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촛불 광장이 열렸다. 100만 촛불이 모이자, 여기저기서 이번 촛불 광장의 성격을 규정하는 작업으로 분주하다. 구태여 전처럼 직접 발로 뛰며 찾아다니지 않아도, 이젠 데이터가 보여준다. 통신사 모바일 빅데이터로 나타난 2024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촛불 집회의 키워드는 ‘2030 여성’이다. 전체 집회 참가자 가운데 20대 여성이 18%, 30대 여성이 11%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초점은 ‘왜’에 맞춰져야 한다. 왜 2030 여성들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기원하며 촛불을, 응원봉을 들었을까.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라는 말, 페이스북에 썼던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 공약에서 보듯 윤석열 정권을 대표적인 단어가 ‘반여성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정권을 응징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격을 갖춘 정체성이 여성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다.”
윤석열 정부의 탄생 조짐이 보일 때부터 이 정부의 위험성에 대해 줄기차게 지적해 온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은 ‘계엄’이라는 극단적 민주주의 붕괴 현상에 앞서, 이 정부에서 민주주의의 소멸을 감지했다고 했다. 그는 “틈만 나면 했던 말이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보고 싶으면 차별금지법과 페미니즘을 보라. 그 두 가지가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다'”라고 말했다.
그는 윤석열이라는 내란수괴 ‘괴물’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정치적 과정이 있었는지를 복기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 ‘반여성주의’라는 손쉬운 선동 구호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보고 싶으면 차별금지법과 페미니즘을 보라”는 그의 말은 제도권 정치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광장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지금 촛불 광장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맴돈다. ‘페미니즘 언어는 탄핵 광장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과 그에 대한 반박이 수시로 오간다. 장 전 의원은 반페미니즘에 대한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통해 광장 안의 차별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광장에서부터 모두가 평등한 공간을 만들어야지만 계엄과 같은 극단적 민주주의 퇴보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장 전 의원은 그러니 집회에 참여한 젊은 여성을 ‘기특해 하는’ 시선 또한 거둘 것을 요청했다. 그는 “지난 4년 내내 내가 갔던 모든 광장에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은 언제나 있었다”며 “여성과 성소수자와 장애인의 광장에 본인들이 없었던 것이다. 완전히 다르게, 거꾸로 서술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광장의 역사는 여전히 힘 있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탄핵 광장은 새로운 공화국을 발명하는 광장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다음은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프레시안」에서 진행된 장 전 의원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보고 싶으면 차별금지법과 페미니즘을 보라”
프레시안 : 지금 탄핵 광장의 주축이 2030 여성들이다. 그 여성들은 청소년, MZ 등 다른 정체성보다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강조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무엇이 그들을 광장으로 이끌었다고 보나.
장혜영 : 윤석열 정권 아래서 가장 노골적으로 억압받았던 정체성이 여성 정체성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라는 말, 페이스북에 썼던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 공약에서 보듯 윤석열 정권을 대표적인 단어가 ‘반여성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정권을 응징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격을 갖춘 정체성이 여성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다.
내가 21대 국회의원으로 일을 하면서 틈만 나면 했던 말이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보고 싶으면 차별금지법과 페미니즘을 보라. 그 두 가지가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다’. 지금 돌이켜보면 굉장히 의미 있는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방식으로 체험하고 있지만, 차별금지법 문제를 가지고 싸웠던 사람들, 그리고 페미니스트로 활동하거나 페미니스트처럼 보이는 사실상 대부분의 여성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일찌감치 일상에서 체감하고 있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집회에서 공개 발언 등을 통해 실제 여성과 소수자 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한편에선 ‘탄핵 광장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라며 불편해하는 이들도 있다.
