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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의 인터스텔라] 텅 빈 채 그저 달리네… 당신의 겪는 그 증상의 이름은 ‘시들함’

조선비즈 조회수  

중요한 일은 하나도 못 한 채 둥둥 떠서 시간을 표류하는 그 기분의 정체를 미국의 사회학자 코리 키스가 이름붙였다. ‘무엇이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가’라는 책에서 그는 ‘시들함’을 사회적 현상으로 지목했다.
중요한 일은 하나도 못 한 채 둥둥 떠서 시간을 표류하는 그 기분의 정체를 미국의 사회학자 코리 키스가 이름붙였다. ‘무엇이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가’라는 책에서 그는 ‘시들함’을 사회적 현상으로 지목했다.

어린 시절 나는 누워서 천장의 무늬를 바라보는 일이 잦았다. 아메바처럼 배열된 의미 없는 반복 문양을 바라보며 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리길 바랐다. 돌아오지 않는 부모를 기다리며 거리를 배회하거나, 가로등 아래서 소꿉놀이하며 청승맞은 가요를 부르곤 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소속 신호’를 기다리는 마음은 이어졌다. 온전히 받아들여지고자 하는 열망은 인정 강박을 낳았지만, 성취를 이뤄도 ‘자격이 없다’는 내면의 메시지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지는 않았으나, 스스로에 대한 긍정 감정은 바닥을 드러낸 기름통 같아 나이를 먹을수록 ‘텅 빈 채로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인생을 쫓아 허겁지겁 달려가는 것 같은… 점점 더 색이 바래는 듯한 공허하고 외로운 마음.

문제는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이 많다는 거였다. 미국의 사회학자 코리 키스가 급속히 늘어가는 이토록 무심하고 기운없는 상태를 ‘시들함’이라고 이름 붙였다. 시들함은 우울증과는 다르며, 코로나 이후 연결이 끊어진 많은 사람들이 만성 무기력 상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요한 일은 하나도 못 한 채 둥둥 떠서 시간을 표류하는 그 기분의 정체에 대해, 사회적 웰빙의 전문가 코리 키스에게 이메일로 물었다. 코리 키스는 에모리 대학의 사회학 명예교수로 시들함과 활력에 대한 인문학적인 통찰을 담은 책 ‘무엇이 우리를 살아있게 만드는가’를 썼다.

―시들함이란 무엇인가요?

“시들함이란 낮은 수준의 정신적 피로감입니다. 자존감, 의욕, 의미감이 약화한 정신적 쇠약 상태죠. 잭슨 브라운의 노래 ‘텅 빈 채 그저 달리네’의 가사가 그 감정을 가장 가깝게 대변합니다. ‘어디로 가는지 몰라, 그냥 어디론가 달리네. 그저 달리네. 텅 빈 채로. 그저 달리네, 아무것도 못 본 채로…’”

―그 감정을 붙잡아 이름을 붙인 이유가 있습니까?

“사람들은 ‘시들함’을 쉽게 넘겨버립니다. 무심함은 시들함의 주요 증상 가운데 하나죠. 시들함을 방치하다 보면 점점 존재의 윤곽이 희미해집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감각이 약화하고, 자기감이 떨어지면 어느새 삶의 질은 곤두박질칩니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온 많은 여성이 ‘작은 들불만 허겁지겁 끄면서 정작 중요한 일은 하지 못하는 것 같은 기분에 시달렸다’고 고백했어요. 아이와 가정이 있는데도 표류하는 기분이 든다고요. 의미 있게 살고 있다는 감각이나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에모리대학교 사회학 명예교수 코리 키스(Corey Keyes). 정신건강을 설명하는 기준으로 시들함과 활력을 처음 고안했다.
에모리대학교 사회학 명예교수 코리 키스(Corey Keyes). 정신건강을 설명하는 기준으로 시들함과 활력을 처음 고안했다.

―시들함에 빠진 상태라는 걸 스스로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을까요?

“체크리스트를 알려드리죠.

①어떻게든 될 거라는 심정으로 직장이나 집에서 할 일을 미룬다.

② 삶을 다시 채워줄 무언가를 놓쳤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불안하지만, 그게 뭔지 모른다.

③머릿속이 자주 멍해서 샤워 중에 머리를 감았는지도 까먹는다.

