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그 직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으로 시민들이 모여 ‘계엄 해제’를 촉구했다. 일부 시민들은 국회로 진입하려는 계엄군을 막아서기도 했다. 이때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은 1만6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서울시는 KT와 협업해 매일 1시간 단위로 서울 각 지역에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지 집계해 ‘생활인구’를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KT의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휴대전화를 켜 두는 사람 비율 등을 감안해 생활인구를 추정한다.
이 생활인구를 이용하면 특정 사건이 있을 때 모인 인원을 대략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3일 늦은 밤과 4일 새벽 생활인구에서 11월 같은 요일 같은 시간대 생활인구를 빼면 계엄 해제를 요구하려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이 몇 명인지 추산 가능하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지난 3일 오후 10시23분 선포했다. 계엄사령관 명의 포고령은 오후 11시를 기해 전국에 발령됐다.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된 것은 4일 오전 1시1분이다. 국무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안이 의결된 것은 오전 4시30분이다.
11월의 화요일 생활인구는 밤이 깊어지면 직장인들이 귀가를 마쳐 줄어들고, 수요일 오전 7~8시에 직장인들이 출근하면서 큰 폭으로 늘어난다. 계엄이 선포되기 전인 3일 오후 10시 여의도 생활인구는 6만5269명으로 11월 4번의 화요일 오후 10시 평균(6만5142명)과 큰 차이가 없다.
여의도 생활인구는 3일 오후 11시에도 줄었다. 그러나 4일 0시에는 6만7945명으로 늘었고,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을 가결하기 직전인 오전 1시에는 6만9979명을 기록했다. 11월 화요일 오전 1시 평균(5만3469명)보다 1만6511명 많다.
다만 1만6000여 명이 모두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시위대는 아니다. 당시 국회로 뛰어온 국회의원과 정당 보좌진, 시위대를 막은 경찰, 취재진도 모두 포함된 숫자다. 다만 당시 벌어진 시위 규모를 보면 국회 앞에 1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인 것으로 보인다.
3일 늦은 밤 시민들은 지하철이나 버스, 택시를 타고 국회 앞으로 급하게 모였다. 승용차를 타고 온 시민들은 길 위 아무 곳에나 차를 세워 두고 국회 앞으로 뛰어가기도 했다. 당시 국회 정면 왕복 10차로 국회대로는 시민들로 가득 차 차량이 통행할 수 없었고, 늦게 도착한 시민들은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출구가 있는 의사당대로에서도 시위를 벌였다.
4일 낮 시간대 여의도 생활인구도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직장인들이 출근을 마쳤을 오전 10시 생활인구는 17만7911명으로, 11월 화요일 오전 10시 평균(18만6095명)보다 8994명 적다. 간밤에 벌어진 시위로 일부 직장인들이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댓글1
정신나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