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전, 인천 영종도에선 반도체 후공정 업체 스태츠칩팩코리아 사옥 앞 ‘독성 간 질환 산업재해 은폐, 진실보도 탄압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장에 이종란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노무사와 김연정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가 함께 섰다.
이종란 노무사는 “반올림의 첫 제보자, 삼성반도체 백혈병 황유미 씨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을 때 삼성의 모습과 정말 닮았다”고 말한다. 그는 스태츠칩팩코리아가 김 기자를 상대로 낸 형사 고소장에 대해 “피해자와 동료들의 구체적 진술을 다 반박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셜록의 김연정 기자는 “‘입틀막’ 당해도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해야 할 일도 많다”고 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9월, 스태츠칩팩코리아에 현장실습생으로 입사한 청년 노동자 김선우(가명) 씨가 산재 인정을 구하는 싸움이 ‘진실탐사그룹 셜록’ 보도로 알려졌다. 김씨는 18세 나이로 2020년 10월부터 일한 지 만 1년 만에 간이 녹았다. 급성간염을 동반한 독성 간질환, 무형성 빈혈이다. 이에 급성 간부전과 간성혼수 상태에 빠졌다. 김씨는 독성물질 노출로 인한 업무상 재해라며 산재 신청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이 불승인하며 사건은 2022년 8월 법정으로 갔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김씨가 작업현장에서 다뤘다고 증언하는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김씨 질환에 대해서는 근로복지공단에 “음주 습관으로 인한 상병이 아닌지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회사 특수건강진단에서 ‘일주일 1잔, 하루 4잔’ 음주한다고 표기된 것을 들어서다. 반면 회사는 김씨에게 근로계약서와 작업환경과 유해요인 관련 자료 등 제공을 거부하고 있다. 지난 10~11월, 김씨의 싸움을 보도한 셜록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김 기자 개인을 상대로는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등으로 경찰에 고소했다.
회견 와중, 회사 관계자들이 현장을 지켜보거나 촬영했다. 한 사람은 회견 발언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사측 입장문을 배포하고 명함을 수집했다. 회사 입장문엔 아래와 같은 ‘경고’가 포함됐다. “회사명이 직간접적으로 노출되거나 사실과 다른 보도로 인해 당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이후 12일 기준 기자회견을 보도한 언론사 10곳 가운데 회사 이름을 밝힌 곳은 3곳에 그쳤다.
– 기자회견에선 “스태츠칩팩코리아의 산재 은폐와 진실 보도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어떤 점이 삼성 백혈병 산재와 겹치나.
이종란 : “황유미 씨는 일명 ‘퐁당퐁당’이라 부르는, 반도체 판을 불산·계면활성제 등 혼합 유기용제에 담갔다 빼는 세척 작업을 했다. 삼성은 황씨 근무 내용을 속이고 그의 주된 업무가 스티커 라벨을 붙이기였단 식으로 주장했다. 당시 산재 여부를 판단하는 근로복지공단 담당자가 책상을 ‘땅’ 치면서 말했다. ‘삼성이 거짓말을 할 기업으로 보이십니까?’ 그런데 나중에 다른 제보자들이 나타나며 진실이 조금씩 밝혀졌다.
이번 사건에서 스태츠칩팩코리아 측은 김씨가 블레이드를 세척하며 ‘물’을 접촉했다고 주장한다. 근로복지공단은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김씨와 동료들은 아세톤을 썼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손의 껍질이 벗겨진 것도 아세톤에 손을 담갔기 때문이다. IPA(이소프로필알코올)도 걸레에 항상 흠뻑 적셔 쓰곤 했다고. 김씨 동료는 ‘세정실 문을 열면 소주병에 코를 박은 것처럼 냄새가 콱 올라왔다’고까지 말한다. 현장에 방독마스크는 관리자만 쓰도록 한 개 비치됐고, 이들은 일회용 덴탈마스크를 지급 받았다. 현재는 일부 공정에서 (세척액을) 물로 바꾼 것으로 알고 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작업 환경과 김씨가 얻은 독성 간 질환의 인과관계를 정면 부인하고 있다. 사측은 “이는 근로복지공단의 면밀한 역학조사 결과 명확히 확인된 사실”이라며 “회사의 업무 환경은 대한산업보건협회의 작업환경측정 결과 안전하다는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간 질환 유발 인자도 대부분 불검출됐고, 검출됐더라도 검출한계 미만이라는 입장이다. 김씨가 접촉한 물질은 물이며, 과거엔 세척물질로 에탄올을 썼으나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소독물질이라고도 했다.
– 회사 주장을 반증하거나 제보를 뒷받침할 현장 사진 등이 있나.
