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귀화자, 이민자 2세, 외국인 등 이주 배경을 가진 인구가 총인구의 5%를 넘으면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한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한국도 다문화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은 전체 인구의 4.89%인 250만7584명을 기록했다. 역대 최다(2019년 252만4656명)보다는 적지만, 비율로는 2019년(4.87%)보다 많다. 조선비즈는 ‘코리안 드림’ 품고 한국에 온 외국인 중 자영업을 하는 이들을 만나 그들이 한국에 터를 잡은 이유,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에 대해 물었다. [편집자 주]
“내가 한국에 있는 유일한 이유는 아내다.” 스위스 출신 건축가 팜 위드메르 팀(Pham Widner Tim·34·이하 팀)은 지난 9일 서울 중구에서 만난 기자가 한국에 살게 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팀은 스위스 로잔 연방공과대학(EPEL)에서 건축학 학사를,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ETHZ)에서 건축학 석사를 마쳤다. 그러던 중 스위스로 유학 온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스위스에서 도시계획 학위를 받은 아내는 한국으로 돌아갔고, 팀은 군복무(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선택지를 택할 경우 450일 동안 노인을 돌보고 아이를 돌보는 업무를 함)를 마친 뒤, 2018년 한국에 왔다. 그리고 7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이제 한국에는 아내와 딸(2023년생)이 있고, 두 명의 직원을 갖춘 회사도 있다.
“건축업계에선 아직 많이 어리다”는 팀이 한국에서 오자마자 한 일은 도시계획가인 아내를 돕는 것이었다. 아내는 정부에서 공공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회사를 운영한다. 팀은 “본래 2년 동안 한국에 머무를 계획이었다”며 “아내의 회사가 점점 커졌고, 아내는 회사를 성공적으로 운영했다”고 했다. 그렇게 아내를 도와 4년을 보내고 팀은 1년 6개월 전에 최춘웅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 교수와 함께 ‘초이 위드 메르 아키텍츠’(Choi Widmer Architects)라는 건축사무소를 설립했다. 건축사무소 이름에 ‘초이(Choi·최의 영문표기)’가 들어간 이유다. 팀은 “건축가 목록을 만들고 수많은 웹사이트를 방문한 다음 같이 일하고 싶다며 포트폴리오를 보냈다”며 최 교수와 동업자가 된 과정을 설명했다.
팀의 삶은 부모와 닮았다. 아버지는 건축가로 프랑스 베르사유 국립 건축학교(National School of Architecture of Versailles)의 건축학과 교수다. 어머니는 아내와 같은 도시계획가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일한다. 팀은 “평생 건축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었다”며 “친한 친구가 건축을 하자고 해서 건축학과에 갔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친한 친구는 건축가가 아닌 조경 전문가가 됐고 팀은 건축가가 됐다. 그리고 석사 과정을 마치고 영국에서 경력을 쌓으려던 팀은 한국에 정착했다.
◇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커뮤니티 만들고파”
건축업계에서 고객을 만나기 위해선 포트폴리오를 쌓는 게 중요하다. 기존 결과물을 보고 건축가를 찾는 고객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팀은 “대부분의 건축가의 첫 번째 고객은 친구나 가족”이라며 “하지만 나의 부모님은 모두 건축업계 종사자라 필요하지 않은 프로젝트를 나에게 맡기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팀은 한국에서 기회를 얻었다. 장인이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있는 부지에 주택 건설을 맡긴 것. 팀은 “응암동 주택의 인테리어 디자인만 맡았다”며 겸손해했지만,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팀은 한국에서 각종 공모전에 응모해 경력도 쌓았다. 팀은 아내의 회사와 함께 공모전에서 세 차례 입상했다. 2021년 LH K하우징, 충남 예산 마을 정비형 사업에서 3위를, 2022년에는 서울 불광천 수변 감성 도시 조성 사업에서 2위를 했다. 올해에는 GH 매입임대주택 지동 228-8 사업에서 1위를 했다. 팀은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하거나 고객이 나를 찾는 행운이 따라야 한다”며 “고객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고객이 나를 찾는 것은 행운”이라고 했다.
팀의 전공 분야는 ‘집(Housing)’이다. 앞으로 팀은 하나의 ‘커뮤니티’가 될 수 있는 집을 설계하는 꿈을 꾸고 있다. 팀은 “한국은 건축에 있어 기회가 많아 정말 좋은 나라”라면서도 “주로 아파트에 사는 한국인은 이웃이랑 인사할 기회가 적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만나 친구가 되고, 서로를 도울 수 있고, 필요한 것을 빌릴 수 있는, 적어도 같은 층에 사는 사람끼리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팀이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은 응암동 주택은 팀의 꿈이 일부 반영된 공간이다. 1층에는 아내의 회사가 있고 2층에는 장인의 사무실이 3층에는 네 가족이 산다. 4층에는 팀의 가족이 5층에는 아내의 부모가 산다. 팀은 “우리와 함께 사는 이들은 오가면서 미소 짓고 인사를 나눈다”며 “스위스에 있는 이웃을 알고 싶어 하는 문화를 한국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이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는 곳을 만들고 싶다. 그것이 내 일”이라고 했다.
◇ “어느 곳보다 안전한 한국, ‘아시아의 스위스’될 것”
스위스의 자연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각종 조사에서 스위스는 ‘살고 싶은 나라 1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팀은 “스위스는 아름답지만, 지루하기도 하다”며 “로잔에서 평생 호수만 보며 살았다면 슬펐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미래에 ‘아시아의 스위스’가 될 것이라고 했다.
팀은 “한국은 음식도 맛있고 아이들이 자라기에도 좋으며, 한국인 남편이나 아내와 결혼할 수도 있는 나라”라며 “무엇보다 세상 사람들이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 싶어 하는 이때 한국은 거리에서 싸움이 일어나지도 않고, 강도도 없는 안전한 나라”라고 했다. ‘스위스도 안전하지 않냐’고 되묻자 “밤에 취하면 서로를 공격하기도 한다”며 “한국만큼 여성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나라는 드물다”고 했다. 또한 최근 빚어진 비상계엄 사태를 언급하고는 “한국은 안전한 것은 물론 민주주의가 강한 나라”라며 “인류의 가장 큰 적은 전쟁과 부패인데, 한국에서 부패 문제는 점점 개선되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팀은 현재 마곡동에 지어질 사무실을 설계 중이다. 앞으로의 목표는 한국에서 건축학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이다. 팀은 “내 꿈은 더 평화롭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며 “한국은 너무 건물을 높이 많이 짓는다. 조금 덜 짓고 조금 더 낮게 짓는 편이 낫다고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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