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신구 기자 ’2선 후퇴’를 선언한 윤석열 대통령을 대신해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공동 국정운영을 선언했지만 정치권의 비판은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조치가 법적 근거가 없는 데다가, 윤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말뿐인 2선 후퇴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탄핵안 표결에 불참하면서 질서 있는 퇴진을 약속했던 여권의 주장에 힘이 실리지 않는 모양새다.
9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공식 일정 없이 칩거 중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오전 대국민 담화를 통해 “임기를 포함하여 앞으로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2선 후퇴’ 선언은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있던 국민의힘에도 영향을 미쳤다. ‘탄핵 찬성’을 외친 의원들이 입장을 선회했다. 결국 국민의힘은 일부 의원을 제외하고 모두 표결에 불참했다. 윤 대통령의 탄핵안은 ‘투표 불성립’으로 자동 폐기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보수의 분열을 경험했던 여당은 탄핵 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질서 있는 퇴진’에 힘을 실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2선 후퇴’는 여당에게 긍정적인 신호였다. 정략적 공간을 확보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즉각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전날(8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대국민 공동 담화를 발표하고 윤 대통령이 직을 내려놓을 때까지 국무총리와 당이 공동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전날 담화에서 “퇴진 전이라도 대통령은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2선 후퇴’를 공언한 만큼 어떠한 권한도 행사하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이 시작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직을 내려 놓지 않은 윤 대통령이 여전히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권한을 행사하는 듯한 모습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 ‘2선 후퇴’ 약속 후 인사권 행사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면직안을 재가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앞서 이 전 장관은 전날 입장문을 통해 “대통령님을 잘 보좌하지 못한 책임감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국민께 송구한 마음”이라며 사의를 표했다. 2선 후퇴를 공식화 하기 전이라지만 윤 대통령은 지난 6일 밤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후임에 오호룡 국정원장 특별보좌관을 임명하고 박선영 전 의원을 진실화해위원장에 임명했다. 그보다 앞서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면직안도 재가했다.
여권이 내세운 공동 국정운영은 본질적으로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우선돼야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여전히 인사권을 행사하면서 이 구상은 근본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됐다. 당장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윤 대통령이 사실상 직무 배제될 것이라고 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비판했다. 국방부가 이날 윤 대통령이 여전히 국군통수권자이자 계엄선포 권한을 갖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비판을 선명케 하는 대목이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무총리와 여당 대표가 권한을 대리하는 것 자체가 위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 71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궐위나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만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할 수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전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권력은 대통령의 주머니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권한의 이양 역시 대통령 임의로 정할 수 없다”고 했다. 물론 여권에선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 김종필 전 총리가 ‘책임 총리’ 역할을 했다는 점을 근거로 반박하고 있다.
야당은 윤 대통령의 탄핵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며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오는 12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하고 오는 14일에 표결하겠다고도 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헌법에 따른 ‘질서 있는 퇴진’은 탄핵밖에 없다”며 “내란 사태의 신속한 종결을 위해 내란수괴 윤석열 2차 탄핵, 내란 수사 특검과 관련자 탄핵을 발 빠르게 추진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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