이종란 : “이 또한 황유미 씨를 비롯한 반도체 노동자들이 겪는 억울한 점이다. 노동자들은 반도체 생산현장에 휴대폰도, 카메라도 들고 들어갈 수 없다. 자신이 몸으로 겪은 경험을 뒷받침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회사는 영업비밀을 이유로 사용 유해물질을 알려주지 않기에, 회사가 거짓말을 하더라도 반증이 어렵다. 다만 화학물질종합정보시스템을 보면, 공정에 따른 구분이 없으나 2022년 스태츠칩팩코리아가 아세톤을 5~20톤 사용한 것이 드러난다.
현장에서 사용된 건 아세톤뿐 아니다. 간 독성 물질이 든 플럭스는 김씨가 직접 짜 사용하기도 했고, 솔더페이스트 등 여러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있어 독성 간 질환을 일으킨 요인을 특정하기 어렵다. 우리가 ‘세정실’을 강조하는 건 적어도 여기서 아세톤이 사용된 게 분명한 사실이며, 노출 정도도 심했기 때문이다. 현장에 노출 관리가 없었다는 증거다. 그런데 회사가 이마저 부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에게는 ‘공단 통해 (회사가 제출한 자료를) 확인하라’며 기초자료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씨는 산재가 불승인된 이후에야,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자료를 일부만 확보했다.”
고 황유미 씨가 산재를 인정받는 길도 험난했다. 유미 씨는 2003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기흥공장에서 1년8개월가량 반도체 세정 작업을 했다. 스무살이던 2005년 6월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2007년 3월 세상을 떠났다. 근로복지공단은 2009년 5월 유미씨를 포함한 5명의 산재 신청 사건을 불승인했다.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산재를 인정한 법원 판결은 그가 숨진 지 7년 만에 확정됐다.
– 회사는 기자들에게 배포한 입장문에서 “작업환경과 김씨 질환의 인과관계가 없음은 근로복지공단의 면밀한 역학조사 결과 명확히 확인된 사실”이라고도 강조했는데.
이종란 : “그동안 부실한 역학조사의 문제는 너무 많이 확인되어 왔다. 작업환경측정제도는 일부 물질만 사측이 지정한 날짜에 일회적으로 한 조사로 신뢰도가 낮다. 이는 반도체 공장의 여러 직업병 판결에서 계속 지적돼왔다. 회사가 이런 역학조사나 작업환경측정결과를 근거로 언론을 탄압하고 허위사실이란 근거로 악용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
– 스태츠칩팩코리아가 보도한 기자를 경찰에 고소한 것을 알고 어땠나.
김연정 : “추석을 앞둔 지난 9월12일 사무실에 ‘경고장’이 왔다. 법무법인 율촌이 보내온 내용증명이었다. 스태츠칩팩코리아 명예를 침해하는 위법한 보도를 했다며, 기사 삭제를 요청했다. 이후 11월11일 경찰 2명이 사무실로 와 곧 조사를 하겠다고 하고 갔다.
기자 개인에게 정말 (형사고소를) 거는구나, 하고 충격 받았다. 기자 괴롭힘이 목적이라 본다. 만약 회사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면 언중위 단계에서 추가 반론을 실었을 거다. 그런데 거부했다. 언중위 중재부도 반론을 제안했고 우리는 반론을 추가로 실어줄 수 있다는 입장이었는데, 회사는 기사 삭제를 요구했다. 오늘 회견장에 나타나 취재중인 기자들에게 ‘법적 조치’를 언급하는 회사 입장문를 나눠주는 걸 보고 ‘뭐가 그렇게 떳떳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 기자 형사고소의 목적은 뭐라고 보나.
김연정 : “중국계 자본 소유의 회사로 알고 있는데, 자본을 동원해 회사의 노동환경 문제를 억누르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만약 우리가 보도하지 않았다면, 정말 이 사건은 소리소문없이 묻혔을 수 있겠다. 심지어 그 노동자는 현장실습 고등학생이었지 않나. 다른 사례를 더 취재해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 회사는 “공정이 운영된 20여년간 동일하거나 유사한 질환이 발병한 전례가 없고, 그와 함께 근무한 100여명의 직원도 발병한 적이 없다”고 강조한다.
이종란 : “회사는 다른 사람은 안 걸렸는데 피해자 한 명만 걸렸으니 산재가 아니라는 식의 주장을 한다. 단 1명이어도 산재일 수는 있는데, 1명만 그런 것이 아닐 수 있다. 제보자 찾기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언론에 회사 이름이 검색이 돼 독자들이 볼 수 있어야 한다. 회사가 애써 회사이름을 감추려는 이유 중 하나는, 정말 다른 피해자들이 더 드러날까봐 하는 걱정이 있는 것은 아닐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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