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국회 표결을 이틀 앞두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를 통해 향후 예상되는 법리공방을 대비하고 지지층을 결집하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더 자극하면서 민심과 괴리된 대통령 본인의 인식만 드러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탄핵하든, 수사하든 이에 당당히 맞설 것”이라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이날 담화는 지난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4일 비상계엄 해제 담화, 7일 대국민 사과 담화에 이은 세 번째 공개행보다. 윤 대통령은 지난 담화와 달리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와 자신을 둘러싼 위헌·위법적 혐의에 대한 견해를 상세히 설명하는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 대통령은 이번 담화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판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그는 “거대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괴물이 됐다”라며 “이것이 국정 마비요, 국가 위기 상황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선관위 전산시스템의 허술함을 거론하며 “국방장관에게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이는 12.3 비상계엄의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헌법 제77조 제1항과 계엄법 제2조 2항은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조건을 규정하고 있다.
헌법과 계엄법에 따라 12.3 비상계엄이 합법적인 조치가 되려면 당시 상황이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돼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곤란한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였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이를 입증해야 하는 윤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민주당이 “국정 마비와 국헌 문란을 벌이는 세력”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윤 대통령은 이번 담화에서 12.3 비상계엄이 “국회를 해산시키거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것이 아니다”라고도 강변했다. 이 역시 비상계엄 선포의 합법성을 지키려는 의도로 읽힌다. 헌법과 계엄법은 대통령에게 정치활동을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에 대해 스스로 “대통령의 법적 권한으로 행사한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나라를 살리려는 비상조치를 나라를 망치려는 내란 행위로 보는 것은 여러 헌법학자와 법률가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우리 헌법과 법체계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법조계는 12.3 비상계엄을 ‘위헌·위법적 조치’라 보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7일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로 국헌을 문란케 한 대통령에 대해 탄핵에 찬성한다”고 입장을 발표했다. 이어 “탄핵 표결의 결과와 상관없이 대통령의 내란죄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 임명절차에 적극적으로 임할 계획”이라며 내란죄 입증에 대한 의욕도 보였다.
헌법·행정법 학자 131명도 같은날 시국선언을 통해 12.3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지적했다. 이들은 “헌법이 계엄이라는 비상조치를 통제할 최후의 보루로 설정한 국회에게 통고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킬 목적으로 경찰을 동원해 국회를 봉쇄하고 무장병력을 국회에 난입시켰다”라며 “위헌·위법의 불법행위이며 나아가 국헌문란과 폭동을 구성해 내란죄의 혐의마저 야기하는 폭거”라고 비판했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성향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법률가들이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헌법이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있다”라며 “선관위 전산시스템에 대한 의혹도 비상계엄의 불가피한 사유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외교 행위 등 대외적인 행위 외에 국내적인 활동을 통치행위로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대법원에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죄를 인정하는 판례도 있지 않냐”고 짚었다.
장 교수는 “이제 법리 논쟁을 시작한 것”이라며 “비상계엄이 국회를 무력화하고 국헌 문란의 목적이 있었는지는 앞으로 더 밝혀야 할 부분”이라고 내다봤다. 12.3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과 별개로 내란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사정기관의 수사를 통해 드러나는 사실에 달렸다는 설명이다.
지지층 결집하려다 탄핵 여론에 기름 부었나
윤 대통령의 12일 대국민 담화는 탄핵 표결을 앞두고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를 기대하는 면도 엿보인다. 민주당에 대한 경계심을 자극해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탄핵 찬성으로 이탈하려는 의원들의 움직임을 최대한 막으려는 의도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같은날 국회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조기 퇴진에 응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라며 “임기 등의 문제를 당에 일임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어겼다”고 지적했다. 그는 “탄핵에 찬성하는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며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지난 7일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안 표결이 무산된 이후, 속속 탄핵 찬성 입장을 밝히는 의원들이 늘고 있다. 한 대표도 탄핵 찬성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14일 본회의 표결에서는 국민의힘 의원들 중 8명 이상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범야권이 192석을 확보하고 있기에 국민의힘에서 8표 이상 찬성표가 나오면 대통령 탄핵안 통과가 유력한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친윤’으로 분류되는 권성동 의원을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권 원내대표는 선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의총을 열어 당론에 대해 총의를 모아보겠다”라며 “중요사안에 대해서는 단일대오로 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여론조사기관의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10%대 수준이며 탄핵 반대는 20%대를 기록하고 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탄핵 반대 여론이 사실상 핵심 지지층이라는 점에서 대통령 탄핵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에 대해 최요한 시사평론가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날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매우 극우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소수이지만 자신을 지지하는 극우를 결집하려는 의도가 보인다”라며 “2차 내란을 꾀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오늘 대국민 담화가 있다고 해서 하야할거라 예상했는데 생중계를 보면서 절망했다”고 실망감을 보였다.
그는 “탄핵 찬성 여론이 70~80%에 달하는데 이런 메시지를 낸 것은 국민과 맞서겠다는 행보”라며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안이 통과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서 뒤집기를 기대하는 것 같은데 가능하겠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한 담화였으며 탄핵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고 촌평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두고 냉소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대국민 담화가 아니라 국민의힘과 헌법재판관들을 향한 변명문에 불과하다”라며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번 담화에 휘둘리지 말고 탄핵안 표결에 참여해 진정으로 국민의 뜻을 받들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 대해 “말이 필요 없다. 범죄자의 망언에 불과하다”라고 일축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역시 같은날 “이런 대통령이 배출된 것 자체가 대한민국 공교육의 수치”라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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