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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HBM 경쟁서 밀리면 나라 생존 위협, 국가 수호 관점서 총력전 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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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HBM 경쟁서 밀리면 나라 생존 위협, 국가 수호 관점서 총력전 펴야”
[청론직설] “HBM 경쟁서 밀리면 나라 생존 위협, 국가 수호 관점서 총력전 펴야”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가 16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 반도체 강국이 되려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통합형 인재 양성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주요국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 미국은 중국에 대한 HBM 수출을 통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우리 반도체 기업들의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반도체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인재 양성이 시급한데 그나마 있는 우수 두뇌들의 해외 유출이 심각한 상황이다. 계엄·탄핵 정국으로 반도체 등 첨단산업 지원을 위한 입법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HBM의 기본 구조를 창안해 ‘HBM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16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AI 시대를 맞아 HBM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대체 불가’ 제품이 됐다”며 “HBM 경쟁에서 밀리면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는 만큼 ‘국가 수호’ 관점에서 민관정이 원팀으로 총력전을 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AI반도체 강국이 되려면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를 아우르는 통합형 인재 양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하면서 “10층으로 이뤄진 반도체 생태계 계층 구조에서 한 층마다 최소 100명씩, 1000명 이상의 천재를 키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HBM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기술적 요인이다. 2000년대 초에 가장 대중적인 메모리반도체인 D램이 사실상 기술적인 한계에 부닥쳤다. 반도체 성능이 2년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는 이른바 ‘무어의 법칙’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인터넷 이용자가 급증함에 따라 필요로 하는 메모리의 용량이 계속 커졌기 때문이다. 반도체 사이즈를 계속 줄이는 것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했다. D램을 아파트처럼 쌓아 올릴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그래픽이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늘어나는 그래픽 수요에 대처하려면 한 번에 많은 양의 데이터를 빨리 처리할 수 있는 메모리가 필요했다.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 ‘3차원 적층 구조’ 메모리인 HBM이다.

-HBM에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희비가 엇갈렸다.

△2010년께 미국 엔비디아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 모두 HBM을 공급해달라고 주문했다. 당시 만년 2등이었던 SK하이닉스는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 투자를 계속했다. 그 결과 HBM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HBM 시장을 과소평가한 것 같다. 삼성은 D램을 쌓을수록 공정이 어려워지니 수율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고 기존보다 비싼 반도체를 누가 사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듯하다. 미래를 확신할 수 없어 관련 팀도 해체했다. 하지만 10년 뒤 챗GPT가 나오면서 HBM 수요가 폭발해 결과적으로 삼성전자의 결정은 패착이 됐다. 후발 주자로 다시 시작해야 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청론직설] “HBM 경쟁서 밀리면 나라 생존 위협, 국가 수호 관점서 총력전 펴야”
[청론직설] “HBM 경쟁서 밀리면 나라 생존 위협, 국가 수호 관점서 총력전 펴야”

-앞으로 반도체 기술 경쟁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반도체 기술은 HBM을 중심으로 계속 진화할 것이다. AI의 성능은 반도체의 메모리 용량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챗GPT를 포함해서 새로 나오는 언어모델이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가 조(兆) 단위를 넘어 천조(千兆)까지 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HBM의 메모리 용량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D램을 높게 쌓는 기술이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지금은 12~16단 정도를 얘기하는데 향후에는 100단까지 갈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시장구조도 바뀌게 될 것이다.

-시장구조가 어떤 식으로 변화할 것으로 보나.

△HBM은 더 이상 표준화된 메모리가 아니라 고객과 공동 설계하는 메모리로 변모할 것이다. 지금은 공급자 위주 시장이다. 칩 메이커들이 표준화된 모델을 만들어 엔비디아에도 팔고, 구글과 네이버에도 판매하고 있다. 표준 모델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사서 쓰고 있는 구조다. 하지만 기업마다 요구하는 조건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각 기업이 원하는 AI 모델과 서비스가 다르다. 내년에 출시 예정인 HBM4 제품부터는 시장구조가 고객 맞춤형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시장구조 변화를 잘 읽고 대응하면 우리 기업에도 기회가 될 수 있다. AI 시대를 맞아 HBM은 기업을 넘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대체 불가 제품이 됐다. 우리가 HBM 경쟁에서 밀리면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다. 따라서 HBM이 나라를 지킨다는 ‘국가 수호’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HBM 주도권 확보를 위해 민관정이 원팀으로 총력전을 펴야 할 때다.

