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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갈 때 쓸 응원봉 구합니다. 어떤 아이돌이든 상관 없어요!”, “진짜 발광력 좋은 응원봉 판매합니다. 시위 목적인 분은 무료 대여도 해드려요.”
비상계엄 해제 이후 연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가 열리는 가운데 MZ세대의 합류를 계기로 새로운 집회 문화가 탄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프라인’ 광장에서 주로 활동해온 기성세대와 달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 현장 중계·정보 공유 등을 활발히 하는 청년층이 집회의 핵심 참여층으로 떠오르며 중년층까지 아이돌 응원봉을 구매하고 케이팝 가사를 외우는 등 이들의 문화를 적극 이식 받는 모습이다.
9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탄핵 촉구 집회가 시작된 뒤 중고나라·번개장터·당근 등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응원봉 관련 게시글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 이날 낮 12시 기준 취재진이 영등포구 인근 동네에서 ‘응원봉’과 ‘집회’라는 키워드로 당근에 검색을 하자 하루 사이에 등록된 응원봉 매물만 40건이 넘었다. 한 판매자 A씨는 보이그룹 NCT의 응원봉인 이른바 ‘믐뭠봄(직육면체 모양 때문에 붙은 별칭)’을 대여해준다면서 “네모난 모양이라 문구를 붙여 꾸미기 적합하다. 집회 참가자 분들만 무료로 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이밖에 집회 참가자에 한해 ‘구매 우대를 해주겠다’는 게시글, ‘어제 (시위에) 가보니 부러웠다. 불만 켜지면 되니 시위갈 때 쓸 응원봉을 구한다’ 등의 글도 여럿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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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집회에 응원봉을 들고 참가하는 이들은 10~30대 등 청년층에 한정됐지만 지난 주말 사이 다채로운 ‘응원봉 물결’이 화제가 되며 연령과 상관없이 응원봉이 ‘새로운 촛불’로 자리 잡으려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며칠 전 집회에 참가했다는 정 모(27)씨는 “이번 주말에도 엄마와 함께 집회에 가는데 응원봉이 여러 개라 하나 빌려드리기로 했다”면서 “뉴스에 나온 응원봉 불빛이 예쁘다며 엄마가 먼저 쓰겠다고 부탁하시더라”고 말했다. 한 시민 B씨는 집회 관련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혹시 중장년층 분들 중에 응원봉 구매를 원하는 분이 있다면 도와드리겠다”고 먼저 제안하기도 했다.
최근 집회에서 자주 울려퍼진 최신 케이팝을 모아 ‘플레이리스트’로 구성한 영상도 며칠 사이 유튜브에 여러 건 올라왔다. 빅뱅 GD의 ‘삐딱하게’,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 에스파의 ‘위플래시’ 등이 포함된 영상에는 ‘이런 걸 찾고 있었다’, ‘가사를 몰랐는데 열심히 공부해가야겠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반대로 X(옛 트위터) 등 SNS에서는 한 네티즌이 올린 ‘민중가요 모음’ 게시글이 하루만에 1만 2000회 이상 공유됐다. 과거 집회 참여 경험이 부족한 20~30대가 기존에 집회에서 부르던 노래를 사전에 익혀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MZ세대는 온라인 공간을 다방면으로 활용해 빠르게 기존 집회 문화에 녹아드는 모습이다. 최근 홍익대학교의 한 학생 인권단체는 협업 툴 노션(Notion)을 이용해 ‘집회 준비와 위기 시 행동 요령’ 가이드북을 제작했다. 해당 가이드북은 X를 통해서만 최소 3000회 공유됐다. 평균연령 25세인 이들 단체는 서울경제에 “대규모 집회를 앞두고 시민들이 어떻게 준비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고 편히 휴대할 수 있는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면서 “집회 참여 시 복장, 준비물 등이 담긴 카드뉴스·노션 문서를 제작해 인스타그램·텔레그램·오픈카톡방·에브리타임을 통해 배포했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현재 각종 SNS에는 ‘집회 장소 근처 개방 화장실 지도’ 등 청년층이 제작한 관련 콘텐츠가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는 올해 촛불 집회에 젊은 세대의 참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현상과 관련해 “기존에 있던 ‘팬 행동주의’가 극적으로 발휘됐다”며 “특히 이번 계엄령은 전두환·박정희 정부를 겪은 세대에게는 트라우마를 불러오는 상황이었는데, 그럼에도 청년층이 집회에서 낙관주의와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기성세대가 느끼는 위화감 역시 크지 않아 보인다”며 “촛불이 가진 내성성·성찰성에서 응원봉이 가진 흥과 열정·유대로 참여자들의 속성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날도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 문화제가 열렸다. 이에 앞서 민주노총은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란에 동조하고 탄핵을 거부한 국민의힘은 해체하라”고 밝히고 “윤석열은 대통령 자격을 상실했으며 즉각 대통령직을 박탈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일치된 요구”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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