장혜영 :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의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야기를 해야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계엄이라는 충격적인 사태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이 ‘반페미니즘’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이는 없을 것이다. ‘집게손가락’ 논란에서 시작된 반페미니즘 강풍이 어떻게 여기까지 이어졌는지 잊어버렸던 많은 이야기를 기억해 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2021년 서울‧부산 재보궐선거를 기점으로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와 당시 원외 정치인이었던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나와서 편의점 포스터에 있던 집게손가락 제스처를 두고 TV토론을 벌였다. ‘집게손가락은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을 조롱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공론장에서 받아주기 시작했을 때, 그게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는 걸 알면서도 페미니스트들이 골탕 먹는 모습이 고소했던 사람들이 그걸 그냥 팔짱 끼고 지켜보고 있었던 게 문제의 시작점 아닌가. 이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윤석열 개인의 특질로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사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윤석열이라고 하는 이상한 사람이 대한민국 정치에 난입할 수 있다. 그런데 야당까지 가지 않아도 당장 국민의힘이라는 당이 제대로 기능하는 정당이었다면 윤석열이라고 하는 사람을 걸러낼 수 있었을 것이다. 윤석열이라는 현대적 괴물은 대한민국 정치의 ‘시스템 리스크’가 낳은 괴물이라고 하는 점을 반드시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이상한 정치의 벽돌을 쌓는 데서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시멘트의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이 광장에서 돌아보지 않는다면 안 된다.
프레시안 : 대통령 윤석열의 탄생 과정을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인데,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었던 그가 지금은 탄핵에 앞장서고 있다. 이 의원과 줄곧 대치를 벌여왔던 입장에선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장혜영 : 지금 국회의원이라는 대한민국의 헌법기관은 누구라도 탄핵에 찬성해야 마땅한데, 그에 더해 이 대표는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반성이다. ‘양두구육(양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파는 것)’으로 윤석열이라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데 대한 반성을 해야 한다.
이 대표는 페미니스트만이 아니고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으로 대표되는 장애인 집단에 대해서도 공격했다. 약자에 대한 차별과 공격이 그 사람의 정치적 동력이었고, 그로 인해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정치인이 바로 윤석열이었다. 그에 대한 반성 없이 지금 와서 윤석열을 공격한다? 국민이 보시기에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함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문제를 한 번은 털어야 한다”
프레시안 : 페미니즘 등에 대한 공격은 여권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 국면에서만 보더라도 김민웅 촛불행동 상임대표, 박구용 더불어민주당 교육연수원장 등 이른바 진보 인사라고 하는 이들의 성차별적 행태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분열 조장’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상황인 것 같다.
장혜영 :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편으론 이런 논란이 우리 사회가 크게 한 걸음 나아가도록 하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김민웅 대표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의 실명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2차 가해를 입혀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아직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김 상임대표가 속한 촛불행동에서는 법원의 판결이 잘못됐다는 취지로 논평을 냈다. 그런 그들이 과연 촛불 광장을 대표할 수 있는가 이것이 여성들의 물음이다. 탄핵 광장의 일원으로서, 이 광장이 모두의 광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물음인 것이다. 나는 ‘문제를 짚는’ 이 지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누군가를 공격하고, 그 사람을 떨어내려고 문제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아가기 위해서 이 문제를 정리하자는 것이다.
함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금껏 눙쳐왔던 문제를 한 번은 털어야 한다. 그래야 더 넓어지고 커지고 더 강해질 수 있다. 그런 문제제기를 분열적인 목소리라고 오해하고 억압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굉장히 분열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당사자들은 이 정성스러운 문제 제기에 대해서 돌아봐야 한다. 판을 깔아줬으니까 이제 응답할 차례다. 작은 사건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시작이 되는 사건일 수 있다.
프레시안 : 박구용 원장의 경우 이른바 ‘이대남’의 집회 참여를 유도하려는 차원에서 “집회에 젊은 여자가 많다”는 발언을 해서 비판을 받았다. 이 발언에 대해 어떻게 보나.
장혜영 : 일단 ‘이대남’, ‘이대녀’와 같은 네이밍(이름 짓기)과 구분이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을 탄핵하는 일 앞에 성별이 어디 있고 나이가 어디 있겠나. 그리고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한테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지, ‘여자들 많으니까 남자들 나와’라고 말하는 게 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 이야기인가.