④내 의견에 확신이 떨어지고 강한 의견을 가진 타인에 휘둘린다.

⑤친구, 가족, 한때 중요했던 관계를 이어 나갈 동기를 찾기 힘들다.

이런 증상과 함께 따뜻하고 믿을만한 관계, 소속된 공동체, 사회에 기여할만한 일을 찾지 못했다면 그 심각성을 인지해야 합니다.”

―우울증, 번아웃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우울증은 부정적인 정서(‘계속된 슬픔’ 또는 ‘즐거움의 상실’)가 계속 이어지는 증상입니다. 극심한 슬픔, 울음이 잦고 수면 과다 혹은 부족, 자살 충동에도 시달립니다. 번아웃은 일과 관련된 한정된 개념입니다. 정신건강 문제가 아니라 해야 할 일과 그 일을 해낼 자원의 불균형으로 발생하는 만성적 스트레스, 탈진 상태를 말합니다.

번아웃은 시들함보다 훨씬 좁은 의미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번아웃이 시들함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시들함에 빠진 사람은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껴요. 목적의식이 사라지고 생각을 표현하는 데도 자신감이 떨어져서, 크고 작은 결정을 못 내립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다 그런 상태인걸요?

“많은 사람이 시들함에 빠져 있다면 그건 개인보다 사회 문제입니다. 제가 시들함에 주목한 것도 그런 이유고요. 가령 좋은 치료를 고민해야 하는 의료진이 의료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필요한 산더미 같은 행정 업무를 떠맡고 무력해졌다면 그건 사회문제예요. 의사들이 질병 때문이 아니라 병든 시스템 때문에 활력을 잃었다면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사들은 교육자의 방어력을 갉아먹는 과도한 시스템 탓에 무력감을 느껴요. 자부심을 찾을 수 있는 개인 서사가 무너져 내리죠. ‘자기감’이 약화하면 ‘내면이 죽은 느낌’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우울증도 번아웃도 아닌 ‘시들함’으로 현대인의 정신 상태를 정밀하게 감정해낸 책 ‘무엇이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가’.
우울증도 번아웃도 아닌 ‘시들함’으로 현대인의 정신 상태를 정밀하게 감정해낸 책 ‘무엇이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가’.

―선생이 이름 붙인 ‘시들함’을 애덤 그랜트가 뉴욕 타임스에 인용한 칼럼을 기억합니다. 그 글이 그해 가장 많이 공유된 이유가 뭘까요?

“코로나 기간에 사람들은 시들함을 다양하게 어필했어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공허하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이 죽어 있다’, ‘(다른 사람)눈에 보이지 않는다’, ‘무감각하고 멍하다’, ‘아무런 감정이 없다’.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고통은 온전히 깨달을 수 없어요. 무언가에 정확한 이름을 붙이면 그것은 힘을 얻고, 동시에 넘어설 힘도 얻습니다.

특히 팬데믹 이후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공동체와 15~35세 청년들이 정서적으로 가장 크게 타격을 받았어요. “몸은 방 안에 있는데 나는 거기에 없는 것 같아” “완전히 행복하진 않지만 죽고 싶지도 않아” 저는 2022년 여름, 10대들의 애창곡인 엠 베이홀드의 ‘작고 멍한 벌레처럼’이라는 노래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어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치유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시들함’을 제대로 인지하면 그 반대의 상태도 상상할 수 있겠지요.”

―시들함의 반대편에는 어떤 모습이 있습니까?

“단순히 더 행복하고 더 강해진 느낌은 아니에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고, 사회에 공헌하고 목적을 가진 상태입니다. 타인에게 받아들여지고 자신을 수용하려는 욕구가 깊이 충족된 상태죠. 그렇게 자기 생각과 결정을 자신감 있게 표현할 수 있을 때, 그 감각을 활력이라고 합니다. 활력은 정신 건강이 좋다는 뜻입니다.”

시들함에서 활력으로 나아가는 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에서 보이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코리 키스. 그 자신 소속되지 않은 주변인에서 목적이 있고 공헌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시들함에서 활력으로 나아가는 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에서 보이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코리 키스. 그 자신 소속되지 않은 주변인에서 목적이 있고 공헌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선생은 활력이 넘치는 사람인가요?

