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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공정 1년 뒤 간이 녹은 실습생…회사는 보도한 기자 형사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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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과 김용균재단, 건강한노동세상,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셜록 등 41개 노동·안전보건·언론 단체들은 11일 인천 영종도에 있는 스태츠칩팩코리아 정문 앞에서 ‘독성 간 질환 산업재해 은폐, 진실보도 탄압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김연정 기자가 11일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과 김용균재단, 건강한노동세상,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셜록 등 41개 노동·안전보건·언론 단체들은 11일 인천 영종도에 있는 스태츠칩팩코리아 정문 앞에서 ‘독성 간 질환 산업재해 은폐, 진실보도 탄압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김연정 기자가 11일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글로벌 3위 반도체 후공정기업’으로 알려진 스태츠칩팩코리아가 자사에서 일한 지 1년 만에 간이 녹아내렸다며 산업재해 승인을 구하는 현장실습생의 다툼을 보도한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를 형사 고소했다. 사측이 산재 심사 과정에서 노동자에게 근로계약서 등 서류를 제공하지 않다가 회사 대응을 비판하는 보도에 기자 개인을 상대로 형사고소한 것을 두고 노동안전·보건계 비판이 나온다.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과 김용균재단, 건강한노동세상,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셜록 등 41개 노동·안전보건·언론 단체들은 11일 인천 영종도에 있는 스태츠칩팩코리아 정문 앞에서 ‘독성 간 질환 산업재해 은폐, 진실보도 탄압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산재 은폐와 진실보도 탄압으로 2차 가해하는 회사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세계 반도체 패키징 시장 3위인 중국계 업체 JCET의 한국 자회사다.

2002년생 김선우(가명)씨는 18세였던 지난 2020년 10월 현장실습생으로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했다. 근무 1년 만인 이듬해 10월 멍이 들고 코피가 멎지 않으며 구토·졸림 등 이상 증상이 생겼다. 두 달 뒤인 12월엔 급성간염을 동반한 독성 간질환, 무형성 빈혈 진단을 받았고, 급성 간부전과 간성혼수 상태에 빠졌다. 

반올림과 김씨 측, 셜록에 따르면 그는 반도체 칩에 전자기판을 부착하는 ‘칩 어태치’ 공정에서 일했다. 야간근무를 포함해 6일 일하고, 이틀 쉬는 4조3교대 근무였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주문형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일주일 단위로 다루는 칩의 종류가 바뀔 때마다 사용하는 화학물질도 바뀌었다. 반올림에 따르면 현장에서 취급한 화학물질엔 ‘간 독성 물질’이 든 솔더페이스트와 플럭스도 포함됐다. 그러나 김씨는 신체 보호장구를 따로 지급받지 않고 얇은 시판용 덴탈마스크와 비닐장갑을 지급 받았다고 말한다.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김선우씨에게 지급했던 한 겹짜리 덴탈마스크. 김씨는 이를 쓰지 않고 KF94 마스크를 구해 사용해 그의 집에는 회사가 지급한 덴탈마스크가 쌓여있다고 한다. 사진=김예리 기자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김선우씨에게 지급했던 한 겹짜리 덴탈마스크. 김씨는 이를 쓰지 않고 KF94 마스크를 구해 사용해 그의 집에는 회사가 지급한 덴탈마스크가 쌓여있다고 한다. 사진=김예리 기자

반올림은 “현장은 화학물질의 역한 냄새가 났다. 특히 세정실에는 아세톤 냄새가 코를 찔렀다. 블레이드(칼날)를 세척할 때 아세톤을 사용했고, 이소프로필알코올은 걸레에 흠뻑 적셔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종란 반올림 노무사는 “장갑이 찢어지면 맨손이 용액으로 흠뻑 젖었고, 손의 껍질이 벗겨졌다”며 “이는 아세톤에 손을 담글 때 증상”이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김씨가 쓴 블레이드 세척액이 ‘물’이었다고 주장한다.

김씨는 올 1월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수술 전담의는 당시 “간이 완전히 녹아내려 형체가 없었다”며 “조직검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손상됐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의 주치의는 “급성 간염을 동반한 독성 간 질환은 작업장에서 노출된 미상의 세척용제에 의한 가능성이 높다”는 소견서를 작성했다.