나는 광장에 나오지 않는 젊은 남성들을 비난할 게 아니라, 지금 광장에 나와 있는 젊은 남성들에게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이대남’을 한 덩어리로 묶어서 전부 다 이준석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만들어 버리면 집회에 나온 젊은 남성들이 속상하지 않을까. 같이 광장에 나와서 함께 탄핵을 외치고, 페미니즘이라는 시대정신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그래서 자신이 소리 내서 이야기하는 것조차 여성들의 발언권을 뺏을까 봐 입을 닫고 있는 남성들의 존재를 무시해선 안 된다.
프레시안 : 박 원장 발언의 경우 여성들을 대상화했다는 것이란 점에서 특히 비판받았다. 지금 집회에 나온 젊은 여성들을 향해 많은 이들이 ‘기특하다’고 표현하는데 이 또한 대상화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장혜영 : 젊은 여성들이 집회 와서 기특하다고 하는 분들에게 “잘못 알고 계시다”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주류 입장에서는 ‘이 광장에 여성이 이렇게나 많다니’ 하고 놀라는 것 같은데, 계엄을 선포하고 해제한 당일, 국회를 둘러쌌던 수많은 사람 중에 여성이 있었고 장애인이 있었고 성소수자가 있었다. 그리고 지난 4년 내내 내가 갔던 모든 광장에 그들은 언제나 있었다. 과연 누가 광장에 없었던 걸까. 여성과 성소수자와 장애인의 광장에 본인들이 없었던 것이다. 완전히 다르게, 거꾸로 서술되고 있다.
심지어 성소수자들은 광장을 빼앗기기까지 했다. 행정 권력에 이미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매번 서울 광장에서 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었던 서울 퀴어 퍼레이드가 다름 아닌 행정 권력에 의해서 광장을 빼앗겼다. 그때 아무도 연대하지 않았다. ‘지금 여성들, 성소수자들이 여기 있네’라고 새삼스럽게 발견하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지 않았고 연대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외면했던 것이고, 그래서 차별금지법 제정도 지금까지 미뤄왔던 것 아닌가. 그래서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보려면 페미니즘이 무슨 취급을 받는지 차별금지법이 무슨 취급을 받는지를 봐야 한다고 여전히 나는 생각한다.
광장의 역사는 여전히 힘 있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탄핵 광장은 새로운 공화국을 발명하는 광장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힘을 가진 사람들은 본인이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중산층의 사람들은 자기가 절대 중산층이라고 생각 안 한다. 그 문제를 돌아봐야 한다. 지금 보기에는 다 광장에 나와 있으니까 마냥 보기 좋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성소수자와 얼마나 많은 휠체어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살아가는지 눈을 크게 뜨고 봐야 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같은 주권자로 호명되고 있지만 힘 있는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주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주권의 경험이 얼마나 다른지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프레시안 : 지금 우리 사회 주류로 자리 잡은 86 세력은 광장 내 성차별에 대해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이 광장을 과거에 우리가 만들어 준 건데, 말실수 정도는 이해해달라’며 관용을 베풀라고 하는 느낌이다.
장혜영 : 이것도 잘못 알고 계신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런 식으로 얘기하자면 ‘유관순 누나가 만든 나라에 살고 있으면 그런 얘기는 좀 자제해 달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나. (웃음) 독립운동 때부터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외치던 때에도 여성들은 늘 있었다. 다만 역사가 호명하지 않았을 뿐이다.
프레시안 : ‘모두의 광장’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구현되기 위해선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장혜영 : 나는 지금까지는 잘 되어가고 있다고 본다. 과거의 광장과 달라진 게 있다면 사람들이 애정 어린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당사자들은 이 호소에 응답해야 한다. 다만 김민웅 대표나 박구용 원장의 인식이 뭐가 문제인지 여전히 못 느끼는 분들도 여전히 많이 계실 것이다. 그런 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좋은 글을 써 설득시켜서 이 문제를 함께 넘어서는 과정들이 쌓인다면 모두의 광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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