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10개월간 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내년 신규 전공의 지원율이 한 자릿수에 머무르면서 의료현장 운영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전공의 모집 미달 사태는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포고령에서 ‘전공의 처단’을 언급한 것이 의료계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114개 수련병원 내년 상반기 전공의 레지던트 1년 차 모집에 314명이 지원했다. 앞서 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3594명을 선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지만 지원률은 8.7%에 그쳤다.
올해 하반기에 이어 내년 상반기 전공의 지원자가 적은 데에는 장기간 진행돼 온 의정갈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전공의들은 지난 2월 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병원을 떠나 장기간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원점 재검토’ 등을 주장하며 정부와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6일 기준 211개 수련병원 전공의 1만3531명 중 8.7%만 출근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 더해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전공의들이 복귀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선포 당시 발표된 계엄사령부 포고령에는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 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해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포고령에 언론과 출판을 제외하고 특정 직역의 지침이 명시된 것은 의료계가 유일하다. 이 같은 포고령이 공개되자 의료계는 거센 반발에 나섰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참여 중인 대한병원협회 등 단체들은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당시 대한병원협회는 윤 대통령이 사실을 왜곡했을 뿐 아니라 전공의를 마치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 처단하겠다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당사자인 전공의들의 규탄 목소리는 더욱 컸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 5일 시국선언문을 통해 “이번 계엄은 조악한 정책 추진과 위헌적 폭압을 일삼아온 독재의 반복이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짓밟고 있다”며 “일방적으로 의료 정책을 강요했고 업무개시명령을 휘두르며 거역하는 자는 굴복시키려 했다. 전공의는 병원을 그만뒀고 학생은 학교를 떠났다”고 비판했다.
의료계 반발과 비상계엄으로 인한 혼란스러운 정국이 겹치면서 이달 말로 예정된 비급여와 실손보험 개선 방안 등 발표도 연기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처럼 내년 의사 인력 부족은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통상 전국 병원은 레지던트 1년 차 모집 총정원 3300명대 수준에 2700명 규모로 매년 선발해 왔지만 이번 모집에서는 대규모 미달이 난 셈이다.
올해 8월 말 집계 기준 사직 전공의는 1만1732명이었는데, 여기에 대학병원 등 의료진의 사직이 이어지고 있어 인력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심지어 병원에 남아 있던 기존 인력들마저도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의료계에서는 의정갈등의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 정부가 당장 내년도 의대 모집부터 전면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대생과 대한의사협회 등은 이날 ‘정부의 의료농단 저지 및 의료 정상화를 위한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제4차 회의 관련 브리핑문을 내고 “윤 대통령의 계엄농단을 통해 온 국민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역시 독단, 강압적으로 진행됐음 알게 됐다”며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이 이대로 증원된다면 의학교육 현장은 향후 10년 이상 부작용에 시달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같은 의료계 혼란에 정부는 12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통해 “최근 어려운 상황으로 의료개혁 방안 논의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논의를 진전시켜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마감된 레지던트 1년 차 모집 지원율이 저조한 것에 대해 보건복지부 박민수 차관은 지난 9일 “정부는 비상진료체계를 차질 없이 운영하면서 전공의 복귀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의료계와 열린 자세로 협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대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이주열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정국이 불안정하고 향후 정치 판도가 어떻게 결정될지 모르기 때문에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의 모든 기능은 최소한으로 축소될 것”이라며 “의료개혁특별위원회 기능 역시 정지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의료개혁에 대한 동력을 상실해 당초 정부 계획대로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며 “현재 의료계가 모든 대화를 거부한 상태이며 전공의 모집도 예상과 달리 지원자자가 거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무척 난감한 상황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의료계와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 이후에 새로운 집행부가 구성돼야 대화 시도가 다시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여러 의료계 단체와 협의하지 않은 채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추진하는 정책들은 잠시 멈춰야 한다”고 짚었다.
한편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이날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비상계엄 관련 현직 국무위원이 조사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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