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컨디션은 좀 어떠세요? 주사 맞은 부위가 붓거나 붉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고 혈액검사 결과도 안정적입니다.”
“당장은 별다른 느낌이 없더라고요. 약이 잘 듣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
지난 9일 오후 내내 잡혀있던 외래진료를 마친 강성훈(사진) 알츠하이머 예방센터장(신경과 교수)이 서둘러 신경과 병동을 찾았다. 올해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고도 6개월 넘는 기다림 끝에 출시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레켐비(성분명 레카넵)’를 투여 받고 입원 중인 서경제(60대·가명) 씨의 경과를 살피기 위해서다.
고대구로병원은 이날부터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경도인지장애 또는 경증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을 받고 레켐비를 기다리던 환자들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처방을 시작했다. 3년 전쯤 일상생활에서 쉽게 쓰던 단어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일이 잦아지는 등 건망증이 심해져 병원을 찾았다가 ‘경도인지장애(mild cognitive impairment)’ 진단을 받았던 서씨도 그 중 하나다. 강 센터장은 “몸무게당 10㎎ 용량을 환자의 정맥혈관으로 약 1시간에 걸쳐 투여하는 방식이라 통원 치료만으로도 가능하다”며 “임상시험 참여자가 아닌 실제 환자의 치료 용도로 처방된 사례가 많지 않다보니 초기에는 하루 정도 입원해 투약 관련 이상반응이 없는지 면밀히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경도인지장애는 치매로 진단하기에는 충분치 않지만 객관적인 인지기능 저하를 보이는 상태를 말한다. 정상 노화와 초기 치매, 특히 알츠하이머병 사이의 경계에 해당하는 인지저하 상태를 지칭하는 여러 가지 개념들 중 임상 현장이나 연구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용어다. 치매와 정상 노화의 사이 단계라고 이해하면 쉽다. 경도인지장애가 중요한 이유는 치매로 진행하는 확률이 일반인들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선행 연구들에 따르면 경도인지장애로 진단된 65세 이상 노인의 약 10~15%가 해마다 치매로 진단이 바뀐다. 인지기능 저하 등 증상 악화 속도는 개인별 편차가 큰데 특정 상황에서는 경도인지장애에서 치매로 전환되는 확률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
포도당 대사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 (FDG-PET)등 기능적 뇌 영상 검사에서 뇌의 대사가 확인되거나 일명 ‘치매 유전자’로 불리는 아포지질단백질 E4 형질을 가지고 있는 경우, 뇌척수액 또는 아밀로이드 PET 등의 뇌 영상에서 ‘베타 아밀로이드(Aβ)’ 같은 알츠하이머병 바이오마커가 양성인 경우가 대표적이다. 강 센터장은 “치매 중 가장 흔한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은 환자들이 기억력 저하 같은 초기 증상을 느끼기 약 20년 전부터 뇌에 Aβ 단백질이 축적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검사 결과 Aβ 단백질이 축적돼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치매로 진행될 확률이 5배 가량 높은 것으로 보고된다”고 설명했다.
이론상 알츠하이머병 초기에 항 아밀로이드 항체 치료를 통해서 뇌에 축적된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면 질병 진행을 지연시킬 수 있다. 그러나 몇년 전까지 치매 진행을 막는 효과가 명확하게 입증된 약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글로벌 제약·바이오기업들이 Aβ와 타우(tau)를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지목하고 두 단백질을 표적하는 항체 신약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번번이 실패를 맛본 탓이다. 과학계에서는 2016년 말 일라이릴리에 이어 머크가 야심차게 개발하던 항체 약물이 뇌영상을 통해 Aβ 단백질이 제거됐음에도 환자의 인지기능은 회복시키지 못했다는 결과를 받아들자 “Aβ 가설은 끝났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올해 11월 국내 도입된 레켐비 역시 발병 원인이 되는 물질을 공략한다는 점에서 기존 알츠하이머병 신약 후보물질들과 출발점이 유사하다. Aβ는 본래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단백질이지만 세포에서 떨어져 나와 덩어리를 이루고 뇌에 비정상적으로 많이 쌓이면 신경세포에 손상을 준다. 레켐비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막 섬유질을 형성한 상태를 공격한다. 섬유질이 모여 덩어리가 되기 전에 손을 쓰는 만큼 초기 단계인 경도인지장애나 초기 알츠하이머병 단계 환자에만 쓸 수 있다.
레켐비 개발사인 미국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 속 Aβ 단백질이 끈적한 막 섬유질을 형성한 상태를 공략하도록 설계했다. 섬유질이 모여 단단한 덩어리를 형성하기 전에 손을 쓰는 원리다. 즉 초기 단계에 써야 병의 진행과 인지기능 저하를 늦출 수 있다. 경증 알츠하이머병 환자 1795명 대상의 임상 3상 결과 레켐비 투여군은 1년 6개월 시점에 알츠하이머병 진행이 위약군 대비 27%(약 5개월) 지연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효능을 토대로 20년 만에 FDA 승인을 받았다.
현재로서는 임상 설계에 근거해 2주에 한 번씩 18개월 정도 맞도록 권고하고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체중 70㎏ 기준 한해 약값만 3000만 원 안팎이라 환자 입장에서는 비용 부담이 크다. 그럼에도 2주새 20명 가까이 처방을 받았고 상담만 30명 넘게 신청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고대구로병원은 환자들의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난달 알츠하이머 예방센터를 열었다. 아밀로이드 PET, 뇌 자기공명영상(MRI), 종합적인 신경심리검사, APOE 유전자형 검사를 통해 알츠하이머병 여부를 정밀하게 진단하고 항 아밀로이드 항체 치료는 물론 교육 및 인지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환자별 맞춤 치료를 제공한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98만4601명이었다. 그 중 70%는 알츠하이머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
강 센터장은 “해외에서 일부 환자가 레켐비 투여 후 뇌출혈·뇌부종 등을 겪은 것으로 보고된 만큼 이상반응 여부를 판단하려면 정기적인 MRI 검사가 필요하다”면서도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 300여명에 대한 하위 분석 결과 상대적으로 부작용 빈도가 적었다”고 말했다. 병의 원인 물질을 없애는 약물이 처음 나왔고, 증상이 경미한 단계에서 쓸수록 치료 효과가 높은 만큼 최대한 많은 환자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는 “알츠하이머병은 잘 관리하면 진행속도를 늦출 수 있는 질환이다. 약물 치료 외에도 적절한 운동과 심뇌혈관 위험인자 교정, 인지훈련, 금주, 금연 등 체계적인 교육 및 인지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병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관리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