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중간은 없어요.”
최근 서울 한 백화점에서 겨울 상품 팝업스토어(임시 매장)을 운영한 의류 업체 대표 A씨는 팝업스토어 매출이 생각보다 저조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우리 브랜드는 시장에서 가격대가 중간쯤에 해당하는데, 매출이 목표치의 최하단 수준을 겨우 달성했다”면서 “백화점 상품기획자(MD)가 우리 브랜드는 그나마 성적이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양극화가 심해서 아주 싸거나 비싼 것만 팔리지 어중간한 브랜드는 살아남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전했다.
13일 패션 업계에 따르면 소비시장 양극화로 인해 의류 시장도 고가의 수입 브랜드나 초저가 의류만이 살아남는 형국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10월 신세계백화점의 총매출이 마이너스(-) 3% 성장한 가운데, 명품은 전년 대비 보합 수준을 보였고, 패션(-7.5%), 잡화(-8%) 등은 역성장했다. 11월 들어서도 명품은 7% 매출 성장률을 보였지만, 패션·잡화는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백화점도 11월 총매출이 1% 성장한 가운데 명품 매출은 9% 성장했고, 남성·여성 패션군은 매출이 4% 감소했다.
반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지향하는 제조·유통 일원화(SPA) 패션 브랜드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국내에서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는 2024 회계연도(2023년9월1일~2024년8월31일) 매출이 1조601억원으로 전년 대비 1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5.4% 증가한 1489억원을 기록했다. 일본 브랜드인 유니클로는 2019년 회계연도 매출이 1조4000억원에 육박했으나, 일본 반도체 수출 규제 조치 이후 불매운동을 겪으며 이듬해 매출이 절반 이상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저렴한 제품을 선호하는 수요가 늘면서 다시 1조원대 매출을 회복했다.
신성통상의 SPA 브랜드 탑텐도 올해 매출 1조원을 달성할 것으로 추정된다. 탑텐의 매출은 2019년만 해도 2800억원 수준이었으나, 유니클로가 불매운동으로 주춤한 사이 가파른 성장을 보이며 업계 1, 2위를 다투게 됐다. 이랜드월드의 SPA 브랜드 스파오도 올해 매출이 전년 대비 25% 증가한 6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균일가 생활용품점 다이소가 내놓은 5000원짜리 옷들도 인기를 끈다. 다이소는 올겨울 발열내의인 ‘이지웜’ 시리즈와 함께 패딩 조끼와 플리스 재킷, 홈웨어 등 의류 80여 종의 상품을 선보였다. 다이소 관계자는 “올해 이지웨어로 맨투맨, 후드 티셔츠 등을 처음 선보였는데, 10~11월 이지웨어 매출이 전년 대비 557% 증가했다”라고 말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리서치가 발표한 ‘한국패션산업 빅데이터 트렌드 2024′ 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패션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2.8% 증가한 48조4167억원이었다. 분야별로는 SPA 브랜드가 속한 캐주얼 시장의 성장률이 6%로 가장 높았고, 가격대가 높은 여성정장과 남성정장은 각각 3.6%, -2.6%의 성장률을 보였다.
상황이 이렇자, 패션업계는 실적이 부진한 브랜드의 운영 중단을 검토하는 분위기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은 지난 5월 럭키마르쉐 영업을 종료한 데 이어 올 하반기 자체 브랜드(PB) 남성복 프리커와 여성복 리멘터리의 운영을 중단했다. LF는 랜덤골프클럽과 티피코시 사업을 종료했고,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올 상반기 메종키츠네 골프 라인을 철수했다. 글로벌세아그룹의 계열사 S&A의 골프복 ‘톨비스트’도 운영 이번 가을·겨울을 끝으로 7년 만에 운영을 중단한다.
업계 일각에선 경기 불황과 함께 생필품은 가장 싼 걸 구매하고, 개성을 살리는 상품엔 투자하는 앰비슈머(ambisumer) 소비가 브랜드 양극화를 부추겼다는 진단도 나온다. 앰비슈머란 양면성을 의미하는 엠비버런트(ambivalent)와 소비자를 의미하는 컨슈머(consumer)를 합친 신조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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