“지금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자라는 동안은 그렇지 못했어요. 저는 어렸을 때 친부모로부터 버려졌고 학교생활도 엉망이었어요. 그러다 운 좋게 조부모님에게 입양된 이후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하룻밤 새 여러 스포츠팀에 소속된 우등생이 됐죠.

자신이 뿌리내린 곳에서 활력을 얻을 수도 있지만, 저처럼 활력을 누릴 수 있는 더 나은 곳을 찾아야 하는 사람도 있어요. 무슨 말이냐? 만사에 시들해진 것이 절대 내 탓만은 아니라는 거죠.”

―변화된 환경 속에서 쉽게 활력의 감각을 찾았습니까? 경험담을 더해 주시지요.

“저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기본적으로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감각을 내면화하기 어려웠어요. 그런 상태는 평생 이어졌죠. 내가 자란 곳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고 느꼈고, 동시에 내가 획득한 새로운 사회 계층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느꼈어요. 파고들어 가면, 상대가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갈망과 결핍이 바로 공허함과 시들함의 본질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미묘한 메시지가 계속 귓속을 때렸어요.

내 고향은 속이 텅 빈 굶주림과 시들함이로구나… 그런 굶주림이 언젠가는 다른 이들에게 완전히 인정받겠다는 결심을 만든 것 같습니다. 5년 만에 박사 학위를 따고 사회적 웰빙을 다룬 논문을 발표했어요.

생각해 보면 정신건강이라는 주제도 공허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범주입니다. 학자로서 내가 한 일도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이게 만드는 일이었죠. 결국 시들함에서 활력으로 간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사람에서 보이는 사람으로 나아간다는 겁니다.”

유년기에 자신이 주변인이라는 메시지를 받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자기 서사가 왜곡될 수 있다고 했다. 활력의 감각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가치 있고 평등한 존재라는 자기 서사를 구축해야’ 찾아진다고.

자의식은 높아지는 데 정서적 에너지는 낮아져서, 비밀을 공유할 친구도 팀으로 나를 선택해 줄 친구도 없다고 답한 중고생이 늘고 있다.
자의식은 높아지는 데 정서적 에너지는 낮아져서, 비밀을 공유할 친구도 팀으로 나를 선택해 줄 친구도 없다고 답한 중고생이 늘고 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 이후에는 성인보다 청소년들의 시들함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코로나 시기에 중학교에 입학한 많은 아이가 중 2가 돼서도 정서적으로 초등에 머무른 채 문제를 일으켰다는 보고가 많습니다. 그 시기에 중학생이 된 아이들은 화장실을 더럽히고 교실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소한 일탈을 반복했어요.

자의식은 높아지는 데 정서적 에너지는 낮아져서, 비밀을 공유할 친구도 팀으로 나를 선택해 줄 친구도 없다고 답한 중고생이 늘었습니다. 사는 게 시들해진 아이들은 무력감에 빠지느니 차라리 말썽을 일으켜서 부모를 실망시키려 들지요.

여러 보고에 따르면, 시들함에 빠진 청소년은 자살 경향성이 커지고, 자해 행동(칼로 몸 긋기, 꼬집기, 머리카락 뽑기 등)을 하고, 친구 및 가족과의 관계를 단절해서 문자 그대로 ‘사라지려고’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린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라고 했다. 2022년 미국 인구조사국에서 1~5세 어린이 1만 8천 명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4명은 활력을 잃은 상태였다고.

―아이들마저 그렇게 시들해진 이유가 뭘까요?

“본질적으로 부모 자식 관계의 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의 양보다 그 관계의 질이 더 중요합니다. 아이의 눈으로 다음 항목을 체크해보세요.

①가족 중 나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②문제가 생기면 도와줄 가족이 있는가? ③어른들은 나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가? ④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부모와 상의하는가? ⑤집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는가?

저 자신, 집에 갈 이유가 전혀 없다는 느낌이 얼마나 끔찍한지 기억합니다. 제가 조부모에게 입양되기 전에는 이 질문에 전부 ‘아니오’라고 답했을 겁니다. 이 항목에서 아니오라고 느끼는 항목이 많은 아이들일수록 시들함이 심했어요.

부모를 비롯해 가까운 어른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일수록 활력이 있습니다.”

―부모의 열망이 너무 크거나 긍정적인 감정만을 앞세워도 자녀의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고요.

