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다 보면 마음이 참 편안해져요. 그게 다예요.”
지난 9일 권선구 세류동 소재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에서 만난 정숙자(83)씨는 최채례(78)씨와 함께 열게 된 2인전 ‘알콩달콩전’의 개최 소감을 묻자 이렇게 담담히 말했다. 살아온 삶의 궤적도, 그림에 관심을 갖고 그리게 된 계기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이었지만,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며 평안함을 느끼는 것만큼은 똑닮아 있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세류2동 세리경로당에서 닿았다. 황해도가 고향인 정씨와 전남 벌교에서도 한참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장도에서 온 최씨가 수원에 뿌리를 내리고 산 지 어느새 수십년째다.
이제는 제2의 고향이 된 수원이지만, 최근에서야 우연히 듣게 된 미술 문화특강에서 임남순 회장의 소개로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와 인연을 맺게 됐다.
언제든 찾아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생기자, 두 사람은 자연스레 ‘우수 개근생’이 됐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협회를 찾아온 이들은 떠나온 고향의 정취를 도화지 위에 옮겼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유독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했다.
최씨는 “예전부터 풍경이 멋진 곳, 예쁜 꽃이 핀 곳을 보면 사진도 찍고 싶고, 달력을 찢어 뒷면에 색을 칠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걸 보며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고 웃었다”며 “외지인들이 섬에 들어와 텐트를 치면 집이 없어 구걸하러 온 줄 알 정도로 순진하고 순수하게 살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초가집과 뒤뜰의 감나무들, 그 밑에 강아지들을 그리다 보면 마음이 행복해졌다”고 설명했다.
이북에서 온 정씨는 말수가 적고 과묵하지만 경로당에서 오랜 시간 음식을 만들어 봉사하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향을 기억하고 행복을 찾았다.
그런 그가 전시에 내놓은 그림 중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건 서당에서 훈장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그걸 볼 때마다 옛 생각이 나고 괜찮다고 생각해요”라는 짧은 한마디에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신현옥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장은 “어르신들의 그림에는 젊은 사람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정서와 역사가 담겨있다”며 “그분들의 추억을 아카이빙하고 사라져가는 문화를 살리고 싶은 마음에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2인전이 열리기까지 아낌없는 응원과 후원을 보내온 조석환 사단법인 나우어스공동체 이사장은 이날 전시 개막을 축하하는 자리에 함께하며 “평소 어르신들에 대한 애틋함을 갖고 있는데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와의 인연으로 이번 전시 시작 전부터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며 “효의 도시 수원에서 의미있는 전시를 열게 돼 기쁘다”고 전했다.
조은희 세류2동 동장 역시 “세류2동에서 뜻깊은 전시를 함께 하게 돼 영광이다. 앞으로도 어르신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기회가 많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두 어르신의 삶을 녹여낸 이번 전시는 31일까지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에서 진행된다.
/글·사진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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