-우리나라에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반도체 생태계에는 10층 정도의 계층 구조가 있다. 기초과학·수학·물리가 1층이고 반도체 공정이 2층이다. 그 위층에는 반도체 소자, 반도체 설계, 컴퓨터 아키텍처, 소프트웨어, AI 모델, AI 서비스 등이 있다. 이 같은 반도체 생태계에서 선두가 되려면 자본·기술·인재 등을 모두 갖춰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람 외에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 인재도 기초과학·수학·물리 등 1층에 대부분 몰려 있고 반도체 공정, 반도체 설계에 소수가 있을 뿐이다. 컴퓨터 아키텍처, 소프트웨어, AI 관련 우수 두뇌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일어날 변화를 예측하고 앞날을 설계할 수 있는 전문가가 없는 것이다.

[청론직설] “HBM 경쟁서 밀리면 나라 생존 위협, 국가 수호 관점서 총력전 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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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관련 우수 두뇌가 거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기업들의 인사 평가는 매출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반도체 사업부 매출 증가에 기여하면 사장이 되고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렇게 되다 보니 소프트웨어·AI 관련 인력들은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중간에 퇴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반도체 생태계 하위 분야의 인력만 있고 시스템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인재를 찾기 어렵게 됐다. 반도체 생태계 각 분야의 전문가를 키워야 미국·중국·일본을 뛰어넘는 AI 반도체 강국이 될 수 있다.

-인재를 어떻게 길러야 할까.

△반도체 생태계의 각 층마다 최소한 100명의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 이제는 ‘천재 1명이 10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는 지났다. 천재는 많을수록 좋다. 반도체 생태계 계층 구조에서 한 층마다 최소 100명씩, 1000명 이상의 천재를 양성해야 반도체 국가 대항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각 층의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분야에만 매몰되지 말고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융합적으로 일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대학의 학과 간 벽을 허물어야 한다. KAIST의 경우 전산학과는 소프트웨어에 강하고 전자공학과는 반도체 공정·설계에 강점이 있는데 두 학과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이런 칸막이를 없애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통합형 인재들을 키워야 한다. 이 같은 인력들이 기업이나 사회에서 인정 받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또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학생을 키우는 방향으로 교육 시스템도 개선해야 할 것이다. 기업의 인재상과 인사 평가 시스템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정부의 적극적 역할도 중요할 것 같다.

△정부는 기업 활동을 도와주고 인재 육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 우선 반도체 공장을 짓는데 필요한 전력·용수 등의 인프라는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해줘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주민의 이기주의 때문에 인프라 확충이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국립대에 반도체 학과와 AI 학과를 만드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일부 사립대에 기업과 연계한 반도체 계약학과가 개설돼 있지만 국립대에는 관련 학과가 없다. 10개 국립대에 반도체 학과와 AI 학과를 만들고 고급 두뇌를 양성할 수 있도록 과감히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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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를 키우는 것 못지않게 지키는 것도 중요한데.

△우리 인재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이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해 한국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우수 두뇌의 해외 유출을 방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에서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미국 등은 반도체 인재에 대한 처우가 확실하다. 우리도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재의 연봉·인센티브·스톡옵션 등 보상 체계를 국제적 수준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 국내외 인재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택·교육 문제도 풀어야 할 과제다. 기업이 주택 비용을 일정 정도 지원해주는 방안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미국이 대(對)중국 반도체 기술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 수위를 높이는 것은 AI 시대의 주도권을 확실히 쥐기 위해서다. AI 패권의 향배가 반도체 공급망 확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통제로 우리 기업들의 일부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우리와 교역 비중이 매우 큰 미국·중국 두 나라 가운데 어느 쪽을 파트너로 선택할지 고민해야 하지만 혈맹인 미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중국 시장 의존도를 계속 낮춰가야 할 시기를 맞았다. 중국 시장 대신 미국 시장에서 기회를 모색하는 전략을 짜야 할 것이다. 현재 엔비디아 중심인 우리 반도체 기업들의 거래처를 구글·아마존 등 다른 미국 업체들로 계속 넓혀나가야 한다.

◆He is…

1961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수석연구원을 거쳐 1996년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로 옮겨 지금까지 재직하고 있다. KAIST에서 연구처장을 지낸 뒤 현재 글로벌전략연구소장, 삼성전자 산학협력센터장 등을 맡고 있다.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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