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탄핵을 경험한 재계가 관련 메시지를 최소화하며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인다. 탄핵 정국의 불똥이 튀지 않는 선에서 대내외 활동에 적극 나서며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은 도널드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잇따라 전략회의를 열고 내년 사업 계획을 점검한다.
삼성전자는 17일부터 19일까지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고 2025년 사업 계획을 논의한다. 이 중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은 17일~18일,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은 19일에 각각 회의를 연다.
글로벌 전략회의는 한종희 DX부문장(부회장)과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이 각각 회의를 주관한다. 이재용 회장은 예년처럼 회의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 추후 사업 전략 등을 보고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선 반도체 등 삼성전자의 근원적 경쟁력 회복 방안과 갤럭시S25 등 신제품 판매 전략 및 사업 목표를 주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고환율 등 글로벌 경영 환경 변화에 따른 리스크 헤징 전략 등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도 12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에서 글로벌 권역본부장회의를 열었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 송호성 기아 사장 주재로 매년 상·하반기 한 차례씩 여는 회의로 북미, 유럽, 중남미, 중국 등 주요 권역 본부장이 모였다.
이 회의에는 현대차 사상 첫 외국인 최고경영자로 내정된 호세 무뇨스 사장도 참석해 지역별 판매 실적 등을 점검하고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은 12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비롯한 LG 최고경영진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장단 협의회를 열고 내년 중점적으로 추진할 경영 과제를 논의했다.
최고경영진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중국 기업의 위협이 현실화되는 등 국내외 경영 환경의 위기감이 높아지는 것에 대한 인식을 같이했다. 예상되는 통상정책 변화, 지경학적 리스크, 산업 기술 트렌드 등 경영 환경 변화 시나리오를 면밀히 분석하며 사업에 미칠 영향을 살피고 계열사별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12월 초 조직개편 및 임원인사를 마무리 지은 SK그룹은 매년 6월 경영전략회의, 9월 이천포럼, 10월 CEO 세미나 등을 통해 새해 경영계획을 점검한다. 연말 최태원 회장 주재 주요 경영진이 모이는 경영전략회의는 열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SK그룹은 계엄 사태 직후인 4일 오전 최창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관으로 주요 계열사 경영진이 참석해 혼란한 정세가 시장 및 그룹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는 최근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한국경제인협회와 중요도 높은 일정을 소화했다. 한경협 회장단과 4대 그룹 임원들은 미국에서 한미재계회의 총회를 열고 트럼프 2기 출범에 대비한 비즈니스 미팅을 가졌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조현상 HS효성 부회장을 제외하면 윤영조 삼성전자 부사장, 김동욱 현대자동차 부사장, 폴 들라니 SK아메리카 부사장 등이 참석한 회의에선 양국 경제인은 두 나라 사이의 경제적 협력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9일(현지시각) 한미 재계회의 참석차 미국을 찾은 신학철 부회장은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에 따른 정책 변화 가능성과 관련해 “모든 문제를 기회 요인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어떤 변화가 와도 대응할 수 있는 여러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탄핵 정국으로 반도체 특별법, 인공지능(AI) 기본법,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등 그동안 경제계 숙원이던 산업 지원 정책이 뒷전으로 밀려날 처지다. 재계는 국회를 찾아 한 목소리를 내며 활로를 찾고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12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민생현안 긴급 간담회’를 직접 찾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에게 “반도체 같은 첨단전략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보조금 지원, 근로시간 규제 완화 같은 입법도 적극 검토해 주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재계 한 관계자도 탄핵 정국이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반도체 수출이 줄어들거나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거시경제 자체가 불안정해질 수 있어 긴밀하게 보고 있다”며 “다만 국회에 계류된 산업 지원 법안이 늦춰지면서 간접적으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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