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육사출신 군내 사조직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번 비상계엄 역시 육사출신 지휘관들이 주도하면서 군 개혁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사정기관들의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한 대응이 속도를 내는 가운데, 계엄군 지휘부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보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육사 38기)을 중심으로 한 군 내부의 ‘충암파’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충암파는 김 전 국방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의 모교인 충암고등학교 출신인 점에서 나온 이름으로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육사 48기) 역시 충암고 출신의 충암파로 지목되고 있다. 김 전 국방장관은 윤 대통령의 고교 1년 선배이고 여 방첩사령관은 윤 대통령의 고교 9년 후배다.
검찰은 지난 9일 김 전 국방장관에 대해 내란 및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해당 구속영장에서 김 전 장관이 윤 대통령, 여 방첩사령관 등과 공모해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혐의가 있다고 적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특수본은 10일 여 방첩사령관도 소환해 조사 중이다.
앞서 충암파는 지난 8월 당시 대통령 경호처장이던 김 전 장관이 국방장관으로 지명되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국방장관이 신원식 전 장관에서 김 전 장관으로 교체되자 김 전 장관의 충암파가 신 전 장관의 국방파를 제압했다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 등은 김 전 장관이 국방장관에 지명되자 “윤 대통령이 계엄을 준비하는 것 아니냐”고 계엄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 김 전 장관은 지난 3일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건의했으며 여 방첩사령관은 비상계엄 당시 병력을 서울 여의도 국회와 경기도 과천시에 위치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출동시킨 바 있다.
공교롭게도 계엄군 지휘부 역시 충암파를 중심으로 한 육사출신으로 구성됐다. 계엄사령관은 군 서열 1위인 김명수 합참의장 대신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육사 46기)이 임명됐으며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육사 47기)과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육사 48기)는 휘하 병력을 계엄군으로 동원했다. 이에 김 합참의장은 해군 출신이라 계엄군 지휘부에서 제외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 세 명의 장성들은 김 전 장관과 함께 비상계엄을 실행에 옮긴 ‘육사 4인방’으로 불리고 있다. 이외에 비상계엄에 관련된 군 지휘관 대다수가 육사출신인 상황이다.
동국대학교 행정학과 주창범 교수는 “군 지휘부는 계급이 오를수록 보직도 줄어든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상당수 고위 보직이 육사 출신에게 돌아가는 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주 교수는 “우리 육사가 벤치마킹한 곳이 미국 육사인데 미군은 비육사에게도 고위 보직이 열려있다. 보다 경쟁적인 구조”라면서 “우리는 과거부터 육사출신이 승진에 유리하고 고위 보직도 상대적으로 육사출신에 열려있다”고 지적했다.
이렇다보니 육사출신을 중심으로 엘리트의식 혹은 특권의식이 자리하게 되고 사조직이 생겨나는 바탕이 된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육사출신 군내 사조직은 1961년 5.16 군사정변, 1979년 12.12군사반란 등의 단초가 된 바 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하나회가 숙청되면서 군내 사조직에 대한 우려는 점차 완화됐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에는 ‘알자회’가 거론되는 등 그 그림자를 완전히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알자회 역시 육사출신을 구성원으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일 이번 비상계엄 사태가 사정기관의 수사를 통해 내란으로 드러나면 육사를 통한 장교양성 시스템과 육사출신에 수혜가 집중된 인사 관행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동안 군 내부에서 암암리에 만연해 있는 ‘육사 순혈주의’가 거센 도전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국방부는 계엄군을 이끈 특수전사령관, 수도방위사령관, 방첩사령관의 직무를 정지했으며 육사 출신이 맡았던 이 3자리 중 2자리(특전사령관, 수방사령관)에 비육사 출신을 직무대리로 발령했다. 특히 김호복 수방사령관 직무대리(3사 27기)는 1980년 12.12군사반란 때 신군부에 저항한 장태완 전 수경사령관 이후 44년 만에 나온 비육사 출신 수방사령관이다.
군 내부에서 여전히 민주화에 대한 의식이 낮은 점도 문제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지난 8일 공개한 계엄사령부의 ‘계엄사-합수본부 운영 참고 자료’를 보면 제주4.3은 ‘제주폭동’으로 부마민주항쟁은 ‘부산소요사태’라고 표기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해당 문건은 여 방첩사령관의 지시로 방첩사 비서실이 작성해 지난달 사령관에게 보고됐다. 이에 제주 4.3기념사업위원회는 9일 성명에서 “여전히 대한민국의 군부가 제주4.3을 비롯해 한국 현대사를 얼마나 편향되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는 “지휘관들이 위헌·위법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러다보니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라며 “군인도 민주시민의 일원으로서 교육 체계가 제대로 확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육해공으로 나눠져 있는 사관학교의 통합 등도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정 대표는 군형법 등에서 부당한 명령은 거부해야 하는 의무를 규정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현재 군형법 제44조(항명)는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사람은 처벌한다’고 명시돼 있다. 즉, 명령이 부당하다면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아도 처벌할 수 없다.
정 대표는 “군인으로서 무엇이 부당한지, 무엇이 위법한지 사전에 교육 체계를 통해 인식을 해야 한다”라며 “또, 군형법은 부당하고 위법한 명령을 거부하는 것을 군인의 의무로 정해 부당하고 위법한 명령에 의해 군인이 불이익을 당하거나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구체적인 조항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에선 지난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촉발된 시위에 군을 투입하고자 했다. 그러나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등 군 지휘부가 공개적으로 반대해 막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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