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친소관계에 따른 조직문화’ 속에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제지 없이 지속되고, 강점으로 알려진 수평적 조직 문화가 악화했다는 진단이 내부에서 나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지부는 9일자 노보에서 ‘한겨레가 아프다’ 직장 내 괴롭힘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지부는 최근 돌봄휴직 반려 사례 이후 괴롭힘 피해 제보가 잇따르면서 지난 10월28일~11월17일 3주간 조합원 393명 대상으로 조사를 시행했고 72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을 직접 당했다’는 답변이 72명 중 29명으로 40%였다. 직접 목격했다는 응답은 42%(30명), 전해들었다는 응답은 53%(38명)였다. 들어본 적 없다는 응답은 18%(13명)였다.
57명이 밝힌 괴롭힘 사건의 유형은 폭언이나 비하 발언 피해가 30%(17명)로 가장 많고, 업무상 불이익 등 부당 처우는 21%(12명), 뒷담화·왕따 등 따돌림은 18%(10명) 순이다.
한겨레지부는 “당사자들이 말하는 괴롭힘 사건의 수위는 충격적”이라고 했다. 주관식 답변에서 자신이 겪은 일이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분명하게 인식하고도 신고를 못 했다는 ㄱ조합원은 “저만 이분한테 당한 게 아니다. (가해자가) 술에 취해 욕하는 건 기본이고, 노래방 같은 델 가려고 굉장히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며 “제가 절대 드러나지 않게 해 달라”고 했다. ㄴ조합원은 “사실 우리 조직에 주취 욕설이 하루 이틀이고, 한둘인가”라며 “정당한 업무지시 및 평가와 (부서원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대하는 것은 다른데, 그걸 구분 못 한다. 애매하게 후배들을 감정적으로 괴롭히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괴롭힘 사건은 대부분 제지 없이 넘어갔다. 괴롭힘 사건의 처리 결과를 묻는 질문에 ‘별 문제 아니다’라는 주변 반응에 참았다는 응답자가 37%(17명), 주변 만류로 신고하지 못했다는 답변이 54%(25명)로 91%는 ‘신고’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총 46명 응답). 신고한 4명 가운데 단 1명이 가해자 징계 등 최소한의 피해 회복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다수 조합원이 직장 내 괴롭힘이 지속되는 이유로 ‘가해자의 친소관계’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는 조직문화를 지목했다. ㄱ조합원은 피해를 겪고도 문제 제기를 못한 이유로 “(가해자가) 너무 무서웠다. 높은 분들과 친하다고도 하고. 무슨 (가해자가 속한) 무리 같은 게 있다고도 하더라”며 “회사가 결국은 친소관계로 움직이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ㄷ조합원은 “여기도 똑같은 문제들을 가진 한국 내 조직”이라며 “‘가해자’라는 분들은 ‘피해자’보다 연차도 높고 회사도 오래 다녔고, 친분이 있는 사람도 더 많을 것이다. 친소관계가 결국 발목을 잡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ㄴ조합원은 “(사건을) 공식으로 풀 수 있도록 회사에서 최소한 주의라도 줘야 하는데, 친분으로 (회사가) 돌아가다보니 (경영진은) 징계를 더 어려워하는 거 같다”고 했다.
사내에 문제를 터놓고 제기하기 어려워진 분위기라는 지적도 나왔다. ㄹ조합원은 “폭언이나 폭력이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소수의 유별난 사람들을 못 막는 건 사실이다. 시스템이 작동 안 하고 분위기상으로 (신고를) 막는 분위기도 강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최근 돌봄휴직 반려된 조합원 사태 때도 최초 필자가 익명이었지 않나”라며 “지금 뉴스룸국 분위기가 면전에서 대놓고 말하는 분위기가 아닌 걸 누구나 알잖나”라고 했다. ㅁ조합원은 “‘삼부토건 기사 몰고 사건’(2022년)이 상징적인 거 같다. 당사자가 사내에 이메일을 보낸 것만으로 징계까지 받았지 않나. ‘아, 저항하면 저렇게 되는구나’ 생각하게 된 것이다. 다들 무기력해졌다”고 했다.
한겨레지부는 ‘휴식권과 일·가정 양립’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도 밝혔다. 특히 임신·유산했거나 난임 시술을 받는 등 몸이 불편한 여성 노동자에 대한 보호 수준이 심각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ㅅ조합원은 “‘유산은 나도 해봤다’ ‘유산해도 할 일 다 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구성원도 있다. 정말 예비 엄마가 일하기 열악한 환경”이라고 했다. ㅇ조합원은 “아이와 저 본인이 아파서 부득이 휴가 일수가 늘어나자 ‘근태관리가 엉망’이라며 데스크가 핀잔을 줬다”며 “휴가를 쓸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리고, 아이가 아플 땐 몇배로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휴식권과 일·가정 양립이 보장되느냐는 질문엔 ‘제대로 보장되는 편’이라는 응답이 38%(27명), ‘그렇지 않은 편’이 40%(29명), ‘보통’이 22%(16명)이었다. 이들이 우선 요구한 것은 의료서비스 제공(35%·25명), 근로시간 조정(16.7%·12명), 적극적인 산재신청(13.9%·10명) 등이었다.
김유경 노무법인 돌꽃 대표노무사는 노보 인터뷰에서 언론사 내 직장내 괴롭힘의 특성으로 “신문사, 방송사는 업무 특성상 수직적인 업무지시가 많다. 마감하면서 촌각을 다툰다는 엄중한 상황도 있고, 업무 긴장도도 높다.죠. 마감 때문에 다른 데보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그런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 있다”며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할 가능성이 다른 업종에 비해 매우 높다”고 했다.
김 대표노무사는 이어 “언론사야말로 외부 인력이 조사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내부 조사위원을 선임하려 하다 보면 아무래도 신입사원에게 조사를 맡길 리가 없다. 대부분 근속 연수가 긴 상급자 위주로 꾸린다”며 “조사위원 자체가 피신고인하고 가까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했다. 이어 “언론사의 선후배 문화라든가 수직 구조 속에서 내부 노사 공동위를 꾸리면 아무래도 선후배 사이로 얽힐 가능성이 높다. 괴롭힘이라는 수직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처음부터 객관적인 상황에서 조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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