“기분만 좋다고 해서 시들함이 해결되지 않아요. 건강하게 기능하지 못하는 ‘좋은 기분’은 불안을 가중하고 에너지만 소진하지요. 가령 아이에게 학업을 독려할 때도 성공과 고소득을 앞세우기보다 타인과 세상을 돕는 삶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줘야 합니다. 자신에 대한 연민을 갖추지 못한 채 성적 압박에 시달리면 아이는 결국 파괴적으로 행동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생각하는 것만큼 상위권 대학 입학은 장기적인 경제적 안정에 중요하지 않습니다. 명문대 졸업장보다 글쓰기 능력, 의사소통 능력, 문제 해결 능력 같은 더 유연한 자질에 주목하는 것이 채용의 대세이기도 하고요.”

영화 ‘미나리’에 출연해서 싱싱한 활력을 보여준 배우 윤여정.
영화 ‘미나리’에 출연해서 싱싱한 활력을 보여준 배우 윤여정.

―요즘 제 주변을 돌아보면 노년층이 더 활력 있어 보이는 건 왜일까요? 체력이 떨어져도 활력은 높아질 수 있는 건지요?

“활력은 정신 건강의 범주입니다. 생애주기로 보면 스트레스 요인이 줄어드는 60~65세 무렵에 가장 높아집니다. 동시에 사회에 기여한다는 감각도 줄어서, 75세가 넘으면 시들함이 다시 찾아오지요. 사회적 만남이 줄더라도 만남의 질을 높이면 활력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제 경우를 보면 ‘가까이 살면서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 외로움에 사로잡힐수록 시들함도 깊어지더군요.

“외로움은 시들함의 일부입니다. 만약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고 친구나 친척을 거의 만나지 않는다면, 고립됐다고 볼 수 있어요. 최근엔 방에 혼자 있기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다는 연구도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혼자 생각에 잠기느니 차라리 전기 충격을 원한다는 사회 실험 결과도 있죠. 남성의 67% 여성의 25%는 혼자 생각에 잠긴 시간 동안, 한 번 이상 전기 충격을 선택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잘 알아요. 우리는 결코 유령이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의미 있는 관계를 갈망하면서도 자신을 외롭게 만드는 결정을 내릴 때가 많으니, 안타깝다고 했다.

―진짜 우정과 단순한 친구를 어떻게 구분할까요?

“친구를 만나면 기분 좋지만, 살아가는 데 진짜 필요한 것은 우정입니다. 차이는 이렇습니다. A “어머니가 다치셨다고? 괜찮으셔?” A의 반응은 단순한 친밀감의 표현입니다. B “어머니가 다치셨다고? 큰 일이네. 내가 병원에 태워다줄까? 먹을 것 좀 사다 줄까?” B의 반응이 진정한 우정이죠.

C.S, 루이스에 따르면 우정은 인간의 유대감 가운데 가장 심오한 감정입니다. 무엇보다 친구 관계에서 활력을 얻으려면 동등하다고 느껴야 해요. 우정은 자신을 내어줍니다. 구체적인 방식으로 나를 지지하고 지원해 주지요.”

“우정은 자신을 내어줍니다. 구체적인 방식으로 나를 지지하고 지원해 주지요.”
“우정은 자신을 내어줍니다. 구체적인 방식으로 나를 지지하고 지원해 주지요.”

▲“우정은 자신을 내어줍니다. 구체적인 방식으로 나를 지지하고 지원해 주지요.”

―존경과 시기심을 대비한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존경과 시기심은 활력과 성장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 영향을 미칩니까?

“존경은 시기심과 전혀 다른 논리로 작동합니다. 존경은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고 싶고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이지요. 반면 시기심(부러움)은 다른 사람이 이룬 멋진 성과가 원래 내 것을 훔친 거라는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존경은 활력 요소와 관련이 깊어요. 삶의 목적의식이 더 커지고 성장의 수준이 높아지죠. 시기심이 적으면 자신을 더욱 받아들이고 표현에 확신이 있습니다. 시기심의 소리를 줄이고 존경의 소리를 키울수록 사람은 성장해요.

경쟁 문화는 누군가 행운을 얻으면 그가 자격이 없거나 그로 인해 내가 불행해진다고 조장하지만, 할 수 있다면 억지로라도 시기심 위에 ‘그 사람의 이런 건 본받을만하지’라고 존경의 마음을 얹어보세요.”

