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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하구 이야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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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중구 영종도가 인천국제공항 최종 후보지로 낙점되기 전 충북 청주와 경기 시화(지금의 송산그린시티 일대) 등 예비 후보지와 유치 경쟁이 치열했다.

그때 인천이 유치 명분으로 세운 것 중의 하나가 땅이름이었다. 영종도(永宗島)의 본디 이름인 자줏빛 제비의 섬, ‘자연도(紫燕島)’였다.

 ‘자연도’는 고려 인종 때 우리 땅에 왔던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의 견문록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나온다. ‘경원정(慶源亭) 맞은편 섬에 제비가 많이 날아다닌다.’ 당시 경원정은 지금의 구읍 뱃터에 세워진 객사(客舍)였다.

살짝 억지스럽지만, 인천은 ‘제비가 비행기를 상징하고 있으니 국제공항은 인천 영종도에 세워야 한다’고 유치 운동을 펼쳤다. 어찌 됐건 세계적 허브공항 인천국제공항은 2001년 3월 29일 한강하구 자락 영종도에서 개항했다.

▲ 한강하구 중립수역 비무장 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유도. /인천일보DB
▲ 한강하구 중립수역 비무장 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유도. /인천일보DB

한강하구에 미래를 예고한 땅 이름이 또 있다. 세인의 근접을 허락하지 않는 머물 유(留), 섬 도(島), 유도다. 섬 크기라고 해봤자 그 전체 둘레가 2㎞ 남짓한 면적 0.3㎢의 한강하구 비무장지대에 떠 있는 고도(孤島)다.

남쪽으로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 해안에서 750m밖에 안 떨어져 있다. 반대편 북쪽은 2.75㎞의 거리를 두고 황해북도 개풍군 임한면 조문리와 마주한다.

▲ 유도에서 북쪽으로 2.75㎞ 밖에 안 떨어진 황해북도 개풍군 임한면 조문리. /인천일보DB
▲ 유도에서 북쪽으로 2.75㎞ 밖에 안 떨어진 황해북도 개풍군 임한면 조문리. /인천일보DB

유도가 세상을 향해 그 모습을 드러낸 때는 1996년 8월. 경기 북부를 할퀸 대홍수 직후였다.

유도를 앞에 두고 경계근무를 서고 있던 초병의 망원경 안으로 소 두 마리가 들어왔다. UN군의 승낙 없이 발을 들여놓을 수 없던 해병대는 그저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분단의 아픔을 맛보면서…

그러던 며칠 뒤, 두 마리의 소가 한 마리로 줄었다. 원인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조용히 사라진 것이었다. ‘유도의 소’는 두 쪽으로 갈라진 한반도의 현실을 반영하는 상징으로 떠올랐고, 해는 그렇게 속절없이 바뀌었다.

유도의 소는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려 하루가 다르게 앙상한 뼈를 드러냈다. 이대로 두다가는 먼저 사라진 소의 신세를 맞을 판이었다.

바라만 볼 수 없었던 군(軍)과 김포시는 긴급 대책 마련에 나섰다. 당시 김포시장은 지금 유정복 인천시장이었다.

‘유도에 그대로 둔 채 주기적으로 먹이를 공급하자’, ‘아예 소를 육지로 끌어내 살려보자’ 등 의견들이 분분했다.

하지만 먹이 공급 안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이 우세했다. 결국 육지로 구출해 내야 한다는 의견 쪽으로 모아졌다.

▲ 유도에서 구출된 평화의 소가 앙상한 모습을 하고 군용 트럭에 실리고 있다. /인천일보DB
▲ 유도에서 구출된 평화의 소가 앙상한 모습을 하고 군용 트럭에 실리고 있다. /인천일보DB

1997년 1월 17일.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소 구출작전’이 감행됐다. 해병대 청룡부대 병사 9명이 세 척의 고무보트에 나눠 타고 유도에 상륙했다. 구조대는 탐지장비로 지뢰를 피해 조심스럽게 소에 접근했다. 마취 탄으로 소에 명중시켜 보트에 옮겨 실은 뒤 귀환했다.

유도의 소는 열다섯 살로 추정되는 황소였다. 구출 당시 오랜 굶주림에 두 살쯤으로 보일 만큼 야윈 상태였다. 왼쪽 앞발은 살점이 뜯겨 나간 상처로 곪아있었다.

김포시는 이 황소를 ‘평화의 소’라고 부르고, 인천시 서구 당하동 동물 검역소에 옮겨 정밀 진단했다. 그런 뒤 월곶면 포내리 한우 사육농가 김중길 씨의 축사로 보내 보살피도록 했다.

고생 끝에 낙(樂)이라 했던가? ‘평화의 소’는 융성한 대접을 받았다. 수의사 정수일 씨가 전담 수의사로 나섰고, 인천시 검단에 있던 신촌사료가 평화의 소에 먹일 사료 990포(포 당 25㎏)를 1997년부터 2004년까지 무상으로 지원했다. 국민의 관심 속에 평화의 소는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

▲ 평화의 소 2세인 평화통일의 소가 건강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인천일보DB
▲ 평화의 소 2세인 평화통일의 소가 건강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인천일보DB

김포시농업기술센터는 그해 11월 통진읍 서암리 조문연 씨 농가에 66㎡(20평) 규모의 개방형 톱밥우사를 새로 짓고, 평화의 소를 극진히 모셨다. 하지만 아쉬움은 삭지 않았다. 평화의 소에게 짝이 없었던 것이다.

김포시농업기술센터는 평화의 소를 장가보내기로 하고, 당시 제주도 북제주군농업기술센터와 상의했다.

다행히 우리나라 최남단인 북제주군 조천읍 와흘리 축산인 강익상 씨가 ‘통일염원의 소’로 이름을 지은 제주산 한우 암소를 선뜻 기증했다.

‘평화의 소’는 구출 1주년인 1998년 1월 16일 ‘통일염원의 소’를 맞이했고, 7년 동안 수송아지 4마리와 암송아지 3마리를 낳았다.

이 가운데 첫째 수송아지(생일 1998년 11월 6일)는 ‘평화통일의 소 1호’로 불려 어미 소의 고향인 북제주군에 기증됐다. 나머지 ‘평화통일의 2∼6호’는 일반 한우 사육농가와 한우협회 김포시지부에 분양됐다. 마지막 암소인 ‘평화통일의 소 7호’는 통진두레놀이보존회의 보살핌 속에 두레놀이 일소로 자랐다.

2006년 5월 29일 자연사 한 ‘평화의 소’와 그 자식인 ‘평화통일의 소’는 인기가 높아 관광 상품으로도 소개되곤 했다. 1997년부터 2004년까지 2만1540명이 방문해 평화의 소를 지켜봤다.

분단의 한복판에서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줬던 ‘유도 평화의 소’는 이제 세인들의 머릿속에서 희미해졌다.

/박정환 선임기자 hi21@incheonilbo.com

인천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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