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손지연 기자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탄핵 찬반’에 대한 내부 이견이 극심한 상황이다. 오는 14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윤 대통령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의원들이 7명으로 늘어나면서 탄핵안 통과 여부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 윤석열-한동훈, ‘탄핵’ 두고 전면전 돌입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2일 사실상 탄핵 찬성을 시사한 직후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가 연이어 시작됐다. 국민의힘은 당초 이날 오전 새로운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가 예정돼 있었으나 대통령 담화로 잠시 뒤로 미뤄졌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한 대표의 긴급 기자회견과 윤 대통령의 담화 모두 예상하지 못해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대표는 이날 오전 9시 30분경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당 대표로서 제 뜻을 말씀드린다”며 “대통령은 군 통수권을 비롯한 국정 운영에서 즉각 배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위헌‧위법’한 비상 계엄 선포 이후 탄핵 없이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죄송하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당내 ‘정국 안정 TF’를 신설해 윤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 계획을 구상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상황은 오히려 악화됐다. 헌법에 의한 직무정지가 아니라 말뿐인 조치로 사실상 ‘위법’이라는 지적도 나왔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전날(11일)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내란죄로 구속될 때 구속 영장에 윤 대통령이 ‘공범’으로 적시된 사실을 짚었다. 그러면서 “사안의 심각성이 시간이 갈수록 더 확인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최근 대통령이 우리 당의 요구와 본인의 일임에 따라 논의 중인 ‘조기 퇴진’에 응할 생각 없다는 걸 확인했다”며 “이건 임기 등 문제를 당에 일임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어긴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보수정당의 혼란으로 인한 피해를 이미 겪었기 때문에 ‘탄핵에 대한 당내 우려가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탄핵보다는 ‘질서 있는 조기 퇴진’에 중점을 두고 이번 사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으나 윤 대통령이 퇴진 의사가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이제는 탄핵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오는 14일 예정된 윤 대통령의 2차 탄핵소추안 표결에 참석해 ‘탄핵 찬성’에 힘을 실어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한 대표는 이날 오전 9시 25분경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대통령실은 한 대표의 기자회견이 시작된 직후 ‘대통령 담화 영상을 제공할 것’이라고 방송사들에 안내했다. 한 대표는 기자회견 중 ‘대통령이 잠시후 담화를 발표하는 데 사전 논의된 것이냐’는 물음에 “그 담화에 대해 저희 당은 전혀 들은 바가 없다”고 답했다.
◇ 국민의힘, 탄핵 정국 속 내분 격화
당초 국민의힘은 이날 오전 10시 새로운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사전에 예고되지 않은 대통령의 ‘28분 담화’로 인해 회의가 시작되지 못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의원총회장에 앉아 각자 핸드폰을 들고 대통령 담화를 시청했다.
원내대표 후보로 나선 친윤계 권성동 의원은 의원총회장으로 들어서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맞이하기 위해 서 있다가 예상치 못한 대통령 담화에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야”라고 했다. 또 다른 원내대표 후보인 김태호 의원은 “담화를 지금 오늘 중요한 날에 (하냐) 원내대표 선거를 잠식하네”라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권 의원은 “당 대표도 하고 대통령도 하고 뭔 내용인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의 담화 직후 의원총회가 시작됐으나 분위기는 더 악화됐다. 친윤계 의원들과 한 대표가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한 대표는 대통령의 담화 내용이 “사실상 내란을 자백하는 취지의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친윤계 의원들은 분개하며 사퇴하라는 등 고성과 삿대질로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대통령실 출신인 강명구 의원은 “무엇을 자백했다는 말씀이냐”고 언성을 높였다. 한 대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정치인들을 체포하기 위한 의도로 (비상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얘기를 했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윤 대통령을 제명 또는 출당시키기 위한 긴급 윤리위원회 소집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친윤계 이철규 의원은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지 않았음에도 (한 대표가) 내란죄로 단정 짓고 발언하는 것이 서두른 감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대표의 말씀은 당의 이야기가 된다”며 개인 자격이 아닌 당 대표의 위치로 발언하는 것임을 꼬집었다.
하지만 한 대표는 “민주주의 관점에서 용납하지 못할 만한 대통령 담화가 나왔기 때문에 대통령의 직무를 조속히, 합법적으로 정지시키는 데 우리 당이 나서야 한다는 말씀을 당 대표로서 드린다“고 맞받아쳤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당내 중진이자 친윤계인 권성동 의원에게 손을 들어줬다. 원내대표 선거 결과 106표 중 기호 1번인 김태호 의원은 34표를 받았고 기호 2번인 권성동 의원은 72표를 받아 과반수 득표로 당선됐다. 탄핵 정국에서 친윤계 지도부에 주도권이 주어진 것이다.
◇ 친한계, ‘탄핵 찬성’에 고심
윤 대통령 탄핵에 대한 친한계 의원들의 고심이 더욱 깊어진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담화에서 계엄 선포 이유로 ‘부정선거’를 강조하며 ”비상계엄이 어떻게 내란이냐“, “탄핵이든 수사든 맞서겠다”는 등의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또 윤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권 의원이 원내대표로 당선이 되면서 분위기가 더욱 뒤숭숭해 졌다.
친한계 진종오 최고위원은 이날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이번 주 토요일 국회에서 진행될 탄핵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지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3일 대통령의 느닷없는 계엄령 선포와 무장 군인들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로 난입하던 광경은 엄청난 충격이었다”며 고민 끝에 “이번 계엄 사태가 저와 제가 속한 국민의힘의 가치와 철학을 명백히 훼손한 것임을 분명히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친한계인 한지아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대통령의 거취는 본인이 선택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선택해야 하는 것이고, 국민의 선택에 우리 당도 따라야 한다”며 “이번 주 토요일 표결에 반드시 참여해서 바로잡겠다”고 했다. 사실상 탄핵 찬성을 시사한 셈이다.
이날 진 최고위원과 한 의원이 ‘탄핵 찬성’을 공식화하면서 현재 탄핵 찬성 의사를 밝힌 여당 의원이 7명으로 늘어났다. 권 신임 원내대표는 아직까지 “당론은 ‘탄핵 반대’”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탄핵 가부는 친한계가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가결까지는 1표가 남은 상황이다. 친한계 박정하, 박정훈, 배현진 의원 등이 찬반 여부는 결정하지 않았지만 표결에는 참석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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