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고은 기자】윤석열 대통령의 ‘2선 후퇴’와 ‘책임총리제’ 논의가 정국 혼란의 새로운 불씨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3일 밤 계엄 사태 이후, 탄핵안이 부결되면서 정치권은 극심한 대립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국정에서 손을 떼겠다고 시사했으나, 헌법상 권한 이양의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야권의 강력한 반발과 여당 내부의 갈등이 겹치며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책임총리제, 거국중립내각, 임기 단축 개헌 등 다양한 해법이 제시되고 있지만, 현실적인 실행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직무 배제된다’더니…책임총리제 전환도 안됐지만 벌써 한계 드러나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탄핵소추안 표결 직후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저의 임기 문제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며 “향후 국정 운영은 우리 당과 정부가 함께 책임지고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과 정부는 책임총리제를 대안으로 내세웠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총리의 헌법적 권한을 적극 행사하며, 대통령의 역할을 제한적으로 수행한다는 구상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지난 8일 당정 공동담화문을 통해 “한 총리와의 회동을 정례화하겠다”며 “상시적인 소통을 통해 경제, 외교, 국방 등 시급한 국정 현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발언에 대해 헌법학계는 대통령 권한의 당정 일임이 헌법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비판했다. 책임총리제는 대통령제 국가에서 논의됐던 개념이지만 헌법 제86조 2항에서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윤 대통령이 탄핵 혹은 하야로 인해 한 총리가 공식적인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지 않는 한 헌법상 대통령의 국군 통수권과 외교·국방 등 고유 권한은 여전히 대통령에게 있다. 책임총리제는 헌법이나 법률에 명시된 제도가 아니기에 헌법학계는 “위헌적”이라는 지적을 내놨다.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민병로 헌법교수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사퇴하지 않고 2선으로 물러나겠다는 것은 위헌적인 발상”이라며 “헌법이나 법에서 정한 정부조직법에서는 국정 공백을 막기 위해 대통령 사고 시 직무대행 순서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헌법 제71조에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가 대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돼 있다.
이러한 점을 언급한 민 교수는 “대통령의 명을 받지 않고 국무총리가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도 헌법 위반”이라며 “대통령 스스로 사퇴하면 국무총리가 헌법에 따라 직무대행을 맡으면 되는 일이고 그게 질서 있는 퇴진”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여당 대표에게 권한을 위임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한 대표는 당 대표지만 국회의원도 아닌 사인(私人)”이라며 “국민은 대통령에게 권한을 위임했지, 국무총리나 당 대표에게 위임한 적이 없다”고 꼬집었다.
또한 책임총리제라는 용어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국무총리에게 권한을 실어주자는 의미로 책임총리제가 나온 것으로, 대통령 재가 없이 총리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며 “직무대행 체제로 가자는 것인데 결국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다”라고 했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부장 출신 김승대 전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 ‘사고’ 요건을 갖췄다면서 한 총리에게 ‘위임’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한 총리가 공식적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 전 교수는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재 대통령이 직무 수행 불능 상태로 보이기에 제71조의 ‘사고 상태로 국무총리가 대행을 할 수 있다’는 헌법적 근거가 없지 않다”면서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하는 것은 가능하고 위헌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한 총리로 표현하는 게 아닌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표현돼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의 공식적인 하야 및 탄핵에 따른 정권 이양만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관계자는 “2선으로 물러나겠다는 대통령이 하루도 안 돼 행정안전부 이상민 장관의 사의를 재가했다”면서 “한 대표는 직무 배제와 조기 퇴진을 밝혔는데도 임명권이 여전히 대통령에게 있는 것으로 보이고, 국방부도 ‘군 통수권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총리책임제의 위헌 여부를 떠나 해당 제도의 한계를 드러내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거국내각제·임기 단축 개헌 거론…현실성은 낮아
민주당은 책임총리제를 위헌적 발상으로 규정하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민주당은 “책임총리는 헌법에 없는 제도”라고 일축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헌법에 따른 ‘질서 있는 퇴진’은 탄핵밖에 없다”면서 “탄핵을 반대한 한 대표와 계엄 건의를 막지 않은 한 총리는 무슨 권한과 자격으로 대통령 직무 배제를 말하는 것인가.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명백한 위헌”이라고 강조했다.
박 원내대표는 “내란 사태의 신속한 종결을 위해 내란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의 2차 탄핵과 내란 수사 특검 및 관련자 탄핵을 신속히 추진하겠다”며 오는 14일 탄핵안을 재표결 처리할 계획을 밝혔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당정 공동담화문 직후인 지난 8일 국회에서 긴급회견을 열고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와 여당이 공동 행사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라며 대통령의 직무를 즉각 중단시키기 위한 여야 회담을 제안하기도 했다.
거국중립내각 역시 여야 간 극적 합의가 필수적이지만, 윤 대통령이 지난 8일 대국민 담화에서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며 ‘국회’가 아닌 ‘집권 여당’으로 한정했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이 나온다.
임기 단축 개헌은 윤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목표로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방안이지만, 개헌은 헌법상 대통령의 제안 후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해야 한다. 이러한 절차적 복잡성으로 당장 개헌 논의를 어렵게 하고 있다.
민주당, ‘위헌 통치’ 규정…책임총리제 반발·2차 탄핵전 예고
민주당은 이날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행위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수사 요구안(내란 특검법)과 윤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사건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김건희 특검법)을 발의하고 각각 오는 14일과 12일에 처리할 예정이다.
윤 대통령을 비롯해 국방부 김용현 전 장관, 박안수 계엄사령관 등 주요 인사가 포함된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된 모든 의혹을 수사하는 내란 특검법은 국회의 개입을 배제하고, 대신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한국법학교수회장이 각각 한 명씩 특검 후보를 추천하며, 대통령이 이 중 한 명을 임명하도록 규정했다.
내란 특검법은 탄핵안 재표결 처리 예정일인 오는 14일 함께 표결에 부칠 계획이다. 민주당은 주말 집회를 통해 여당 의원들을 겨냥한 여론전을 펼치며 국민적 관심을 끌어올리려는 전략을 엿보이고 있다.
한편, 네 번째로 발의된 김 여사 특검법은 민주당과 비교섭단체가 각각 1명의 특검 후보를 추천하고 대통령이 최종 1명을 임명하는 구조다.
과거 김 여사 특검법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국회 재의 투표에서 부결과 폐기가 반복됐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최근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김 여사 특검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국민의힘이 김 여사 특검법을 위헌·위법성을 근거로 반대 당론으로 확정한다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가능하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
더욱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재표결에서 이를 막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세 차례 김 여사 특검법의 재표결 사례를 보면, 국민의힘의 이탈표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첫 번째 재표결에서는 이탈표가 없었지만, 두 번째에서는 4표, 세 번째에서는 6표의 이탈표가 나왔다. 만약 차기 재표결에서 국민의힘에서 8표 이상의 이탈표가 발생하면, 김 여사 특검법은 최종적으로 국회를 통과하게 된다.
정치권은 국민의힘의 대응이 윤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와 당내 지지 기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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