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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척간두’에 선 韓 권한대행, 野 압박에도 ‘헌법 정신’으로 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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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부터)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들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총리실 제공
(오른쪽부터)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들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총리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언과 이후 이어진 탄핵 정국으로 정부의 국정 리더십이 약해졌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야당이 강행 처리한 6개 쟁점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더불어민주당이 탄핵까지 언급하며 압박에 나섰지만, 소신 대로 국정을 이끈 것이다.

이날 거부권 행사로 향후 민주당의 대정부 공세는 보다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이 제안한 여야정협의체 구성도 사실상 어려워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권한대행은 19일 임시국무회의에서 국회법·국회증언법 및 농업4법 등 6개 쟁점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무회의에선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재의요구를 건의하고, 이후 국무위원 심의가 진행됐다. 국무위원장인 한 대행은 “헌법 정신과 국가의 미래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거부권을) 결심하게 됐다”면서 “정부와 여야 간 협치가 절실한 상황에서 국회에 6개 법안에 대한 재의를 요구하게 되어 마음이 매우 무겁다”고 밝혔다. 한 대행은 이날 낮 12시쯤 재의요구안을 전자결재로 재가했다.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은 국회로 반송된다.

◇ 막판까지 고심한 韓… “헌법정신 최우선으로 결정”

한 대행은 이날 국무회의 전까지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 상당히 고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행은 국무회의에서도 “어떠한 선택이 책임있는 정부의 자세인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고민과 숙고를 거듭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헌법 정신과 국가의 미래를 최우선으로 하는 책임있는 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한 대행이 언급한 ‘헌법 정신’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기회 균등 ▲능력 최고도 발휘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대행은 국무회의에서도 왜 이 법안을 공포하면 안 되는지, 헌법적 가치에 견줘 설명했다.

시장에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개정안에 대해선 “시장 기능 작동이 곤란해져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초래하고 재정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했다. 헌법 상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리를 해한다고 본 것이다.

한 대행은 또 “(이 법으로) 막대한 재정이 투입된다면 스마트팜 확대, 청년 농업인 육성 등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농업농촌 투자를 매우 어렵게 할 것”이라고도 했다. 기회균등과 능력 최고도 발휘를 추구하는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농어업재해대책법과 농어업재해보험법에 대해선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와 어긋난다고 꼬집었다.

국회법 개정안은 헌법에서 정한 예산안 의결기한을 형해화하는 법이라고 했고, 국회증언법에 대해선 헌법 17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보호, 18조 통신의 비밀 보호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도 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 원내대표,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 /뉴스1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 원내대표,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 /뉴스1

◇ 野 “입법권 침해”… 탄핵 압박 이어가

그동안 한 대행을 향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라’며 강하게 압박해 온 야당의 공세 수위는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전 국회 브리핑에서 “(거부권 행사는) 명백한 입법권 침해”라며 “내란 공범으로 남으려 하나”고 비판했다. 조 수석대변인은 “한 권한대행은 아직도 누구를 따라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면서 “한 권한대행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윤석열 내란 세력의 꼭두각시 노릇이 아니라 민의를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

임시국무회의 이전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선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가 “민심을 무시하고 권한을 남용해 거부권을 행사하면 응분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대놓고 협박한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에선 그동안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 “헌법상 필요한 최소한의 권한 행사를 대행하는 수준을 넘어선다면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김민석 최고위원), “입법 거부권과 인사권을 남용하는 것은 헌법 위반으로 또 다른 탄핵 사유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전현희 최고위원) 등 탄핵 카드까지 언급하며 한 대행을 궁지로 몰아세웠다.

이를 두고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한 권한대행에게 탄핵 으름장을 놓는 협박정치를 중단해야 한다”며 “야당은 권한대행 직무범위를 맘대로 정할 수 있다는 오만한 발상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 특검법과 헌법재판관 임명 두고 2차전 벌어질 듯

쟁점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한 권한대행의 앞엔 이제 2개의 특검법과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가 남아 있다.

지난 17일 정부에 이송된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은 이달 말까지 공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총리실 고위관계자는 두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와 관련해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국가의 미래 또 국민의 시각에서 봤을 때 어느 게 타당한지에 대해 최종 순간까지 점검할 것”이라고 했다.

한 권한대행이 지난달 26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김여사 특검법 거부권을 건의했다는 점에서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선 재차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시 한 총리는 “검찰과 공수처에서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특별검사를 도입함으로써 특별검사 제도의 보충성·예외성의 원칙을 훼손한다”면서 “재의요구권은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는 우리 헌법에서 대통령이 입법부의 권한 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했다.

다만 비상계엄 선언 이후 윤 대통령 내외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국민 여론이 커진 것을 감안하면 거부권 행사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내란 특검법의 경우, 한 대행이 피의자로 지목돼 있어 적극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거부권을 이용해 자신에 대한 수사를 무마하려고 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권한대행이 국회 추천 몫 헌법재판관 3명을 임명할지도 관심사다. 현재 헌재는 재판관 9명 정원 중 3명이 공석이다. 지금은 ‘6인 체제’로 운영 중이다. 헌법에 따르면 탄핵 결정엔 재판관 6인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 재판관 6명 전원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탄핵 결정이 나오게 된다.

야당은 추가 헌재 재판관 선출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헌법재판관을 추가 임명할 수 없다며 인사청문회 불참 방침을 밝힌 상태다.

이와 관련,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헌법재판관 임명은) 여러 가지 해석과 논란도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날 한 대행의 재의요구권 행사로 야당이 제안한 ‘여야정협의체’ 구성이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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