검법 공포해야」에서 “한 대행은 내란죄 공범 혐의 피의자”라며 “그런 사람이 마치 ‘소방수’라도 되는 양 대행 권한을 선택적으로 행사하니 어이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경향신문은 “작금의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윤석열 탄핵심판과 수사가 최대한 조속히 이뤄지도록 조치해야 한다. 당장 내란죄·김건희 특검을 24일 국무회의를 거쳐 공포하기 바란다”고 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한파 속 파면·구속 외친 민심, 한 대행 더 시간끌기 말라」에서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이 수사 대상인 ‘국정농단 특검법’에 대해서도 국회를 통과한 지 닷새 만에 거부권을 쓰지 않고 공포한 바 있다. 대통령도 아닌 한 권한대행은 도대체 뭘 위해 거부권을 운운하나”라며 “계속 특검 출범을 방해한다면, 국민의 심판은 먼저 한 권한대행을 향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사설 「민주당 또 韓대행 탄핵 협박, 계엄 빌미로 점령군 행세」에서 민주당의 행보에 대해 “점령군이 무력을 앞세워 적진의 장수에게 겁을 주는 듯한 행태”라고 비유하면서 “민주당이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면서 한 대행을 협박하고 국민의힘까지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벼랑 끝에 선 나라 사정이야 어찌됐든 서로 정치적 이익만 챙기겠다는 속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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