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여의도=정소현·이미정 기자 2016년 그날, 광화문은 따뜻한 주홍빛의 ‘촛불’로 일렁였다. 그리고 8년이 지난 2024년 12월, 시민들의 손에는 촛불 대신 알록달록 응원봉이 들렸다.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거나 꺼지지 않는.
시민들을 거리로 이끈 힘은 ‘분노’다. 그러나 이들이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은 과거의 그것과 달라졌다. 집회 현장엔 민중가요 대신 K팝이 울려 퍼졌고, 비장함보다 신바람이 시민들을 한데 모았다.
실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이 예정된 14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은 마치 축제의 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즐겁고 흥겨운 모습이 연출됐다.
거리를 뒤덮은 알록달록 응원봉이 대표적인 변화다. 핑크색 빛이 깜빡이는 하트모양 응원봉을 손에 쥔 70대 노인은 “이런 예쁜 불빛을 보면 무장한 군인들도 섣불리 공격하지 못할 것 아니냐”고 했다.
횃불부터 별, 하트, 토르의 망치에 이르기까지 모양도 색깔도 다양했다. 직접 제작한 응원봉을 가져온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30대 여성은 “좋아하던 아이돌을 응원할 때 쓰던 응원봉인데, 여기에 ‘탄핵’이라는 글씨를 직접 써서 가져왔다”며 “이걸 이렇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웃어보였다.
세대를 넘나드는 선곡(노래)도 달라진 점이다. 비장하고 결연한 의지를 다지게 했던 민중가요 대신, 트로트와 K팝이 시위 현장을 채웠다. 싸이의 ‘챔피언’, BTS ‘불타오르네’, 신해철 ‘그대에게’,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노래가 현장에 울려퍼졌다.
시민들에게 정확한 가사 따위는 중요치 않아 보였다. 그저 함께 흥얼거리며, 어깨를 들썩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모습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1020세대가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20세대는 직접 응원봉을 만들고, 집회에 어울리는 의상을 제작하는 열정도 보였다. ‘윤석열 탄핵송’으로 불리는 응원곡들이 나올 때마다 이들은 목청껏 따라부르며 ‘떼창’을 주도했다.
재치 넘치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과 깃발도 눈에 띄었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쏟아내며 이날 집회의 주인공을 자처했다.
시민들은 건강한 방식으로 ‘분노’를 뿜어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위기 속에서 더욱 견고해진다는 사실을 그대로 증명해보였다. 퇴보한 정치와는 반대로 시민들의 의식은 더욱 성숙해졌고, 또 성장했다. 외신은 이번 탄핵집회를 두고 “한국 민주주의 미래의 희망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라도 광주에서 새벽에 출발했다는 한 노인(76)은 “과거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이런 것들을 불렀는데, 지금은 이름도 잘 모르는 아이돌 가수의 노래가 나오는 게 신기하고 재밌다”면서 “‘아모르 파티(가수 김연자의 트로트곡)’를 ‘윤석열 탄핵’으로 (가사를) 바꾸니 나도 따라부를 수 있어 좋다. 이런 게 시민들을 지치지 않게 하는 힘 같다”고 했다.
중학생 딸과 함께 집회에 참여한 여성(49)은 “정치와 사회를 직접 경험하고 생각하게 하려고 딸과 같이 집회에 참여했다”면서 “이곳에선 갈등도 없고, 혐오도 없다. 사춘기 딸과 소통하는 계기도 됐다. 딸아이가 원한다면 탄핵이 최종적으로 결정될 때까지 계속해서 집회에 참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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