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산안 대비 4조1000억원을 삭감한 내년도 예산안이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부안에서 감액 심사만 반영된 예산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건 헌정사상 최초다. 앞서 우원식 국회의장 중재에 따라 여야와 정부가 ‘이재명표’ 예산 등 증액을 추가 협상했지만,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12월2일)을 넘긴 이날까지 접점을 찾지 못한 결과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어 673조3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표결에 부쳤다. 투표 결과, 재석 278명 중 찬성 183명, 반대 94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정부안 대비 총액은 줄었지만, 올해 예산안(656조6000억원)보다 2.5%(16조7000억원) 증가한 규모다.
이날 국회를 통과한 감액 예산안은 ▲기존에 4조8000억 규모였던 정부 예비비를 2조4000억원으로 줄이고 ▲국고채 이자 상환 예산은 5000억원 ▲검찰 소관 특정업무경비는 507억원 ▲검찰 특수활동비는 80억원씩 각각 감액됐다.
내년도 총수입은 올해(612조2000억원) 대비 6.4%(39조3000억원) 증가한 651조6000억원으로 짜였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제외한 통합재정수지는 내년 21조7000억원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예결위 야당 간사인 허영 민주당 의원은 “4.1조를 감액해도 정부가 제출한 총 지출의 0.6%에 불과하다”면서 “예산 집행 투명성 문제가 큰 데도 전년 대비 증액한 예비비를 감액하고, 정부의 자료 부실로 타당성 및 적정성 담보를 못한 검찰 특경비도 삭감한 것”이라고 했다.
반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의 예산안을 독단적으로 삭감해 대체 어떤 효과를 기대하느냐”며 “예결소위와 간사가 순조롭게 협의해온 예산안을 민주당이 막판에 일방 삭감해버렸다”고 했다.
◇계엄·탄핵 사태에 與野 증액 협상 ‘올스톱’
통상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 대해 감액 심사를 먼저 한 뒤, 증액 심사를 진행한다. 감액과 달리, 증액 시에는 정부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예결위 심사 과정에선 증액 관련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비상계엄 선포’ 사태로 여야 협상이 사실상 멈췄다. 앞서 국민의힘은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본회의 표결에 단체로 불참했다.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만 ‘탄핵 반대’ 당론을 어기고 표결에 참여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통령 권한 공동 대행’을 자처해 위헌 논란에 휩싸였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탄핵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 예산 추가 협상도 없다는 방침을 세웠다. 대통령실 사업 예산 7000억원 추가 삭감도 검토했지만, 여론을 의식해 추가 감액안은 반영하지 않았다. 우 의장은 전날 최상목 경제부총리 면담에서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예산안 논의가 불가능해졌는데, 마치 국회 책임인 것처럼 기재부가 주장하는 것은 매우 잘못”이라고 했다.
◇‘이재명 예산’ 등 3.4조 증액 제안에도… 협상 결렬
한편 국민의힘은 이날 본회의를 앞두고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포함해 3조4000억원 규모의 증액을 민주당에 제안했다. 이른바 ‘이재명표’ 예산으로, 지난 총선 때 민주당 공약이었다. 구체적으로 여당은 3000억원, 기획재정부는 4000억원 증액을 전제로 협상을 요청했다. 여기에는 ▲정부 예비비 1조5000억원 ▲대왕고래 유전개발 및 민생 침해 수사 예산 등 1000억원 등도 포함됐다.
이에 민주당은 지역화폐 예산 ‘1조원 증액’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민주당 요구가 너무 과해 정부가 수용하지 못했다”고 했다. 반면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감액 예산을 복원하려면 그 규모에 맞게 민생 예산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며 “기재부와 여당이 수용하지 않아 협상이 결렬된 것”이라고 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