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공무원은 엄혹하다. 융통성이 없다.’ 국민들이 국세청 공무원들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 중 하나다. 특히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직원에 대해선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세무조사 중에서도 기업 특별(비정기)세무조사를 하는 ‘조사4국’의 직원은 어떨까. 조사4국은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기업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통한다. 기업의 불법적인 탈세 행위에 냉정하게 칼을 내리는 게 이들의 역할이자, 사명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차갑게 대하는 건 아니다. 세정 도움이 필요한 곳에선 선행으로 긍정의 에너지를 전하기도 한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의 조영탁 2과장도 이런 세무공무원 중 한 명이다. 철저한 세무조사에 기업인들이 기피하는 인물일 수 있겠지만, 영세 봉제업자들은 그를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한다.
30년째 국세청 공무원으로 일하는 조 과장은 공직기간의 절반인 15년 동안 봉제 소공인들을 위한 세무 상담 봉사 활동을 해오고 있다. 2009년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고 세정 복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봉제업체를 찾아 다니며 사업자 등록을 권한 게 계기가 됐다.
사업자 등록을 하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고 겁을 먹었던 봉제 소공인들은 그의 설득에 하나둘 사업자 등록을 했다. 사업자 등록 후 이들의 세무 업무를 도운 것도 조 과장이었다. 그는 정기적으로 세무 강의를 하고, 필요한 사람에겐 1대 1 상담으로 세무 업무를 도왔다. 사업자 등록을 한 봉제 소공인들은 영세사업자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됐다.
서울봉제산업협회는 조 과장의 공로를 인정하고 감사패를 증정했다. 감사패에는 ‘당신의 관심과 봉사로 뿌린 씨앗이 세월이 지나 푸르른 나무가 됐다’는 글귀가 담겼다. 차경남 서울봉제산업협회장은 지난해 ‘대한민국 공무원상’에 조 과장을 추천하기도 했다. 차 회장은 추천서에 “무료 상담 봉사로 협회 회원사 300곳 이상이 사업자 등록을 했다”며 “수십년 방치된 봉제소공인들이 새로운 기틀과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다. 지금도 청년 디자이너들의 창업에 필요한 세무 컨설팅을 무료로 도와주고 있다”고 썼다.
서울지방국세청 효제별관에서 조 과장을 만나 봉사에 대해 물었다.
―오랫동안 봉제소공인들의 세무 업무를 돕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게 특별한 건 아니다. 봉제 소공인들의 세무 업무를 도와주고, 세금 관련 강의를 해오고 있다.”
―언제부터 시작했나.
“2009년 1월부터였나. 당시 창신동의 어린이 공부방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국세청 직원이라는 걸 안 한 아주머니가 세금에 대해 물었다. 설명을 해드렸는데, 그게 연이 돼 봉제업을 하던 차경남 대표를 만나게 됐다. 그리고 차 대표를 통해 봉제업자들의 열악한 실태를 알게 됐다.”
―뭐가 문제였나.
“대부분 사업자 등록이 안 된 상태였다. 사업자 등록을 하라고 하니, 이걸 하면 마치 세금을 엄청 많이 내야하는 줄 알고 있더라. 영세 소상공인에 대해선 면세 조항이 많은데, 그런 걸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걸 꼭 해야 한다고 하고, 세금에 대해 하나둘 가르치기 시작했다.”
―설득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사람이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듯, 사업체도 사업자 등록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돈을 많이 벌면 세금을 내야겠지만, 영세 사업체는 이런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계속 다가가고, AS처럼 세무 조력을 해주니 믿기 시작했다. 300곳 넘는 봉제 사업자들이 사업자 등록을 하게 됐다.”
―세무 공무원 입장에서 사업자 등록이 왜 중요한가.
“한국은행 직원이 ‘위조지폐’를 보는 것처럼, 국세청 직원들은 ‘무자료거래’를 간주한다. 봉제, 즉 의류의 경우 거래가 ‘봉제업체-도소매업체-소비자’의 형태로 이뤄진다.
신용카드 활성화로 도소매업체와 소비자의 거래 자료가 남게 됐다. 도소매업체들은 매출을 감추거나, 매입 지출을 크게 잡는 방식으로 탈세를 한다. 매입 지출을 속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 미등록업체에 무자료매입을 잡는 것이다. 하지만 봉제업자들이 사업자 등록을 하면 이러한 가짜 매입을 (장부에)잡지 못한다. 이를 통해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사업자 등록을 하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나.
“사업자 등록 후엔 클린사업장 지원과 같은 사업환경 개선 지원이라던지, 정책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출생신고가 안 됐으니 이런 혜택도 누리지 못했다.”
―봉제업자들이 처음부터 잘 믿던가.
“처음에는 반신반의였다. 그래도 세무공무원인데 우리보다 잘 알겠지, 하는 마음으로 등록을 한 봉제업자가 많았다. 뭐 강의를 하면서 명함을 뿌리는데, 가끔은 연락이 왔다. ‘자기네가 이렇게 이렇게 하는데 괜찮냐’고 묻는다. 그래서 제가 ‘어디신데요?’라고 물으면 그건 답을 하지 않더라. 혹시나 자기들을 세무조사할까봐 겁내는 것 같았다.”
―강의 때는 주로 무슨 얘기를 했나.
“세 가지를 꼭 이야기한다. 무자료 매입 절대 받지 말아라. 카드깡 하지 말아라. 그리고 세금 포탈하지 말아라. 이건 불문율이다. 강의에선 창업과 세금 정산 관련 교육을 주로 한다. 강의를 하면서 국세청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란 얘기도 한다. 국세청은 큰 회사를 주로 보지, 영세 사업자는 잘 보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오랫동안 봉사를 해서 봉제업에 대한 시각이 남다를 것 같다.
“지금은 우리나라를 반도체나 자동차가 먹여살리지만, 과거 1960~70년대에는 봉제 섬유산업이 한국을 일으켰다. 지금은 영세사업자가 많지만, 이들의 공로를 국민들이 잊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외부에서 국세청 공무원을 보는 시선이 따갑다 느낄 때도 많을 것 같다.
“국세청 공무원은 국가 세수를 담당한다. 국가가 돌아가기 위해선 꼭 필요한 일이다. 요새 여러 여건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국세청 직원을 너무 어려워말고, 많이 격려를 해주셨으면 한다.”
―봉사를 하면서 언제 가장 뿌듯했나.
“한부모 가정의 가장인 어머니가 저에게 ‘국세청 공무원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더라. ‘왜요?’라고 되물으니, ‘당신과 같이 애를 국세청 공무원으로 키우고 싶다’고 하시더라. 너무 감동을 받았다. 봉제업자 사장님들이 ‘공무원을 다시 보게 됐다’고 말씀을 하실 때도 정말 뿌듯했다. 제가 만약 강의 수수료를 노렸다거나, 승진 욕심 때문에 봉사를 했다면 이런 감동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도울 수 있어서, 나의 도움으로 사장님들이 더 잘 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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