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SK, LG그룹이 올해를 포함해 3년째 부회장 승진자를 배출하지 않았다. 이재용 회장, 최태원 회장, 구광모 회장 등 총수들이 그룹에 위기 의식을 불어넣기 위한 결단으로 풀이된다. 올해는 트럼프 2기 출범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조직 안정화가 중요해졌고 사장급 이하 세대교체가 우선순위로 떠오르는 등 공통 변수도 작용했다.
삼성전자는 2021년 11월 말 실시한 2022년 사장단 인사에서 김기남 부회장(DS부문장)을 회장(종합기술원)으로 승진시켰다. 또 한종희 VD사업부장은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정현호 사업지원T/F장은 부회장으로 승진 시켰다. 계열사에선 같은해 전영현 삼성SDI 사장이 이사회 의장 역할을 맡으며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SK도 2021년 12월 인사에서 장동현 SK㈜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하고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의 부회장 승진 인사를 발표한 것이 마지막이다.
LG 역시 2021년 11월 권봉석 LG전자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해 ㈜LG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선임된 것이 유일하다.
사법리스크와 반도체 업황 악화가 겹친 삼성전자는 올해 사장단 인사 발표 전부터 부회장 승진 후보가 거론되지 않았다. 실제 정현호 사업지원TF장(부회장),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 한종희 DX부문장(부회장)은 모두 유임했다. 부회장단만 놓고 보면 쇄신보다는 안정을 택한 결정이다.
다만 삼성글로벌리서치(옛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진단실장에 미래전략실과 사업지원TF를 거친 최윤호 사장, 사업지원TF 담당에 박학규 사장을 각각 이동시키며 미래 부회장 후보군을 육성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SK는 HBM 성공신화를 이끈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사장)의 부회장 승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3년 말 사실상 2선으로 물러났던 부회장단 가운데 조대식 SK㈜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퇴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하지만 5일 인사에서 SK가 사장급 이상 승진을 1명으로 제한하면서 현실화 되지 않았다.
곽노정 사장의 승진 불발을 두고 재계에서는 SK가 올해 그룹 차원의 리밸런싱과 조직슬림화에 초점을 맞춘 것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승진보다는 ‘사업 우선순위 조정’과 ‘조직 통폐합’ 기조가 우선이었다는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곽 사장의 올해 부회장 승진이 불발됐지만 올 7월 수펙스추구협의회 내 반도체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사업 성과도 지속 인정받고 있는 만큼 언제든 부회장 등극 가능성이 충분해보인다”고 말했다.
LG그룹에선 조주완 LG전자 사장과 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의 부회장 승진 가능성에 이목이 쏠렸지만 승진자는 나오지 않았다.
재계에서는 구광모 회장의 이번 인사를 이들의 승진보다 그룹의 조직 슬림화와 경영 효율화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평가한다. 조주완 사장에겐 LG전자의 수익성 극대화를, 정철동 사장에겐 LG디스플레이의 재무 안정성 강화 미션을 수행하게 하는 과제를 남겼다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조주완 사장은 LG전자의 기업간거래(B2B) 사업 중심 체질 개선과 2030년 매출 100조원 목표에도 순항 중이고, 정철동 사장 역시 광저우 LCD 공장 매각 및 전사적 비용 절감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불확실성이 커진 내년 대내외 환경에서 내년에도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끈다면 향후 부회장으로 가는 길은 열려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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