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시위가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가장 먼저 신속성에 놀랐다. 계엄 선포가 알려지자마자 사람들이 한밤중에 즉시 국회 앞으로 모였기 때문이다. 한 일본 방송에선 ‘만약 우리 위정자가 잘못된 판단과 행동을 했을 때 일본인들도 한국인들처럼 저렇게 모여서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을까 생각해봐야 한다’는 해설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인들의 용기에도 놀랐다. 총 든 계엄군 앞을 시민들이 맨몸으로 막아 섰기 때문이다. 당시 계엄군에게 작전 수행의 의지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지만, 그 순간엔 눈앞의 군인이 어떤 태도로 나올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출동한 군인들 중엔 인간병기라 불릴 정도로 세계적인 전투력의 정예병도 있었다. 무력이 조금만 사용돼도 시민들이 크게 다칠 수 있었다. 게다가 한국인은 지난 계엄 때 군대가 자국민을 공격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런 트라우마가 있는데도 맨몸으로 군인과 위협적인 군용차량 앞을 막아선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계엄을 저지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군인들에게 작전수행의 의지가 별로 없었다고 해도, 장애물이 없었다면 신속 수월하게 국회의사당에 진입했을 것이다. 앞에서 시민들이 막아줬기 때문에 진입속도가 늦어졌다. 눈앞의 시민들을 보며 안 그래도 약했던 계엄군 한 명 한 명의 전의가 더 약해졌을 것이다.
이 광경을 본 해외의 많은 이들은 한국 시민들이 궐기해서 계엄을 막아냈다고 인식한다. 대통령이 군을 동원했는데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놀라운 역량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초고속 계엄해제를 이뤄냈다는 것이다. 국내의 외국인들은 ‘이것이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라고 경탄했다. 미국의 한 방송에선 ‘한국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의 의식 수준은 80년대에 있었으나 한국인들의 의식 수준은 우리 미국인들보다도 앞서있었다’는 식의 해설도 나왔다.
시위의 모습이 더욱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일단 평화롭다는 점이다. 서구에선 대규모 시위하면 보통 폭동을 떠올린다. 한국에서 분노한 시민이 대거 집결했는데도 소요 사태가 없다는 점에 놀란다. 물론 한국의 평화시위는 예전에도 경탄을 자아낸 바 있다. 하지만 서구에 한국에 대해 그런 정도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소수이기 때문에 이번의 평화 시위에 많은 서구인들이 한국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케이팝과 응원봉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번 집회에선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를 비롯해 지드래곤 ‘삐딱하게’, 에스파 ‘위플레시’, 로제 ‘아파트’ 등의 케이팝 히트곡들이 울려 퍼졌다.
촛불 대신 형형색색의 아이돌 응원봉이 총집결했다. 응원봉이 ‘시위템’으로 뜨면서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탄핵’ 등의 글자로 ‘응꾸’(응원봉 꾸미기)된 응원봉이 시위템으로 거래되기도 하고, 50대 이상 시위참여자들을 위해 응원봉을 무료 나눔하겠다는 이들도 나타났다. 케이팝 팬들이 응원봉을 흔들며 떼창하는 현장을 보고 외신들은 시위 현장이 페스티벌 같다고 했다. 이런 모습들이 SNS를 통해 해외 케이팝 커뮤니티에 알려져 외국인들의 경탄을 자아냈다. 미국인이 한국인들에게 배워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2016년 촛불 시위가 터졌을 때 김진태 의원이 “촛불은 촛불일 뿐 바람이 불면 꺼진다, 민심은 언제든 변한다”는 식으로 말해서 그에 대한 반발로 바람 불어도 안 꺼지는 LED 응원봉이 등장했던 것인데, 이번에 그것이 전면화 되면서 한국 시위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다.
다양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깃발들도 화제다. 2016년 시위 당시 여당에서 촛불시위의 배후를 의심하는 발언이 나와 일부 시민들이 ‘내가 배후다’라고 하며 다양한 깃발을 들고 나섰었다. 그게 젊은 세대의 자기표현 욕구와 맞물리면서 이번에 저마다의 취향을 내세우는 깃발들이 폭발했다.
시위대를 향한 기부행렬도 주목 받는다. 자신은 사정 때문에 시위 현장에 갈 수 없지만, 시위대를 위해서 시위장 주변 카페에 요금을 선결제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연예인들 중에서도 시위에 나서는 팬들을 위해 선결제한 이들이 있다. 이런 풍경도 한국인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모습이라며 해외에서 경탄한다.
군대가 시민사회에 진입하는 모습은 주로 저개발 제3세계 국가를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다. 한국에서 그런 일이 터지자 세계가 큰 충격을 받았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이번 사태가 한국의 어두운 면을 드러냈다고 했다. 국격 실추다. 하지만 곧이어 나타난 한국인들의 민주주의적 역량에 세계가 다시 한번 놀라면서 조금이나마 만회되는 느낌이다. 한국이 대통령의 일탈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인식도 어느 정도는 확산되고 있다.
다만 이런 정보를 세세히 찾아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서, 군대가 국회에 진입하는 충격적인 이미지로만 한국을 기억하게 된 외국인들이 여전히 많을 전망이다. 국내 외국인들은 비상계엄 선포를 듣자마자 전쟁을 먼저 떠올렸다고 한다. 해외에서 안 그래도 한국하면 전쟁 위험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번 계엄으로 더욱 한국을 불안한 나라로 느끼는 경향이 이어질까 우려된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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