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퍼블릭=이유정 기자] 내년 3월 수련을 시작할 전공의 모집이 끝났지만 지원자가 대폭 줄어들며 의료계에 비상이 걸렸다. 전공의들이 선호하는 서울 ‘빅5’ 병원마저 지원자가 10명 안팎에 머물렀고,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등 필수 의료 과목은 사실상 전멸했다.
의대 정원 증원 갈등 이후 서울 주요 병원들도 인력을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내년 상반기 전공의 모집이 사실상 실패하며 의료 인력난이 가시화되고 있다.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 수련을 시작할 전공의 모집이 9일 마감됐지만, 서울 ‘빅5’ 병원을 포함한 주요 수련병원들의 지원율이 심각하게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176개 수련병원에서 모집한 레지던트 1년 차 3594명 정원에 비해 지원자가 대부분 한 자릿수에 그쳤으며, 의사 인력난이 내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올해 빅5 병원 전체 전공의 수는 238명으로, 불과 2년 전인 2022년 2437명에서 10분의 1로 급감했다.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대표적 대형 병원에서 전공의 비율은 예전 40% 안팎에서 5% 내외로 떨어졌다.
특히 필수 의료 분야의 상황이 심각하다.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은 지원자가 전무하거나 극소수에 불과한 상태다. 반면 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등 인기과목은 비교적 높은 지원율을 보였지만 전체적으로 지원 부족 현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모집 결과는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이후 예상된 일이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전공의 부족 사태의 배경에는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2월 정부가 발표한 의대 정원 증원 정책 이후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발생했으며, 이들은 이후 복귀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지난 3일 발표된 비상계엄 포고령에서 ‘미복귀 전공의 처단’이라는 과격한 표현이 추가되며 의료계의 반발은 한층 격화됐다.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 집회를 열고 “헌정 질서가 확립되고 의료인의 권익이 보장될 때까지 전공의 모집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레지던트 정원 비율을 조정해 전공의들의 복귀를 유도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전공의 없는 병원?…의료 인력 단절 위기
병원 관계자들은 이번 모집 결과가 내년 상반기 이후 의료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의 한 대형 병원장은 “전공의는 미래 의료 인력 양성의 핵심인데, 이 같은 인력 단절이 초래할 후유증은 상당히 클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특히 내년 1월 진행될 인턴 모집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예상된다. 인턴 모집 정원 3356명에 대해 필기시험 응시자가 304명에 불과해 예년의 10분의 1 수준이다. 의무사관후보생 입영 대상자도 올해 약 3480명으로 예년보다 3배 이상 늘어나면서 병원들이 의사 인력 공백을 공중보건의와 군의관으로 채우는 데 의존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전공의 부족으로 인해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필수 의료와 응급의료 공백이 현실화될 경우 환자 안전과 의료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의료계가 극단적인 대립을 끝내고 대화를 통해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당장 전공의 복귀 방안을 논의하고 의료계의 신뢰 회복에 나서지 않는다면 현재의 의료 대란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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