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후폭풍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하 양곡법 개정안) 시행 가능성이 커졌다. 이 개정안의 골자는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고 평년보다 쌀 가격이 떨어지면 정부가 차액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미 윤석열 대통령은 “전형적이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두 차례에 걸쳐 양곡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탄핵 정국으로 이번엔 거부권 행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양곡법 개정안을 포함한 ‘농업 4법’은 지난 6일 정부에 이송된 상태다. 앞서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양곡법 개정안과 나머지 농업 3법 개정안(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어업 재해보험법·농어업 재해대책법) 등이 통과했다. 정부가 오는 21일까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해당 법안은 공포 6개월 후 시행된다.
양곡법 개정안은 과잉 생산돼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고 시장 가격이 평년 수준을 밑돌면 정부가 차액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쌀 생산자의 생계 보장을 강화한다는 게 핵심 취지다. 해당 법이 시행되면 2030년 기준 약 1조4000억원의 추가 재정이 필요할 것으로 예고됐다. 앞서 민주당은 제21대 국회에서 이 같은 내용이 골자인 양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다. 이후 제22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양곡법 개정안을 농업 3법과 함께 국회 본회의에서 재차 통과시켰다.
정부는 양곡법 개정안을 포함한 농업 4법이 시행돼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농가들이 다른 작물보다 쌀 농사에 몰려 쌀 공급 과잉 현상을 부추길 뿐 아니라 정부 재정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달 25일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농업 4법에 대해 “우리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법”이라며 ‘농망(農亡)법’이라고 표현했다. 이후 해당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지난 2일 송 장관은 “윤 대통령께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것”이라며 해당 법안에 따른 예산을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3일)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면서 농업 4법 시행을 막을 최후의 보루였던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거부권 행사가 어렵다고 전망하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이 지난 7일 국정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입장을 밝힌 만큼, 현재 상황에서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건 ‘적극적 국정 개입’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오는 14일 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돼 한덕수 국무총리 등이 권한대행으로 국정을 운영하더라도 한 총리가 해당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지도 미지수다. 민주당이 정국 주도권을 잡은 상황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1호 민생 법안인 양곡법 개정안 등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정치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때 고건 총리 거부권 행사 사례 있었지만…
다만 거부권 행사 가능성은 열려 있다. 통상 권한대행 체제에서는 소극적 권한 행사를 해야 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지만, 헌법상 권한대행 체제에서 거부권 행사가 위헌인 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소추될 당시 고건 국무총리가 사면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차진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가 위헌은 아니지만, 통상 현상 유지를 위한 권한만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는 오는 17일 국무회의에서 양곡법 개정안을 포함한 농업 4법에 대한 재의요구권을 안건으로 올려 심의할 예정이다. 현행법상 정부로 이송된 법안에 이의가 있다면 15일 이내에 재의를 요구하도록 규정한 만큼, 지난 6일 이송된 양곡법 개정안 등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한은 오는 21일까지다. 농식품부는 늦어도 내주 주 초까지 관련 입장을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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