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방 빼고 경찰은 차 빼라!”
윤석열 대통령 체포·구속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선 ‘전봉준투쟁단’이 경기 과천시 남태령 고개에서 경찰에 막혀 대치를 이어간 지 하루가 꼬박 지난 22일. 농민들을 응원하기 위해 속속 모여든 시민들의 외침은 어느새 뜨거운 함성이 됐다. 경찰은 28시간 넘는 대치 끝에 결국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가는 길을 열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등이 모인 전봉준투쟁단은 지난 16일부터 전남과 경남에서 각각 트랙터 행진을 시작해 전날 정오께 남태령에 이르렀다.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윤 대통령 관저였으나 서울지하철 4호선 남태령역 인근 도로 전차선을 통제한 경찰 차벽에 막혀 밤샘 농성을 벌였다.
이날 전봉준투쟁단이 남태령 고개를 무사히 넘은 것은 ‘길이 열릴 때까지’ 거리를 지킨 시민들 덕이었다. 경찰을 압박하러 달려나온 시민들은 전날 오후부터 ‘즉석 집회’를 열었다. 영하 11도의 한파 속에서도 시민들은 케이팝과 ‘농민가’를 번갈아 부르며 긴 동짓날 밤을 버텼다. 현장에 오지 못한 이들은 따듯한 국밥 등 배달 음식과 방한용품, 음료 등을 보냈다. 시민들의 연대 행렬은 밤새 불어나 8개 차로를 가득 메웠고 이날 오후에는 3만명(전농 추산)에 이르렀다. 결국 경찰은 이날 오후 4시40분께 차벽을 물렀고, 길이 열리자 시민들은 “이겼다! 만세!”라며 환호하고 노래를 부르며 행진을 이어갔다.
좀처럼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던 농민운동에 이토록 뜨거운 연대가 쏠린 배경에는 ‘소셜미디어의 힘’이 있다. 전날 낮 엑스(옛 트위터)에 경찰이 트랙터 운전자를 강제로 끌어내고 강경 진압하는 영상이 공유되면서 많은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낸 것이다. 이미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집회의 전농 상여투쟁을 시작으로 최근 한 여성 농민이 엑스에서 공유하는 전농 소식에 젊은 누리꾼들이 화력을 더해오던 참이었다. 전봉준투쟁단의 상경을 지켜본 시민들에게 응원봉을 들고 남태령으로 ‘마중’ 나가는 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트랙터를 막은 ‘경찰 차벽’이 부당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구로구에서 온 정윤현(22)씨는 “서울 입구에서 트랙터가 막혔다는 건 여전히 경찰이 윤 대통령을 엄호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윤 대통령은 소환도 못 하면서 시민 기본권은 왜 막냐”고 꼬집었다. 김은진(60)씨도 “청년들이 가장 소중한 물건인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나서듯, 농민들도 자신의 가장 값진 농기계인 트랙터를 끌고 상경한 것”이라며 “트랙터 시위는 의사표현의 한 방법일 뿐, 불법을 저지른 건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이라고 했다.
농민을 향한 연대의 목소리도 잇따랐다. 직장인 송아무개(29)씨는 “윤 대통령이 수차례 (입법) 거부권을 써온 것에 대해 불만이 컸는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도 양곡관리법 등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농민들만 잘살겠다고 양곡법을 주장하는 게 아닌데 거부권을 남발하는 건 월권”이라고 지적했다. 발언대에 오른 한 여성 농민도 “농촌에 살면서 때로 외로움을 느꼈는데 오늘 모인 시민들을 보며 힘을 얻었다. 건강한 먹거리 농민들이 책임지겠다”고 외쳤다. 시민들은 “농민이 최고다”라며 화답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도 전봉준투쟁단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야당 의원들이 현장을 찾아 경찰과 협상에 나섰고, 윤석열퇴진비상행동은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이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는 트랙터 행렬을 막아선 서울 방배경찰서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처벌해달라는 고발장이 접수되기도 했다.
한겨레 박고은, 김가윤 기자 / euni@hani.co.kr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