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돌입으로 원·달러 환율이 요동친다. 반도체, 배터리 등 수출이 주력인 우리 산업계는 고환율 장기화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과 투자 비용 증가 등을 우려하며 발만 동동 굴린다.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중장기적인 계획 수립도 쉽지 않은 분위기다.
달러 자산보다 빚 많은 韓 기업, 환율 급등 ‘치명적’
9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오전 원·달러는 1426.0원에 출발해 장초반 상승폭을 확대하며 한때 1438원을 터치했다. 오후 3시 30분 기준으로 1437원에 거래를 마쳤다. 2022년 10월 24일(1439.7원) 이후 2년 1개월 만에 최고치다.
환율 상승은 달러로 주로 결제하는 수출 기업에 단기적으로 유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정적 영향이 더 크다. 원자재 수입 가격이 급등해 채산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웨이퍼, 배터리는 리튬·니켈·코발트 등 핵심 원자재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최근 수년간 잦은 해외 투자로 늘어난 달러화 부채는 평가 손해가 발생하게 돼 기업에 치명적이다.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추진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입장에서는 고환율이 고착화 할 경우 장비·설비 반입 시 비용 증가 등 투자비가 늘어날 수 있다. 삼성전자는 170억달러(24조4000억원)를, SK하이닉스는 38억7000만달러(5조5600억원)를 미 반도체 공장 설립에 투입하는 계획을 세웠다.
배터리 기업 LG에너지솔루션은 환율 상승이 달갑지 않다. 이 회사의 올해 3분기 기준 달러 부채는 6조8284억원으로 3개월 전(4조1607억원)보다 2조6000억원쯤 증가했다. 달러 부채가 달러 자산(4조4396억원)보다 많아 환율이 오를 수록 회계상 손실이 생긴다. 환율이 10%쯤 오를 경우 세전 손실은 2000억원이 넘는다.
삼성SDI 역시 달러 자산보다 부채가 더 많은 재무구조로 파악된다. 지난해 4분기 다운턴 이후 올 3분기 첫 흑자를 기록한 SK온에도 고환율은 재무구조 개선에 상당한 부담이다.
국가 신용등급의 하방 압력도 현실적 우려다. 국가 신용등급 하락은 대기업의 해외 채권 발행 비용을 높이는 동시에 글로벌 사업 확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정책의 연속성을 약화시키고 기업 투자 심리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계, 계엄·탄핵 정국 속 대응 전략 수립
삼성·SK·LG 등 주요 기업은 계엄·탄핵 정국 속에서 대응 전략을 긴급히 수립하며 국가 신용등급 하락 및 대미 통상 협력 약화 등 복합 위기에 대비 중이다.
삼성전자는 12월 중순 글로벌 전략회의를 연다. 글로벌 전략회의는 매년 6월과 12월 국내외 임원급이 모여 사업 부문·지역별로 현안을 공유하고 내년 사업 목표와 영업 전략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다.
한종희 DX부문장(부회장)과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이 각각 주재하는 이번 회의에선 최근 복합 위기 상황에 처한 삼성전자의 근원적 경쟁력 회복 방안을 논의하고 2025년 사업 목표를 공유할 전망이다.
5일 연말 인사를 마무리한 SK그룹도 연초부터 추진해온 그룹 차원의 리밸런싱(구조조정)과 운영 개선에 속도를 낸다.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한 경쟁력 강화에도 힘을 쏟는다.
통상 분기에 1번씩 사장단 협의회를 여는 LG그룹은 조만간 구광모 LG그룹 회장 주재로 회의를 열고 차별화된 미래 사업 역량 확보와 성장 기반 구축 방안을 모색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국내 산업은 원자재 수입과 해외 고객사로 완성품 수출이 절대적이라 환율 영향을 크게 받을 수 밖에 없다”며 “환율 변동폭이 커지면서 내년도 사업 목표 수립에도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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