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신구 기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19일 양곡관리법을 포함한 쟁점 법안 6개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헌법 정신과 국가의 미래를 고려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게 한 권한대행의 설명이다. 야권은 즉각 반발하며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다만 이는 극심한 국정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만큼 더불어민주당은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한 권한대행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민주당이 추진한 ‘농업 4법(양곡관리법·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어업재해대책법·농어업재해보험법)’과 국회법·국회증언감정법 등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한 권한대행은 “어떠한 선택이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인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고민과 숙고를 거듭했다”며 “오로지 헌법 정신과 국가의 미래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각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일일이 설명했다. 일단 ‘양곡관리법’에 대해선 쌀 공급과잉 구조로 쌀값 하락이 심화할 것을 우려했다. 또한 시장 작동 기능 마비로 정부가 막대한 재정 부담을 안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해서도 과도한 재정 부담을 거부권 행사 이유로 들었다.
‘농어업재해대책법 및 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에 대해선 “국가가 재해복구비 외에 생산비까지 보상하는 것은 재난안전법상 재해 지원의 기본 원칙에 반한다”고 했다. 법정기한 내 국회의 예산 심사가 불발돼도 자동 부의되는 것을 막는 ‘국회법 개정안’은 “기한 내 예산안이 의결되도록 유도하는 장치가 없어지면 예전과 같이 국회의 의결이 늦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께 돌아가게 된다”고 했다. ‘국회증언감정법’의 경우는 △국민의 기본권 침해 △기업의 영업비밀 유출 가능성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 거부권 행사에도 ‘탄핵’ 신중한 민주당
한 권한대행은 이번 거부권 행사가 국회의 입법권과 입법 취지를 존중하지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지난 17일 정례 국무회의에서 해당 법안을 의결할 것이란 전망과 달리 상정 보류했던 것도 여러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취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민주당은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가 ‘입법권 침해’라며 반발했다. 거부권 행사 논리도 수긍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당장 조국혁신당 등 야권 일각에선 한 권한대행을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키를 쥔 민주당은 신중한 모습이다. 앞서 한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를 ‘탄핵의 바로미터’라고 지적하며 압박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거부권 행사가 탐탁지 않다고 해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상황에서 한 권한대행까지 탄핵할 경우 국정은 마비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민주당의 고심을 깊게 하는 요인이다. 앞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15일 국회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너무 많은 탄핵을 하게 되면 국정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자칫 여론의 역풍이 불 수도 있는 만큼, 민주당은 탄핵을 추진하기보다는 향후 한 권한대행의 행보를 지켜보며 대응해 나가겠다는 분위기다. 지난 17일 정부로 이송된 ‘김건희 특검법’과 ‘내란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는 주요 판단 기준이 될 전망이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을 만나 “권한대행이 해야 할 여러 가지 일이 있다. 상설특검 추천위원회 추천 절차에 착수하는 것, 김건희 특검법, 내란 특검법을 공포하는 것”이라며 “이런 것 때문에 한 권한대행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한 만큼, 헌법재판관에 대한 임명권도 행사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 후 기자들을 만나 “거부권 행사라는 적극적 권한을 행사하면 헌법 재판관 임명이라는 소극적 권한 행사를 안 할 명분이 없어졌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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