김씨는 2022년 9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으나, 1년 8개월 만인 지난 5월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8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 불승인 처분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에 나섰다. 김씨는 회사에 산재신청에 필요한 근로계약서와 급여명세서, 작업환경과 유해요인 등 자료를 요청했지만 회사는 모두 거부했다고 한다. 이에 김씨 측은 산재 불승인 뒤에야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공단 측에 제출된 회사 자료를 일부나마 받아볼 수 있었다고 했다.

셜록은 지난 9~10월 이 같은 김씨의 이야기를 연재 기사로 보도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의 반론 입장도 포함한 보도였다. 이후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셜록을 제소하면서 기사 삭제를 요구했다. 언중위 중재부가 11월 추가 반론보도를 권고했고 셜록 측이 수용했으나, 스태츠칩팩코리아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측은 김 기자를 ‘허위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했다.

 [ 관련 기사 : 셜록 / 반도체 공장 취업한 고교생, 1년 만에 간이 녹았다 ]

김연정 기자는 이날 발언에서 “기자의 입을 틀어막는 회사에 묻고 싶다. 김씨가 이곳에서 일하다 아팠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나”라며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지금까지도 전국에 있는 직업계고등학교와 협력하고 있다. 한 해 수백 명의 고등학생들이 입사한다. 여기에 선우 씨 사례를 모르고 입사했다가 나중에 알게 된다면, 노동자들에게 더 큰 배신감이 들지 않겠나”라고 되물었다.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한 김선우씨의 아버지가 11일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한 김선우씨의 아버지가 11일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선우 씨의 아버지 김아무개 씨는 “모든 상황은 아들이 회사에서 일했던 작업 환경과 관련이 깊다. 그런데도 회사는 아들의 생활태도와 음주, 그것도 주 1회 소주 1~2병으로 인한 문제가 아니냐며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진실보도를 한 기자를 고소까지 했다. 저희 아들이 겪은 일이 모두 가짜라고 말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고 했다. 그러면서 “회사 측에 산업재해 피해에 대한 인정과 진심어린 사과, 정당한 보상, 예방조치를 요구한다”고 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엔 스태츠칩팩코리아 측 직원 6~7명 정도가 경찰차를 대동하고 나와 회견을 촬영하거나 지켜봤다. 일부 직원은 회견장 앞에 모여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보도에 대한 법적 조치 가능성을 언급하는 회사 측 입장문을 직접 건넸다. 복수의 기자는 미디어오늘에 ‘기자회견 현장에 나와 이런 입장문을 받은 건 처음’이라고 전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 측은 입장문에서 “김씨의 간 질환은 업무환경과 인과관계가 없고, 이는 근로복지공단의 면밀한 역학조사 결과 명확히 확인된 사실”이라며 “역학조사 당시 김씨가 접촉했던 세척물질이 물에 불과하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했다. 이어 “공정이 운영된 20여년간 동일하거나 유사한 질환이 발병한 전례가 없고, 그와 함께 근무한 100여명의 직원도 발병한 적이 없다”고 했다. 사측은 “회사명이 직간접적으로 노출되거나 사실과 다른 보도로 인해 당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회사 주장은 김씨와 동료 증언과 정면 배치된다. 김씨와 함께 일했던 동료는 반올림을 통해 아세톤을 분명히 사용했다고 밝혔다. 또 ‘세정실 문을 열면 소주병에 코를 박은 것처럼 냄새가 콱 올라왔다’고도 했다. 이종란 노무사는 이 같은 상황을 두고 “너무나 억울한 것은 회사가 영업비밀을 이유로 사용하는 유해물질을 알려주지 않는 상황이라는 점, 또 거짓말을 해도 노동자들은 반도체 생산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갈 수 없어 경험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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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츠칩팩코리아 홍보 담당자는 11일 통화에서 보도에 대해 기자 개인을 형사고소하는 것이 보복성 조치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발병 원인이 유해환경 때문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김씨의 일방적 얘기만 듣고 작성한 부분이 있다”며 “법에 따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이지 보복성이 아니다”라고 했다. 회사 실명 노출에 대한 법적 조치를 언급한 부분에는 “회사 이름이 노출되면 어떤 행위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잘못된 내용으로 보도가 나오는 것을 사전에 바로잡고자 한 것”이라고 했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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