―오랫동안 행복과 활력도 세트로 생각했는데, 행복에 너무 속지 말라고도 하셨어요.

“뇌는 원하는 것을 얻으면 행복하다고 느끼게 만들죠. 행복은 감정입니다. 감정은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고, 어디서 바람이 불어오는지 알려주는 풍향계와 비슷해요. 감정이 너무 강해지면 문제가 됩니다. 슬픔이 이어지면 우울증이 되고 행복조차 너무 강해지면 조증이 되죠.

그런데 우리 사회는 도파민으로 촉진되는 쾌락과 세로토닌과 함께 오는 행복을 받들어 모셔요. 도파민이 치솟으면 더 많은 자극만을 갈구합니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슬픔과 행복, 좋은 시절과 나쁜 시절의 기억을 한꺼번에 마음에 담는 변증법적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서양과는 달리 동양 문화는 피할 수 없는 고통에 맞설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권하지 않습니까? 슬픔과 사랑이 뒤섞인 장례식장처럼, 그 순간은 힘겹지만 잘 통과해서 성숙으로 가야 합니다.”

10대 자녀에게 이런 변증법적인 지혜를 알려주라고 했다. 우리는 좋은 기분만을 목표로 살도록 만들어진 평범함 동물이 아니라고. 견딜 수 있는 시련이 인생의 만족도를 높여준다고.

서로가 동등하다고 느끼는 우정은 활력의 전제 조건이다.
서로가 동등하다고 느끼는 우정은 활력의 전제 조건이다.

―생일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자녀에게 삶이 때론 외롭고 슬프지만, 항상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어떻게 가르칠까요?

“어떤 사람에게 시간을 들여야 하고, 말아야 할지 실제 경험을 나눠주세요. 부모 자신도 무시당한 후 더 나은 우정을 쌓은 경험이 있을 테지요. 슬픔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세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왔다가 떠나가고, 우리는 언제든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고요. 당장의 기분에 매달리지 않고 건강하게 기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감정의 다양한 부분을 수용해야 하며, 기쁨도 시련도 시간이 지나면 완화될 거라는 사실은 정신 건강에 대해 넓은 시야를 갖게 한다. 의료화된 병명만으로 마음의 안녕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 병이 없어도 정신 건강이 나쁠 수 있고, 질환이 있어도 정신 건강이 좋을 수 있다는 코리 키스의 주장은 우리의 편견에 균열을 일으킨다.

알다시피 심각하게 아프지 않아도 시들어갈 수 있다. 일상을 잘 유지하면서도 표류하는 기분을 느낀 적 있지 않은가. 내가 우울증인지 아닌지, 내 가족이나 이웃이 조현병 환자인지 아닌지… 정신 건강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전반적인 뇌 연결 방식을 볼 때 슬픔의 반대가 꼭 행복인 것은 아닙니다. 정신건강은 이것 아니면 저것인 흑백논리가 아니고, 연속체 무지개에 가까워요. 조현병이나 조울증 환자도 활력 있게 지낼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의 안녕은 ‘정신적 웰빙’과 ‘정신 질환’ 두 가지 차원에서 함께 보아야 하며, ‘정신적으로 잘 기능하고 있는가’를 두루 살펴야 한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을 시들함에서 활력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볼 때, 우리는 자기 인생을 수용하고 개선할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시들함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 또한 주변에 활력있는 사람을 두는 겁니다.”
“시들함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 또한 주변에 활력있는 사람을 두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조언해 주시지요. 궁극적으로 우리가 시들함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배움, 관계, 영성, 목적, 놀이가 균형을 이룰 때 시들함에서 활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시들함에서 벗어나려면 무언가 향상되고 있다고 느낄만한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뜨개질이든 정원일이든 내가 선택해서 배우는 일은 시들함의 강한 해독제예요. 밤새 넷플릭스를 보는 대신 장미나무가 겨울을 이겨내도록 돌볼 궁리를 하는 데 시간을 써보세요.

알다시피 자연에 자신만을 위해 사는 존재는 없습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그런 이치로 당신을 통해 다른 존재가 활력을 얻으면 좋습니다. 시들함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 또한 주변에 활력있는 사람을 두는 겁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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